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장. 사람들 2
“돌아가.”
“엄마.”
“돌아가라고!”
영부인의 외침에 재희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다시는 나를 찾지 마. 네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지금 나를 여기에 보러 오는 거니?”
“엄마.”
재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영부인이 왜 이러는 건지 알고는 있었지만 속상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엄마가 뭐라고 하건 나는 엄마 딸이에요. 엄마가 아무리 나를 밀어내려고 해도. 이건 달라지지 않아.”
“시끄러워!”
영부인은 악을 쓰며 재희를 노려봤다. 재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가 뭘 원하건. 뭘 바라건. 그게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거. 그건 엄마가 알아주기를 바라요. 엄마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야.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너무나도 끔찍하지만.”
“뭐라고?”
영부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무슨 말을 더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곧바로 다물었다.
“됐다.”
“그래요.”
재희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저 아빠가 조금 지친 것을 갖고 엄마가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요. 그건 문제니까.”
“나를 가르치는 거니?”
“네. 가르치는 거예요. 엄마를.”
영부인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낸 후 고개를 저었다. 재희는 아이처럼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는 갈게요.”
“꺼지렴.”
재희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돌아섰다.
“이 섬은 넓고 좋네.”
“그러니까.”
진영의 말에 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가 않네. 그런데 도대체 그 사람들은 왜 이동을 한 거지?”
“다른 곳엔 뭐가 있다고 믿었거든요.”
담요를 주기 위해서 기쁨이 나타나서 말하자 진영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기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표정을 지을 이유는 없어요. 당연히 궁금하게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요. 그 일에 대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한 거죠. 나는 그래도 이 섬에 속해있는 사람이니까요.”
“뭐.”
진영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봄은 미소를 지으며 진영의 곁에서 담요를 받았다.
“고맙습니다.”
“아니요.”
기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를 미워하는 것도 다행이고. 우리를 경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요. 그래도 너무 그러지 마요. 그러면 우리가 같은 생존자라는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니까요.”
“너무 그러지는 않죠.”
“그래도 좀 그렇죠?”
봄이 대충 넘어가려고 했지만 진영은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시잖아요. 우리에게 이것을 숨겼다는 거.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언제 말하려고 했죠?”
“모르죠.”
기쁨은 입술을 꾹 다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사무장님이나 다른 승무원들이 있는데 저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결정권도 갖고 있지 않아요. 저는 거기에 대해서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어요.”
“그거 편하네요.”
“편하죠.”
진영의 빈정거림에도 기쁨은 그저 밝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신랑이 죽었으니까요.”
“아니. 그건.”
갑자기 기쁨이 이런 말ㅇ르 하자 진영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봄은 한숨을 토해내며 진영의 팔을 끌었다.
“죄송해요.”
“아니요.”
봄의 사과에 기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누가 사과를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그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고. 그 문제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내 남편이 죽지 않았더라도 나는 다른 선택권을 갖고 있지 않았을 거예요. 각자가 자신의 생각대로 모든 말을 하면 결국 우리는 흩어지게 되었을 테니까요. 우리가 그래도 하나가 되어서 이렇게 뭉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 믿으니까. 그리고 승무원들에게 모든 책임을 일임했으니까. 그래서 가능한 거였거든요.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
“뭐. 그렇죠.”
봄은 전의를 잃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런 상황이 되었는데 다른 말을 하는 것도 우스웠다.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네. 알겠습니다.”
기쁨은 미소를 지은 채 멀어졌다. 진영은 봄을 노려보며 미간을 모았다.
“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뭐가?”
“그런 말을 왜 해?”
“저렇게 받을 줄 알았니?”
봄은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뭔가 자신이 엄청나게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도대체 왜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야. 마음에 안 든다고.”
“어쩔 수 없지.”
“치. 결국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거잖아.”
봄의 말에 진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들은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을 거였다. 결국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이었다. 소외가 된 사람들이었고. 그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 거 같지 않아요?”
“그러게요.”
기쁨의 말에 지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쁨의 말처럼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해야 하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게 도대체 뭔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기분입니다.”
“저도 그래요.”
“한기쁨 씨도요?”
