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사 장.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간다는 것.
“춘향을 한양으로 데리고 가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글을 가르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글을 가르치게 한다?”
몽룡은 미간을 모으고 고개를 저었다.
“그게 지금 말이 되오?”
“왜 말이 안 됩니까?”
“춘향은 계집입니다. 누가 계집에게 글을 배우려고 하겠습니까? 세상에 그런 이가 어디에 있소?”
“이 남원에서는 이미 춘향이 스승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데 그대는 왜 그것을 모르는 척 하는 것이오?”
“그거야 다르지.”
몽룡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학도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숨을 내쉰 후 물끄러미 몽룡을 응시했다.
“무엇이 다른가?”
“상황이 다르지 않소. 이곳은 작은 마을이야. 그리고 춘향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미 한양에서도 춘향에 대한 소문이 파다합니다. 여인이 글을 가르친다는 그 말이 말입니다.”
“소문이요?”
“그렇소.”
“위험한 것이겠지.”
몽룡은 남은 차를 모두 마시고 소리가 나게 잔을 내려두었다. 학도는 살짝 미간을 모았다가 애써 표정을 정돈했다.
“내가 춘향 그 사람 하나 지키지 못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여태 그 사람을 잘 지킨 사람이올시다.”
“그러니 이제 내가 춘향을 지키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오? 애초에 그대가 지킬 이유도 없는데 지킨 것이니. 사또는 이제 춘향의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말라. 그러는 것이지요.”
“말을 하지 말라.”
학도는 턱수염을 만지며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어찌 그러겠소?”
“사또.”
“나는 춘향 그 사람이 좋소.”
“뭐라고요?”
“나는 춘향 그 사람이 좋단 말이오.”
학도의 말에 몽룡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학도가 이리 대놓고 그에게 말을 할 줄 몰라서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말 그대로 춘향 그 사람이 좋소.”
학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몽룡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춘향이 사또와 어울리지 않는 이라는 것을 정녕 모르시는 겁니까?”
“그러는 그대는 춘향과 어울리오?”
“그게 무슨?”
“이전의 이몽룡은 좋은 사람이었겠지. 이 고을에서 존경을 받았겠지. 허나 더 이상은 그러지 않으니 말이오.”
“그건.”
몽룡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이유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대가 무슨 생각을 하건, 그대는 춘향의 지금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춘향은 그대가 생각을 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르다.”
이 말의 무게가 묘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고맙소이다.”
“됐습니다.”
학도의 친찬에 몽룡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이들을 가르쳐야 해서 가보겠소.”
“그러시오.”
몽룡이 방을 나서고 학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영은 뒤에서 나타나 미간을 모았다.
“무례합니다.”
“그럴 테지.”
“저런 이가 어찌.”
“춘향이 좋아하는지 말이야.”
학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오랜 인연이라는 것을 쉽게 이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내가 이제야 알고 있어. 어려워. 어려워.”
학도의 말에 무영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찌 스승이 늦는 겝니까?”
“늦을 수도 있지.”
막돌의 말에 몽룡은 입을 내밀었다.
“미리 학습이나 하지 그러지.”
“이미 춘향 선생이 다 가르쳤소.”
“춘향이가?”
“그렇소.”
막돌은 열심히 글을 적은 흔적을 내보였다. 몽룡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춘향은 자신과 달랐다.
“이제 내 가르침을 알겠느냐?”
“무슨 말씀입니까?”
갑작스러운 몽룡의 물음에 막돌의 목소리가 변했다. 혹시라도 무슨 뜻이라도 있을까 긴장한 것이었다.
“여인도 다르지 않다.”
“뭐라고요?”
“오늘 춘향에게 글을 배우고 느끼지 않았더냐? 여인이라고 해서 뭐 하나 다를 것이 없다고 말이다.”
“역시 스승님 대단하십니다.”
“그렇지.”
막돌이 동무와 나가는 것을 보며 몽룡은 미소를 지었다.
“원 녀석도.”
“그리 거짓말을 하면 좋으십니까?”
갑자기 나타난 춘향에 몽룡이 움찔했다.
“무슨 말이냐?”
“도련님.”
“뭐가?”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자신이 늦은 이유를 가지고 칭찬이라도 해주니 고마운 마음이었다.
“왜 늦으셨는지는 여쭙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도련님께서 말씀해주시지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사또를 뵙고 왔다.”
