삼십구 장. 흔들리다.
“한양이요?”
“쉿.”
향단의 목소리가 크자 춘향은 눈치를 주었다. 향단은 입을 막았지만 눈은 여전히 웃음을 짓는 중이었다.
“뭐가 그리 좋니?”
“아니 인근 고을이라고 하면 뭐 하나 새로울 것이 없으나. 한양이라고 하면 그것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되었다.”
“아가씨.”
“되었대도.”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양까지 간다는 것인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욕심을 부림으로 인해서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사또를 괴롭히면 안 된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네가 더 잘 알고 있던 것이 아니더냐?”
“아니 이것은 사또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가씨가 더 행복할 기회를 찾는 것입니다.”
“그게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것이야.”
춘향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 누구도 지치게 하고 싶지 않아.”
“아가씨.”
“되었다.”
춘향은 향단의 눈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된 것이야.”
“참말이냐?”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해서 무얼하니?”
“아니.”
향단의 반응에 방자는 입을 내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춘향이 괜히 안쓰럽게 느껴졌다.
“아니 도대체 춘향 아가씨가 왜 그렇게 망설이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이제 도련님에게 미련을 버리셔야 하지 않니?”
“좋은 분이라 그렇지.”
전을 뒤집으며 향단은 입을 쭉 내밀었다.
“너는 그걸 모르니?”
“뭐.”
“그런데 너는 혼자 와서 뭐 하니?”
“아. 그냥.”
차마 향단이 보고 싶어서 먼저 왔다는 소리를 할 수 없어서 방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표정은 왜 짓니?”
“무엇이?”
“되었다.”
방자의 말에 향단은 고개를 갸웃했다. 방자는 은근히 눈치가 없는 듯한 향단을 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글은 좀 어떻습니까?”
“어렵습니다.”
방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솔직히 말을 하자면야. 춘향 아가씨도 하시고. 향단이도 한다고 해서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군요.”
“아,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춘향이 장난스럽게 대꾸하자 방자는 재빨리 손을 저었다.
“그리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제가 생각이 없다고 한들 스승을 그리 무시할 사람은 아닙니다.”
“스승이라니?”
“제 스승이시지 않습니까?”
“스승이라.”
춘향은 어색하게 웃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대놓고 스승이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리 불러주니 고맙습니다.”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왜 한양에 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예?”
춘향은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무언가 말을 할 이유야 있을까 싶었다.
“내가 거기에 간다 한들 뭐 하나 달라질 것이 없고, 오히려 누군가에게 짐이 될 수도 있는데 어찌 간단 말이오?”
“누구에게 짐이 됩니까?”
“사또지요.”
“사도라.”
방자는 입을 내밀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학도가 춘향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다는 것은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사또를 왜 받아들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게 무슨?”
방자의 말에 춘향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방자는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자면야, 춘향 아가씨와 더 어울리는 분은 몽룡 도련님이 아니라 사또 아니겠습니까?”
“무슨 말이 그렇소?”
춘향은 곧바로 언성을 높이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다. 몽룡 도련님이 저를 밀어내면 모를까 제가 어떻게 먼저 하겠습니까?”
“허나 그렇다고 한들 뭐 하나 달라질 것이 있겠습니까? 몽룡 도련님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모르십니까?”
“달라지십니다.”
“허나.”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으냐?”
“도련님.”
“오셨습니까?”
몽룡은 두 사람을 보며 입을 내밀었다. 허나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양반 체통에 입을 다물었다.
“훌륭해.”
“고맙습니다.”
“이런 재능이면 한양에서 잘 할 터인데.”
학도의 칭찬에 춘향은 빙긋 웃을 따름이었다. 아무리 학도가 이리 칭찬을 해도 불편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사또께서 아무리 그리 말씀을 하셔도 저의 결심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시는 것이 아닙니까?”
“알지. 알아.”
학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해가 안 간다는 걸세.”
“사또.”
“그대의 그 재능을 무시하는 것인가?”
“이것은 재능이 아닙니다.”
춘향은 신대애라를 가만히 손으로 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제가 할 일이 없는 여인이라서 이것이 가능한 것이지 사내들이 한다면 더 빠르게 해냈을 겁니다.”
“그런 말 마시게.”
“사또.”
학도의 목소리가 엄해지자 춘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모습이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왜 그리 스스로를 낮게 생각을 하는 것인가? 자신이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를 모르는 것인가?”
“제가 귀한 사람입니까?”
“그렇지.”
“아닙니다.”
춘향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너무나도 천한 사람이고 한심한 사람이었다.
“어서 사또께서 좋은 여인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춘향.”
“그래야 저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귀하신 분인데 이런 생각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또. 절대로 저에게 이런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것은 잘못입니다.”
“도대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학도는 한숨을 토해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춘향은 그런 학도를 보며 여전히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학도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혀를 찼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인가?”
“사또.”
“내가 그대를 좋아하네.”
“그런 말은 마십시오.”
누가 들을 리가 없건 만은 춘향은 재빨리 주위를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학도는 그 모습에 당황했다.
“왜 그러는가?”
“저는 더 이상 사또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폐라니?”
“제가 이리 매일 사또를 뵙고자 하오니 사또께서 제대로 된 혼례를 치루지 못하시는 것 아닙니까?”
“누가 그러던가?”
학도는 아랫입술을 가만히 물고 고개를 저었다. 춘향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런 학도의 낯을 살폈다.
“사또 부디 그러지 마십시오.”
“무엇을 말인가?”
“사또는 귀한 분입니다.”
“그대도 귀해.”
“아니요.”
춘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사또가 아니었으면 귀하지 않을 사람이었습니다. 사또께서 저를 귀하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왜 그리 생각을 하나?”
“사실이니 말입니다.”
“나 참.”
학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춘향이 이리 말을 할 적마다 답답한 학도였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가 불편하게 해서 그러나?”
“예.”
“그래?”
“예. 그렇습니다.”
춘향이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답하자 학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에게 미안했다.
“미안하네.”
“아닙니다.”
춘향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미안한 것은 자신이었다. 자꾸만 학도를 밀어내는 것이 미안한 춘향이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춘향은 종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도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춘향이 나가고 무영이 나타났다.
“포기하시지요.”
“그래야지.”
학도는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그리 부족한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래?”
“춘향. 저 사람과 사또가 연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지요. 모든 사람이 다 연이라는 법은 없으니 말입니다.”
“연이라.”
학도는 손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저 춘향과 닿기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저 여인을 취하고 싶다. 갖고 싶단 말이다.”
“사또.”
“안다.”
무영의 표정을 본 학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안 되지.”
“사또는 좋은 분입니다.”
“그렇지.”
학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은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거꾸로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지.”
“그래서 춘향. 저 사람이 사또를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닙니까? 사또의 인품을 모두 믿으니 말입니다.”
“그렇지.”
“잘 하십시오.”
학도는 어색하게 웃었다. 잘 한다는 것. 이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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