“그럼요.”
기쁨의 대답에 지웅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여전히 그 생각을 하는 거군요.”
“어쩔 수 없죠.”
“그렇겠죠.”
그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 그것은 자신의 문제였다.
“일단 고맙습니다.”
“아니요.”
기쁨은 고개를 저었다. 지웅이 입을 내미는 모습을 보며 기쁨은 멀어졌다. 지웅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소외감.”
자신이 뭘 더 해야 하는 걸까?
“자기도 그래?”
“네? 저요?”
지웅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세라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게 아예 없다고 하면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그러니까.”
“있구나.”
“아니요.”
세라가 놀라서 아랫입술을 세게 물자 지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걸 느끼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너무 미안하네. 내가 이세라 승무원을 놓고 가면 안 된 건데.”
“아니요.”
세라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지웅을 탓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을 한 거니까. 그게 전부에요.”
“해야 하는 일.”
“그런데 그런 생각을 사람들이 하고 있군요.”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렇죠.”
모든 일이 다 간단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또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세라는 입술을 쭉 내밀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말해야죠.”
“승무원들?”
“그리고 강지아 씨요?”
“보였어?”
“네. 보여요.”
세라는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여기에 떠나기 전부터 엄청나게 주체적으로 나섰잖아요. 그러니까 그 정도는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거지.”
“역시 대단한 승무원이야.”
“무슨.”
세라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복잡한 문제였다. 누가 우선이라고 말을 하건, 그게 더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제 자신이 더 이상 개입할 일은 아니었다. 자신은 이제 그저 관망하는 사람이었다.
“선배만 믿어요.”
“나도 나를 못 믿는데, 네가 나를 믿는다고 해서 그게 위로가 될 리가 있나?”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졌어요. 나랑 안 본 사이에 사람이 엄청 달라졌네.”
“그래?”
지웅은 턱을 어루만진 채 미간을 모았다. 그리고 짧은 한숨을 토해낸 후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먼 하늘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는 않을 테니까. 지금 가장 불안한 순간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그리 많지 않을 거고. 지금 우리가 생각한 대로 일이 가능하지 않으면 결국 그 화살은 모두 우리에게 돌아올 테니까.”
“그렇겠죠.”
지웅의 쓸쓸한 말에 세라는 아랫입술을 꼭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정말 구조를 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 것도 해결이 되지 않을 테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안녕하세요. 하진영입니다.”
진영은 미소를 지은 채 살짝 고개를 숙였다. 진영을 끝으로 모든 사람의 인사가 끝이 났다. 다들 긴장된 표정을 지으면서도 새로운 상황에 대해서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은 느낌들을 갖는 거 같았다.
“그럼 다들 자유롭게 대화들 좀 하시죠.”
지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파가 터지나요?”
“아니요.”
지아의 물음에 지웅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이 섬에서 전파가 제대로 터진 적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거 같습니다. 사람들이 더 초조해하기 전에 다른 상황이 벌어져야 하는 건데 말이죠.”
“그러게요.”
지아는 한숨을 토해내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렇게 되면 굳이 이곳으로 오자고 말을 한 이유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행히 괜찮은 거 같죠?”
“그러게요.”
세라와 서준. 두 사람만 적응하면 되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불편하다고 생각을 하면 엄청나게 불편하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다행히 넘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강지아 씨는 괜찮습니까?”
“네?”
“다른 사람들보다 강지아 씨가 가장 걱정하는 거 같은데요?”
“아니요.”
지웅의 말에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억지로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네?”
“그렇다고요.”
지웅은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지아는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혀를 내밀었다. 이 초조한 마음이 어떤 건지 자신도 제대로 알 수 없어서 너무 신기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 소설 완결 > 어쩌다 우리[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3 [60장. 사람들 4] (0) | 2017.09.18 |
---|---|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3 [59장. 사람들 3] (0) | 2017.09.18 |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3 [57장. 사람들 1] (0) | 2017.09.16 |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3 [56장. 만남 3] (0) | 2017.09.12 |
[로맨스 소설] 어쩌다 우리 3 [55장. 만남 2] (0) | 2017.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