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장. 바람이 불고
“아무리 원희 편을 들어주고 싶어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자기는 상황이 조금 다른 거잖아.”
“그래도요.”
기연의 말에 은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죠. 그러면 나한테 담임을 주지 말던가. 담임인데 무시나 하고.”
“하긴.”
기연은 젓가락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해.”
“모르겠어요.”
은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뭘 더 해야 하는 건지.”
“하지 마.”
“네?”
“가끔은 그냥 두는 게 나아.”
“그래요?”
“그럼.”
은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두면 저절로 뭐든 되는 경우를 봤었다.
“그런데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응?”
“원희는 너무 지쳐보여.”
“하긴.”
기연도 은선의 말에 동의했다. 원희의 어깨는 너무 쳐졌고 그 아이의 얼굴에는 하루하루 피로가 묻었다.
“지금이라도 아르바이트를 줄이게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요즘 공부에도 흥미를 붙이는 거 같은데.”
“엄마가 건강이 안 좋아서 지금 원희가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거 같더라고요. 원희만 답이야.”
“그래? 걱정이네.”
기연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걔 아빠는 아직 감옥이야?”
“네. 아직.”
은선은 주위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애가 하는 거나. 애 엄마가 하는 행동을 보니까 정말로 누명이 맞는 거 같기는 해요.”
“그렇겠지. 그렇게 큰 돈을 횡령한 사람이라면 그것보다 더 잘 살 거니까. 이 학교에 그런 집 애들이 하나둘이어야지. 그런 거 보면 원희는 되게 바르게 자라는 거 같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러게요.”
은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할 정도로 바라요.”
“도둑놈 새끼.”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서 짐을 챙기던 원희가 멈칫했다.
“뭐라고?”
“맞잖아.”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지웅이 도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별로 상대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 그거 명예 훼손이라는 거 정도는 너도 알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감옥에 있잖아.”
성호의 말에 교실에 웅성거림이 생겼다.
“아니야?”
“그건.”
“맞네.”
원희가 무슨 대답을 하기도 전에 성호가 먼저 대답했다.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다고?”
“그래. 맞아.”
원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혼자서 모른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게 뭐?”
“그게 뭐라니?”
“그게 너희들하고 상관이 있는 거야?”
“당연하지.”
원희의 물음에 지웅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범죄자 아들하고 한 반인 거. 이거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야? 이런 거 우리는 못 참는 거지.”
“그러게. 지금 우리에게 이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다는 거야? 안 되는 거지.”
“아직 판결 안 났어.”
원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가 몰아세우는 것.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아무런 관계를 맺지도 않은 아이들이니 이런 말을 듣는 것은 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런데 그거 도대체 어디에서 들은 건지 모르겠네. 너희가 알 수 없는 정보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거야.”
무슨 말을 하려던 지웅이 입을 다물었다.
“네가 알아서 뭐 하게?”
“따져야지.”
“뭐?”
“학교에.”
원희는 차분히 말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너희가 지금 알고 있는 걱. 그거 개인정보인 거거든. 우리 아버지가 감옥에 있는 거.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미쳤다고 내 입으로 말을 하지는 않은 건데 말이야. 네 아버지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거 안 되는 거야. 그런 정보가 네가 알아서 안 되는 거거든.”
“그, 그거야.”
원희의 말에 지웅과 성호가 놀라서 서로를 쳐다봤다.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 것도 감당할 수 없으면서 지르는 거 아니야. 뭔가 감당할 수 있을 때. 그때 지르는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 아버지 무죄라고.”
원희는 이대로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뒷문으로 향하는데 성호가 원희의 가방을 붙잡았고 그대로 가방이 툭 하고 끊어졌다.
“뭐, 뭐야?”
“미친.”
두 아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 대충 꼬맨 거잖아.”
“씨발 놀랐네. 내가 끊은 줄 알고.”
두 아이가 낄낄거리는 모습을 보며 원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두 아이가 끊은 것을 지금 남의 탓을 하는 거였다.
