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장. 콜라
“미안해.”
“엄마가 왜?”
엄마의 사과에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모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간 건데. 엄마가 그거에 대해서 사과를 하고 그럴 이유가 뭐가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네 고모가 그래도 너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인 거잖아.”
“아니요.”
원희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고모는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도울 생각도 없어 보였다.
“엄마도 알고 있잖아. 고모 그냥 해보는 말이야. 내가 공부를 좀 한다고 하니까. 그냥 괜히 그러는 거라고요. 그러니까 그냥 무시해. 도대체 왜 엄마가 고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해.”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컸어?”
“엄마 모르는 사이에.”
엄마는 싱긋 웃으며 어색하게 원희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게. 엄마가 모르는 사이에 다 컸네.”
“엄마.”
“아니야.”
원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원희의 눈을 응시했다.
“원희 네 탓을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그렇다고.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러게.”
“엄마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그렇게 어른이 되어버린 거 같아. 아직 아이어도 되는 거 같은데.”
“아니.”
원희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래?”
“그럼.”
“그럼 다행이고.”
원희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조금이라도 엄마의 마음을 덜어주는 것.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게 말이 돼?”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원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교칙이 바뀐 거라고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없는 거잖아. 그나마 주말이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
“그래도 시간이 다르잖아.”
“어차피 공부도 더 하려고 했어.”
원희의 대답에도 지석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건 지웅과 성호의 짓이었다.
“따져야 하는 거 아니야?”
“따지면?”
“어?”
“담임 선생님도 다 따져주신 거 같던데.”
“하지만.”
지석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문제를 더 만들고 싶은 건 아니야. 오히려 차라리 이렇게 끝이 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어?”
“그 녀석들 이게 다잖아.”
“다라니?”
“다른 거 못 할 거야.”
원희는 이리저리 목을 풀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지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모를 일이었다.
“저 녀석들이 그거 가지고 그만둘 녀석들이었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걸? 미친 녀석들이야.”
“나도 만만치 않게 미쳤어.”
원희의 대답에 지석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걱정스러운 시선을 여전히 이어갔다.
“말도 안 돼.”
지석의 말을 들은 아정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아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수가 미간을 모았다.
“뭐하게?”
“가서 따져야지.”
“네가?”
“그럼.”
“앉아.”
지수는 아정의 손을 꼭 잡았다.
“윤아정. 네가 가서 될 일이었다면 애초에 원희가 가도 됐을 거야. 그런데 이게 해결이 안 된 거라면 우리가 간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거야. 오히려 우리가 가면 원희가 더 귀찮을 수도 있어.”
“하지만.”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말도 안 되는 거잖아.”
너무나도 유치하고 비열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에 선생님들도 동의를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그게 말이 되는 거야? 다들 원희 상황을 알면서.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 녀석들 부모 대단하잖아.”
“그래도.”
지석의 간단한 말에 아정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우리도 부탁하자.”
“뭘?”
“부모님.”
아정의 말에 지석과 지수의 눈이 부딪쳤다. 그리고 지수는 곧바로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
“왜 안 돼?”
“우리 부모님 걔네 부모님하고 같은 교회에 다녀. 그런데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안 그래?”
“그러니 더 할 수 있지.”
지수는 혀로 입술을 적셨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너 왜 그런 소리를 아정이에게 한 거야?”
“어?”
지수의 물음에 지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왜라니. 너 내가 아정이랑 전학생 좀 도와달라고 했을 때 무시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왜 아정이의 도움을 원하는 거야? 아정이가 왜 전학생을 그런 식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건데.”
“아정이가 원희를 좋아하니까.”
“그게 이유가 되니?”
지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 도대체 왜 그래? 아정이가 그냥 지금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거. 그냥 그 정도라는 거 몰라?”
“너야 말로 모르는 거 같은데?”
“뭘?”
“윤아정 원희 진짜 좋아해.”
지석의 말에 지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무리 진짜 좋아한다고 해도 더 이상 어린아이들이 아니었다.
“우리 이제 공부를 해야 할 때야. 그런데 자꾸 아정이가 전학생의 일에 대해서 아는 거. 그거 아정이에게 좋지 않아.”
“알 거야.”
“뭐가?”
“말 안 해도 알았을 거라고.”
지석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벽에 기댔다. 그리고 이리저리 목을 풀고 머리를 가볍게 뒤로 쓸어 넘겼다.
“매일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나가던 애가 자습을 하겠다고 그 자리에 있으면. 윤아정이 눈치를 챌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럴 거라면 그냥 미리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는 게 더 나은 거야.”
“아무리 그래도.”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지석의 말이 옳을 수도 있지만. 아무리 옳다고 해도 무조건 그런 식으로 다 말하는 것은 반대였다. 아정을 위해서도 전학생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거 안다고 해서 전학생이 기분이 나빠하거나 자격지심 같은 것을 느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건데?”
“너 원희 무시하는 거네.”
“뭐?”
지석의 지적에 지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야.”
“아니야?”
“그래. 아니야.”
지수의 대답에 지석은 그저 빙긋 웃었다. 지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왜 지석과 이런 말도 안 되는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건지 이 자체가 용납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부모님에게 이 일을 말하지 않을 거야. 이거 얼마나 귀찮은 일이 될 줄 알아?”
“알아.”
“그런데?”
“나는 말씀을 드리려고.”
“뭐?”
지석의 집도 그리 만만한 집은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에 장학금을 내고 하는 것을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너 지금 농담을 하는 거지?”
“농담?”
“아니 그걸 말해서 뭘 하려고?”
“고쳐야지.”
“뭘?”
“다.”
“미쳤어.”
지수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자체가 미친 거였다.
“콜라 마실래?”
“어?”
편의점에 있던 원희는 아정이 나타나자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정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나 너랑 있으면 불편해.”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콜라 마실래?”
아정이 다시 한 번 자신이 할 말만 하자 원희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너는 왜 그러는 거야?”
“뭐가?”
“알면서 물어.”
“그래서.”
아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내가 계속 이렇게 행동할 거라는 걸 알면서 너는 왜 자꾸 같은 말을 하면서 피하기만 하는 거야?”
“무슨 말이야?”
“나는 네가 좋아.”
원희는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이쪽을 보지 않는 것 같았다. 원희는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왜 자꾸 그러는 거야?”
“뭐가?”
“그 말도 안 되는 고백.”
“왜 말이 안 되는 건데?”
“어?”
원희가 제대로 말을 못하는 사이 아정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곧바로 콜라를 뽑아왔다.
“마셔.”
“싫어.”
“왜?”
“동정하지 마.”
“동정 아니야.”
아정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좋아서 그래.”
“뭐라는 거야?”
“네가 너무 좋아서. 그래서 너에게 뭐라도 하나라도 더 주고 싶다고 말을 하는 거야. 나는 콜라를 좋아하거든.”
아정은 이렇게 말을 하고 콜라를 들이켰다. 원희는 그런 아정을 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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