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장. 사람들 3
“어디 아파요?”
“아니요.”
윤태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지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플 게 뭐가 있어요?”
“이상해서요.”
“그래요?”
지아는 몸을 둥글게 만 채 혀를 살짝 내밀었다.
“그냥 이런저런 걱정이 되니까 그러죠. 한국에서는 연락이 되지 않으니까. 정말로 연락이 잘 된 건지도 모르겠고. 이러다가 한국에서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그런 게 걱정이 되니까요.”
“에이.”
윤태는 지아의 손을 꼭 잡은 채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윤태의 아이 같은 행동에 지아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뭐야?”
“왜요?”
“아니요.”
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그냥 좋아서.”
“역시 이윤태 효과가 좋아.”
“그게 이름이 있어요?”
“그럼요.”
윤태는 가슴을 두드리며 씩 웃었다.
“이윤태가 하니까 이윤태 효과죠.”
“그게 뭐야? 무슨 효과가 있는 건데요?”
“지금 강지아 씨가 느끼는 거?”
윤태의 말에 지아는 혀를 살짝 내밀면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좋다.”
“너무 힘들어하지 마요.”
“알아요.”
지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혼자서 힘들어 할 이유가 없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힘들었다. 이게 너무나도 이상한 기분이었고 또 불편했다. 정말 이상했다.
“이게 내 책임이 하나도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자꾸만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더 늘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뭘 할 수가 있는 사람인 건지. 그리고 내가 뭘 더 해야 하는 건지. 그런 게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까 더 어렵다고 해야 하나?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요?”
“글쎄요.”
윤태는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따로 있을까요?”
“왜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두면 되는 거 아니에요? 반드시 뭘 더 해야 하는 건가? 완벽하게 새롭기 위해서?”
“그런가?”
윤태의 지적에 지아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옳았다. 뭔가 굳이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이상해요.”
“뭐가요?”
“그냥 이것저것.”
지아의 말에 윤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윤태는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아의 숨소리를 들었다.
“왜 여기에 나와 있어요?”
서준은 해변에 앉으며 세라에게 가볍게 말을 건넸다.
“그러는 서준 씨는요?”
“뭐.”
세라가 다시 묻자 서준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지금 여기에서 뭘 하려는 걸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지 않은 한 달. 그 한 달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더 큰 거리를 만든 거 같아요.”
“그렇게 느껴져요?”
“네. 세라 씨는요?”
“나도 그래요.”
세라는 혀를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같은 승무원인데도 그래.”
“그래요?”
“그럼요.”
세라는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이상하기는 하지만 사실이었다.
“서준 씨가 가장 편할 줄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에요.”
“에이.”
서준이 입술을 쭉 내밀자 세라는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뭘 할 수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더 이상 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 거 같아요.”
“그럴 리가 있어요?”
“있죠.”
서준의 말에도 세라는 힘을 주어 말했다.
“다른 사람이 내 자리를 대신 해주고 있는 거니까. 그리고 사실 거기가 내 자리였는지 몰라.”
“강지아 씨요?”
“아니. 뭐.”
세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무조건 지아의 잘못이 아니었다. 자신의 잘못이기도 했다.
“애초에 같이 가자고 한 거 내가 가지 않은 거니까요. 그게 위험하다고 생각을 한 거였으니까.”
“이세라 씨가 가주지 않아서 나는 힘들지 않았는걸요? 나는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는데.”
“그래요?”
“그럼요.”
서준의 말에도 세라의 얼굴에는 여전히 쓸쓸함이 묻어났다. 서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헝클었다.
“왜 그래요?”
“네?”
“여태 그러지 않았잖아요.”
“그러게요.”
서준의 말에 세라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안은 그러지 않았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 그것들이 없으니까. 갑자기 너무 복잡한 기분이에요.”
“그럼 그냥 쉬어요.”
“네?”
서준의 말에 세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꼭 뭘 해야 하나?”
“하지만.”
“다들 그냥 기다리는 거잖아요.”
서준의 말에 세라는 그제야 다른 사람들을 돌아봤다. 다들 여유로운 시간이고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뭔가 하려고 하지 않아요. 애초에 뭔가 할 수 있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런가?”
“그럼요.”
세라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씩 웃었다. 별 거 아닌 말이기는 하지만 너무 고마운 말이었다.
“서준 씨 되게 신기한 거 알아요?”
“뭐가요?”
“허당 같은데 똑똑해.”
“네? 그게 무슨?”
세라의 이상한 칭찬에 서준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세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다고 서준 씨가 막 고백한다고 해서 다 받아준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헛꿈은 꾸지 말고요.”
“그런 거 한 적 없어요.”
“그럼 다행이고요.”
세라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속이 여전히 복잡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덜어졌다.
“나중에 서준 씨는 매니저 일 하지 못하면 상담사 해요.”
“나요?”
“네. 서준 씨요.”
“그런 거 못 해요.”
“못 하기는. 지금 되게 잘 하는데.”
세라의 칭찬에 서준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대로 세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거 지금 뭐지?”
“잡으라고요.”
“어머?”
“그냥 좀 잡아요.”
서준이 채근하자 세라는 쿡 하고 웃더니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씩 웃었다.
“좋다.”
“그렇다니까.”
“좋네요.”
“그렇죠.”
그냥 멍하니 바다를 보는 것.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늘 보던 바다를 그냥 보는 건데 이렇게 좋은 이유가 뭐지?”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거니까?”
“아. 그거다.”
세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더 이상 이들의 안전을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이제 다 같이 기다리면 되는 거네요.”
“그렇죠.”
세라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다 같이 있다는 거. 적어도 걱정하던 사람들이 같이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좋다.”
“좋죠.”
“좋아.”
서준은 세라를 보며 더 밝은 미소를 지었다. 세라는 웃음을 터뜨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기한 감정이었다. 심장이 묘하게 두근거렸다.
“내가 이혼을 해줄게요.”
영부인이 보자고 한다는 말에 긴장을 하던 대통령은 미간을 모았다. 이건 또 무슨 말인 건지 머리가 복잡했다.
“전에도 내가 이미 말을 한 거 같은데. 당신이 원한다고 해서 아이를 줄 수는 없다고 말이오.”
“그런 거 아니에요.”
영부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무슨 말을 더 한다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었다.
“어차피 내가 뭘 더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잖아요. 재희도 나에게 하는 말이 뭔지 알 거 같고.”
“재희가 당신을 찾아가나?”
“늘.”
영부인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상해.”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당신은 늘 바빴어요. 두 아이를 모두 기른 것은 나였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당신을 따라.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 아이들 아이도 아니고. 이제 내가 놓아야 할 때가 왔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내가 물러서줄게. 당신을 위해서. 그리고 그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이제 뒤로 한 발 물러나줄게요.”
“아니.”
대통령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을 위해서 물러나라는 거야.”
“뭐라고요?”
“더 이상 우리를 당신의 삶의 우선에 두지 마요.”
영부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라는 거야?”
“당신이 그걸 알아야 할 텐데.”
영부인은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게요.”
“미안하오.”
“아니요.”
영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업이 있어 그렇지.”
“당신 정말.”
“그럼 갈게요.”
대통령은 영부인을 잡지 않았다. 아니 잡을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의 고집으로 모든 것을 하는 거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자신이 해야 하는 것. 그것에 미쳐서 결국 이런 판단을 내리는 거였다. 자신은 이 자리에서 다른 말을 할 수도 없는 거였고 다른 말을 해서도 안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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