“너희가 끊은 거야.”
“애초에 낡은 거잖아.”
“그래서?”
“그래서라니.”
“그렇다고 해서 이 가방이 저절로 툭 끊어지는 건 아니잖아. 너희가 잡아당겨서 끊어진 거잖아.”
“미친.”
지웅이 주먹을 쥐고 앞으로 나섰다.
“너 지금 우리가 말로 하니까 되게 만만하게 뵈는 거지? 우리가 도대체 누구인지 모르는 거지?”
“미친 새끼가 존나 나대네.”
성호가 쿡 하고 웃더니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원희는 여유롭게 그것을 보더니 뒤로 한 발 물러섰고 성호가 앞으로 중심을 잃는 사이 그대로 등을 가볍게 손으로 눌렀다. 성호가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넘어졌다.
“젠장.”
“괜찮아?”
지웅이 곧바로 성호를 일으켰다.
“뭐 하는 거야?”
“뭐가?”
“이거 학교 폭력이야.”
“학교 폭력?”
원희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혀로 입술을 적신 후 한숨을 토해냈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애초에 지금 이 일이 왜 일어난 건지 모르는 거야?”
“뭐라고?”
“너희가 시작한 거야.”
“그거야.”
원희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다시 가방을 들어서 가볍게 먼지를 툭툭 털고 인상을 찌푸렸다.
“너희에게는 이게 아무 것도 아닌 거 같지만 나에게는 귀한 거거든. 그리고 나는 아무 것도 안 했어. 먼저 주먹을 날린 건 너야.”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
교실을 나서는 원희의 뒤에 지웅의 말이 꽂혔다.
“우리 아버지 경찰이야! 이 새끼야.”
“그래서?”
원희는 씩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중요해?”
“뭐?”
원희는 이 말을 남기고 그대로 교실을 나섰다. 뒤에서 애들이 악다구니를 쓰는 게 들렸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 좀 확인해 줘.”
“알겠습니다.”
재필과 일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불편한 것은 일이 너무 낯설다는 것 정도.
“고생했어.”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선재와 다르게 뭔가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 애초에 없는 것이니 원희는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섰다.
“달이 떴네.”
힘든 순간이었다.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아버님 일단 진정을 하시고.”
“진정이요?”
은선의 말에 지웅의 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봐요. 선생님이 지금 애를 안 키워서 그러는 건데. 그리고 그 깡패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하교 했죠.”
“뭐라고요?”
지웅의 어머니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아니.”
“이 학교가 그래도 우리 동네에서 제일 명문인데 이 시간에 애를 그냥 집에 보내는 게 말이 됩니까?”
“그 새끼 거지야.”
지웅의 낮은 목소리에 부모의 얼굴이 변했다. 뒤늦게 온 성호의 부모도 은선의 앞에 서서 얼굴을 붉혔다.
“우리는 무조건 그 아이를 봐야겠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애라서 그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부모님들. 이건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여기에서 어른이 개입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뭐라는 거야?”
은선의 말에 성호 어머니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러니까 그 미친 깡패가 그러는 거지. 선생님부터가 지금 이상하게 행동을 하잖아. 아니에요?”
“어머니. 그 아이 성실한 아이에요. 그리고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이거 성호랑 지웅이가 시작했어요.”
“뭐라고요?”
“왜 생사람을 잡아.”
“아닙니다. 생사람 잡는 거.”
기연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은선의 옆에 섰다.
“당신은 누구에요?”
“수학 교사에요.”
기연은 씩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이것 좀 보실래요?”
기연은 전에 자신이 찍었던 영상을 그 자리에서 재생했다. 성호와 지웅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양쪽 붐의 얼굴도 굳어갔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이 얼굴에 상처 하나 없는 거 부모님들도 아실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기연의 말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돌아가세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돌아가세요.”
은선까지 말을 보태자 네 학부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선은 그들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하며 끝까지 마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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