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장. 끈기
“이번 거는 제대로 개봉을 하는 거야?”
“당연하지.”
엄마의 물음에 서정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서도 있어요.”
“제대로인 거네?”
“그럼요.”
“모르지.”
아정은 머리를 질끈 묶으면서 부엌에 들어와 앉았다.
“그게 말이 되나?”
“왜?”
“오빠. 지난 번에도 계약서 썼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그거 개봉도 못 하고 바로 iptv로 간 거 아니야?”
“그거야.”
서정은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정은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레발 좀 치지 마. 그리고 엄마도 그만 해. 엄마가 그러니까 오빠가 자꾸 저러는 거 아니야.”
“내가 뭐?”
갑자기 타겟이 자신에게 오자 엄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꼭 나에게 뭐라고 하더라?”
“엄마가 문제니까.”
시리얼에 우유를 부으며 아정은 입을 내밀었다.
“둘 다 마음에 안 들어.”
“애 사춘기야?”
“사춘기네요.”
“뭐래?”
두 사람의 대화에 아정은 두 사람을 모두 노려봤다. 아정의 차가운 눈빛에 둘 다 입을 다물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정아. 돈 필요하니?”
“오빠가 용돈 줄까?”
“돈 떄문에 그런 건 아닌데 주면 좋고.”
아정은 대충 몇 숟가락 뜨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학교 가요.”
“다 먹지.”
“살쪄요.”
욕실로 들어가는 아정을 보며 엄마는 턱짓을 했다.
“무슨 일이야?”
“모르죠.”
“윤서정.”
엄마가 허리에 손을 얹으며 짐짓 엄한 표정을 짓자 서정은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제가 다 엄마한테 말을 하지. 그냥 혼자 알고 있겠어요?”
“너희 남매가 사이가 유난히 좋은 걸 내가 몰라?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말을 해야 하는 건데.”
“그게 좋은 거지.”
“좋기는.”
엄마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모았다.
“아무리 남매 사이가 좋다고 하더라도 나는 별로야. 거기 사이에서 내가 왕따가 되는 거 같아.”
“아정이는 엄마랑 내 사이가 너무 좋아서 자기가 우리 가족 중에서 왕따인 거 같다고 하던데요?”
“뭐?”
서정의 말에 엄마는 코웃음을 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여간.”
“다 느끼는 게 다른 거지.”
“그렇지.”
엄마는 엷은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가 할 수 있는 거야?”
“네.”
엄마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서정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 일 정도는 자신이 해야 하는 거였다.
“엄마는 엄마 일이나 하셔요.”
“내가 뭔가 무책임한 거 같아.”
“누가 그래?”
“나 스스로.”
엄마는 가슴께를 두드리며 울상을 지었다.
“내가 너희에게 더 잘 해야 하는 건데. 더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하는 건데. 그게 되게 어려운 일이다.”
“이미 좋아요.”
“정말?”
“그럼요.”
서정의 대답에 엄마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별 것도 아닌 거 같지만 이런 말들이 하나하나 다 위로가 되는 말들이었다.
“아들 덕분에 살아. 아들이 아니었으면 진작 지쳐서 나가 떨어졌을 거야. 다 네가 있어서 되는 거야.”
“알았습니다.”
“그럼 나는 출근해.”
“네. 제가 아정이 챙길게요.”
엄마는 잠시 더 서정을 슬픈 눈으로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서정은 부러 더 밝은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너 요즘 들어 얼굴 안 좋아.”
“그러니까.”
지수의 말에 아정은 볼을 잔뜩 부풀렸다.
“피부라는 게 한 번 망가지면 다시 살리기 되게 어렵단 말이야. 그런데 요즘 매일 얼굴이 망가지는 중이라고.”
“전학생 탓이라는 거야?”
“당연하지.”
아정의 대답에 지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왜 그래?”
“뭐가?”
“너 정말로 이상해.”
“내가?”
“응. 이상해.”
지수의 대답에 아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이상하다고?”
“너 많이 이상해.”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래. 나 이상해.”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어색하고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수는 그런 아정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전학생에게 그러지 말고.”
