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장. 동급생
“너 또 전학생이랑 무슨 말을 한 거야?”
“왜?”
“아니.”
아정이 날이 선 채로 반문하자 지수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애들이 뭐라고 하니까 그러지. 너랑 전학생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모르니까.”
“없었어.”
아정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다 지수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우리 오빠 영화 들어간다고 하던데?”
“어?”
아정의 말에 지수의 눈이 커다래졌다.
“정말?”
“응.”
“그걸 왜 이제 말해?”
“어?”
“미쳤어.”
지수는 아정에게 더 이상 관심이 없는 듯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멀리서 오는 지석과 원희를 보고 멈칫하다가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야?”
“뭐가?”
“아니.”
원희의 대답에 지석은 침을 삼켰다.
“너랑 윤아정.”
“거절했어.”
“어?”
지석의 눈이 커다래졌다. 놀란 지석과 다르게 원희는 그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아니.”
원희의 대답에 지석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진짜로 거절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 그래도 뭔가 좋게 말을 해줄 수도 있는 거잖아.”
“아니.”
원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에게 싫은 대답을 하면서 상처를 주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거절을 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줄 각오를 분명히 해야 하는 거였다.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상대방을 거절할 수 있는 재주 같은 거 가지고 있지 않아.”
“너 이상해.”
“뭐가?”
“나이를 속인 거 같아.”
지석의 허무한 말에 원희는 웃음을 터뜨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지석의 표정은 꽤나 진지했다.
“사실이 그러잖아.”
“뭐가?”
“그런 말을 어떻게 해?”
“못 하는 네가 이상할 걸?”
열심히 밥을 먹는 원희를 보며 지석은 볼을 부풀렸다. 그리고 이내 아무런 말도 없이 원희를 따라 밥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자꾸 이 부분이 틀리는 거네. 그냥 넘기는 거 어때?”
“어?”
“배점이 안 클 걸?”
지석의 말에 원희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래?”
“응. 안 되는 거 괜히 잡고 있는다고 해서 성적이 오르지 않아. 네가 잘 하는 거. 그런 유형의 문제를 푸는 게 좋을 거야. 너는 일단 수능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니야?”
“그렇지.”
원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생활기록부를 만들기에 자신은 너무 늦은 사태였다. 다른 애들은 이미 봉사도 꾸준히 한 상태였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거. 그거 잘 할 방법이 필요한 건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네.”
“아무래도 그렇지.”
“아 힘들다.”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고 머리를 한 움큼 쥐었다.
“공부가 쉬워?”
“아니.”
지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쉬울 리가 있어?”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거야?”
“그냥?”
“그냥이라고.”
지석의 간단한 대답에 원희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이라는 말이 참.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게 그렇게 쉬운 거야?”
“뭐.”
“나는 어려워.”
원희의 힘없는 대답에 지석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고 입을 내밀었다.
“그래도 좋다.”
“뭐가?”
“나는 네가 그냥 뭐든 다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거든. 그런데 지금 보니 아닌 모양이네.”
“그럴 리가 있어?”
원희는 혀로 입술을 적시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다시 해볼까요?”
“알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
“왜 갑자기 이래?”
“아니.”
아정은 문제집을 소리가 나게 덮고는 입을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렇게 단호하게 거절을 당할. 뭐 그런 정도의 매력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그건 무슨 자신감이니?”
“어?”
“너는 무조건 사귀어야 해?”
“그런 게 아니라.”
지수의 대답에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고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진짜 싫다.”
“나야 말로 싫다. 너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뭐가?”
“아니 왜 이렇게 애처럼 굴어?”
지수의 말에 아정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지수의 눈을 빤히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말이 심한 거 아니야?”
“뭐가?”
“내가 애처럼 굴다니.”
“그럼 아니야?”
지수도 책을 덮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조금 더 진득하니. 그렇게 기다려 보라고. 전학생이라고 뭐 그렇게 바로 대답을 할 수 있을 거 같아? 다른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고백을 하면 바로 대답하고 그러는 사람 아마 없을 거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아정은 그대로 몸을 굴리고 엎드리며 입을 내밀었다. 원희에게 제대로 차인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고등학교 3학년이라서 연애를 못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걔는 앞으로 다른 이유를 계속 만들 걸.”
“그러겠지.”
지수는 아랫입술을 물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정의 다리를 소리가 나게 때리고 미간을 모았다.
“그러니 너도 정신 차려.”
“아. 왜?”
“네가 뭐라고 하건 전학생 너에게 미련을 갖지 않을 거라는 말이야.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나 하세요.”
“이 봄에 이게 뭐니?”
“나야 말로 뭐니?”
지수는 입에 볼펜을 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서정 오빠는 언제 집에 온대?”
“다음주?”
“멋있어.”
아정은 그런 지수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침대에 등을 기대고 미간을 모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이대로 물러나는 것도 이상했다.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썰어야 하는 법이었다.
“오늘 너무 바쁘네.”
“그래서 좋은 걸요.”
유쾌하게 대답하고 서빙을 하는 원희를 보며 선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었다. 혼자서 어른인 척. 선재는 그런 원희를 보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내가 주문한 거 이거 아닌데?”
“네? 그럴 리가요.”
손님의 반응에 원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까 분명히 주문을 받을 때.”
“지금 내가 틀렸다는 건가요?”
“네? 아니.”
“뭐 이런 걔 다 있어!”
“딱 봐도 어려 보이는 게.”
커플인 손님이 목소리를 높이자 원희는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최대한 이 상황을 수습을 하려고 했다.
“일단 그럼 다른 음식으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네가 잘못 받아놓고 우리에게 지금 뭐라는 거야?”
“당장 제대로 사과를 하지 못해!”
다른 손님들까지 이쪽 테이블을 보는 상황이었다. 원희는 당황해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죄송합니다.”
“무릎이라도 꿇어야지. 이게 무슨.”
“야! 너 사과 그 따위로 할 거야!”
남성의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 원희는 머리에 뭔가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대로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무슨 일이십니까?”
선재가 나타났다.
“아니 여기 주문을 이 따위로 받아서 말이야.”
“나가세요.”
“뭐라고요?”
“나가시라고요.”
선재의 단호한 말에 커플 손님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우리 가게는 우리 가게의 직원에게 함부로 대하는 분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지 않습니다. 나가세요.”
“지금 여기 장사 좀 된다고 뭐라는 거야?”
“네. 장사 좀 된다고 이러는 겁니다.”
선재의 차분한 목소리에 커플 손님은 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선재는 원희의 앞을 완전히 막아섰다.
“당장 가주십시오.”
“인터넷에 다 올릴 거야!”
“올려주세요. 부디.”
선재는 한 마디도 밀리지 않고 차분히 대답했다.
“그리고 저희도 오늘 있었던 일 그대로 영상 공개할 겁니다. 저희는 음성까지 다 녹음이 되는 CCTV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재가 천장을 가리키자 커플 손님은 그쪽을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여성이 남성을 보더니 두 사람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나가버렸다. 원희는 그 순간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았다.
“괜찮아?”
“네? 네.”
다른 손님들까지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퇴근해.”
“하지만.”
“괜찮아.”
선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사촌동생 와있으라고 하면 돼. 어차피 그 지점은 지금이면 끝이 나는 시간이니까. 그리고 너 지금 이제 일 못해. 오히려 사고만 칠 거야. 알았지?”
“네? 네.”
원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재는 원희에게 앞치마를 벗기고 가방을 받아서 택시까지 태웠다.
“집에 가서 전화해.”
원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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