몽룡의 대답에 춘향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뵈면 안 되는 것이냐?”
“아닙니다.”
춘향은 곧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몽룡과 학도가 만나는 것을 가지고 자신이 왈가왈부할 것은 없었다.
“한양 이야기를 들었다.”
“별 것 아닙니다.”
춘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 일을 가지고 몽룡이 괜한 오해를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제가 결정할 일입니다.”
“내가 네 앞을 막는 거 같아.”
“도련님.”
“미안하다.”
몽룡의 사과에 춘향은 침을 삼켰다. 너무나도 듣고 싶던 말이었다. 그러면서 너무나도 듣기 싫던 말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응?”
“도련님을 미워해야 하는데 미워할 수 없지 않습니까?”
춘향의 눈에 눈물이 고이자 몽룡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리고 춘향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너를 지킬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늘 너를 아프게 하고 늘 너를 힘들게만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춘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몽룡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바라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도련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니시니 그러지 마십시오.”
“내가 이미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한심한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어.”
“도련님.”
“나를 밀어내주어라.”
몽룡은 춘향을 보며 싱긋 웃었다. 말을 하다 보니 이것이 정말 춘향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나는 너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내 곁에 네가 있으면 더 힘들고 지칠 것이야.”
“제가 그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을 원했더라면 진작 도련님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몽룡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것이 아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리고 춘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거꾸로 아팠다. 춘향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도대체 내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내가 너에게 뭘 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 것도 모르겠구나.”
“지금처럼 그저 제 곁에 계셔주시면 되는 겁니다. 다른 것을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셔도 되는 겁니다.”
“춘향아.”
“그만.”
몽룡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춘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저에게 도련님은 중한 분이십니다. 그러니 부디 그만 하십시오. 부디 아무 말씀도 마시어요.”
“내가 어찌 너를 지키고 섰겠느냐? 네 옆에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도련님께서 사또가 불편하다면 다시는 사또를 뵙지 않겠습니다.”
“그러지 마.”
몽룡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안 되는 법이었다. 자신이 비운 그 모든 시간 춘향을 지킨 것은 학도였다. 아무리 화가 나고 아무리 외면하고 싶더라도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나보다 더 귀한 자이다.”
“도련님.”
“그저 이 말을 하러 온 것이야.”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춘향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너를 보낼 것이다.”
“도련님.”
“파혼이다.”
춘향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믿음이 무너졌다. 모든 신뢰가 이 순간 다 흐트러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더 이상 너와 정인이 아니야. 그러니 너를 붙들 이유도. 너를 잡아야 하는 이유도 없다.”
“이러지 마십시오. 도련님. 절대로 이러지 마십시오. 저를 놓으면 다시 잡지 못하실 겁니다.”
“알고 있어.”
몽룡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었고 그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 나에게 공연한 소리를 할 이유도 없어. 나와 너는 더 이상 정인이 아니다. 그럼 내일 다시 오마.”
“도련님. 도련님.”
춘향이 붙들려고 했지만 몽룡은 집을 나가버렸다. 춘향은 그대로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었다.
“어찌. 어찌 저러시누.”
“아가씨.”
뒤에서 보고 있던 향단이 나타나서 춘향의 손을 잡았다. 춘향이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향단을 응시했다.
“향단아 도련님이 나를 떠났다. 드디어, 드디어 도련님이 나를 떠났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야?”
“힘을 내셔요.”
“어떻게 그러니?”
춘향의 눈이 커다란 눈물이 고였다. 월매가 죽고 난 이후 단 한 번도 이렇게 운 적이 없던 춘향이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걸고 기다리던 사람이다. 내가 모든 것을 다 바라고 기다리던 사람이야.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제 내가 아니라고 하는데. 나를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야? 내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할 수가 있다는 것이야? 내가 뭘 해야 하는 것이고. 내가 뭘 할 수가 있는 것이냐는 말이다. 도련님이 나를 떠났다. 파혼이라니. 파혼이라니. 그게 말이 되는 게야?”
춘향의 어깨가 거칠게 떨렸다. 향단은 한숨을 토해냈다. 향단은 그런 춘향의 어깨를 연신 두드렸다. 몽룡이 춘향을 떠난 것은 너무나도 반가웠으나 춘향이 이리도 힘들어 하는 것을 보는 것은 편하지 않았다. 향단은 아랫입술을 꽉 물고 춘향을 안았다. 춘향을 위로할 것은 오롯이 향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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