“알았어.”
아정은 애써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렇게 이상한가?”
벽에 다리를 대면서 아정은 입을 내밀었다.
“내가 그렇게 이상한 건가.”
좋으니까 좋아한다고 말을 하고 싶었던 거였다. 좋아하니까 자꾸 말을 하고 싶었다. 표현하고 싶었다.
“윤아정.”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스스로 생각해도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아정은 발을 마구 굴러서 벽을 차고 눈을 감았다.
“싫다.”
쪽팔려.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고 미간을 모았다.
“쟤 왜 저래?”
“그러게.”
갑자기 아정의 바에서 들린 소리에 엄마가 놀라며 묻자 서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너도 모르니?”
“엄마가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얘는.”
서정의 말에 엄마는 미간을 모았다.
“너 그거 되게 구시대적인 말이야. 엄마라고 해서 애들 일을 다 알아야 한다는 거. 남매가 좀 우애가 있어야지.”
“그것도 이상합니다.”
“그런가?”
엄마는 혀를 살짝 내밀며 어깨를 으쓱했다. 서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좋아하는 애가 생긴 모양이에요.”
“지금?”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왜요?”
“아니.”
서정이 반문하자 엄마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고는 이내 혀로 입술을 축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
“공부를 해야 할 때라고?”
“그래. 그거.”
엄마는 손가락을 튕기며 씩 웃었다.
“그거잖니.”
“그러지 마세요.”
서정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아정이가 여태 누구 한 번 좋아한 적이 있어요? 다른 애들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다 무시했던 애인데.”
“그랬어?”
“몰랐어요?”
“몰랐어.”
엄마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짧은 한숨을 토해내고 한쪽 다리를 올려서 팔을 올린 후 머리를 살짝 쥐었다.
“나 뭐니?”
“뭐가요?”
“나 엄마 맞니?”
“맞아요.”
ㅓ너츼 부드러운 대답에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리고 서정을 보면서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웃었다.
“어떻게 너 같은 아들을 나았을까?”
“엄마가 완벽하니까.”
“그래?”
“그럼요.”
엄마는 웃음을 터뜨리고 손을 한 번 내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다. 그만하자. 아정이가 나와서 들으면 우리 두 사람 다 이상하다고 할 거야. 엄마는 잘게.”
“네. 주무세요.”
서정은 엄마가 안방으로 가는 것을 보고 난 이후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윤아정.”
동생이 이런 일에 고민하는 것을 보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게 우스웠지만 결국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누구 걱정을 해.”
서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계속 좋아한다고 하면 나를 좋아해줄까?”
“어?”
밥을 먹던 서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아정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 요즘 누구 좋아해.”
“오. 드디어.”
“드디어라니?”
아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서정을 노려봤다. 서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왜?”
“나를 싫어하니까? 아니다. 다행히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아직 좋아하지 않는. 그런 거니까.”
“상대가 거절 의사를 명확히 밝혔는데 계속 좋다고 하는 거. 그거 스토커에 들어가는 거 아니야?”
“스토커라니.”
서정의 말에 아정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하여간 오빠라는 인간이 도대체 저런 말을 왜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김에 밥을 싸서 입에 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우물거렸다.
“좋아서 견딜 수 없어.”
“뭐라고?”
“정말 너무 좋아.”
서정이 놀릴 게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구에게라도 이 감정을 고스란히 다 말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고백할 거야.”
“뭐.”
서정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정은 한숨을 토해낸 채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었다.
'★ 소설 완결 > 현재진행형[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스 소설] 현재진행형 [35장. 가난한 소년] (0) | 2017.12.18 |
---|---|
[로맨스 소설] 현재진행형 [34장. 용기] (0) | 2017.12.18 |
[로맨스 소설] 현재진행형 [32장. 캔커피] (0) | 2017.12.14 |
[로맨스 소설] 현재진행형 [31장. 소년과 소녀] (0) | 2017.12.12 |
[로맨스 소설] 현재진행형 [30장. 어색한 순간] (0) | 2017.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