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장. 컵라면
“어려울 거야.”
“알아.”
서정의 간단한 대답에 아정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쉬울 거라고 생각하고 도와달라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오빠가 나서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오빠는 그래도 유명인이고 한 거니까 말이야. 안 그래?”
“안 그럴 걸?”
서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너도 아는 것처럼 그쪽에서도 나올 때 뭔가 생각을 하고 나왔을 거야. 자신들이 얼마나 무식한 사람들인지 상대가 알아도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온 거잖아. 그런데 내가 뭐라고 한들 그게 바뀔까?”
“오빠.”
“알았어.”
아정이 다시 한 번 자신을 부르자 서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고.”
“고마워.”
“좋아하는 애가 생기니 달라지네.”
“그런 거 아니거든.”
아정은 볼을 잔뜩 부풀린 채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냥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그럴 수 없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였다.
“원희가 아니라 누구라도 나는 나섰을 거야. 그게 옳은 일이니까. 우리는 야만인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제대로 도와줄게.”
“알았어.”
서정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은 그 미소가 여전히 불편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컵라면은.”
“괜찮아요.”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원희는 곧바로 엄마를 말렸다. 엄마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너 이제 아르바이트를 안 해서 먹을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아무 것도 안 해놨네.”
“어차피 학교에서 석식 먹는데요.”
“그래도. 이 시간이면 배가 고프지.”
엄마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 묻어나자 원희는 씩 웃었다. 원희는 더 밝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 라면 좋아해. 알잖아.”
“그거 몸에 나빠.”
“괜찮아요.”
원희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씩 웃었다.
“운동할 때보다 더 건강한 거 같아.”
“정말?”
“그럼요.”
원희의 말에 엄마는 겨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도 그런 엄마를 따라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아무리 이렇게 찾아온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왜 안 되는데요?”
“뭐?”
졸업생이 찾아온 것만 해도 난처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자기주장을 밝히다니 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윤서정 씨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도 모르겠네. 애초에 우리가 사는 것과 다른 세상이잖아.”
“다른 세상이요?”
“그럼.”
“그게 무슨.”
서정은 혀로 이를 훑으며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 이런 분 아니셨잖아요.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건데요?”
“너 애 아니잖아.”
“선생님.”
서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저는 선생님하고 더 할 이야기는 없을 거 같아요.”
“그래.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교육청에 민원 넣을게요.”
서정의 말에 부장의 얼굴이 곧바로 구겨졌다. 서정은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한다면 하는 거 아시죠?”
“아정이 지금 학교 다녀.”
“그런데요?”
“뭐?”
“걔 알아서 잘 하는 애에요.”
“아니.”
“혹시 그렇게 잘 하는 애한테 뭘 부당하게 하시려는 건 아니죠?”
서정의 말에 부장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서정은 그저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 부장을 응시했다. 부장은 한숨을 토해내며 가볍게 넥타이를 풀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너랑 같이 과외를 듣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내가 듣고 싶어.”
“아니.”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정이 자기 혼자만의 이야기를 하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너 싫다고. 너랑 안 사귈 거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도대체 왜 자꾸 그러는 건데?”
“너 나 좋아하니까.”
“뭐?”
“좋아하는 거 같아.”
아정의 대답에 원희는 미간을 모았다.
“무슨.”
“같이 라면 먹자.”
“뭐?”
“나 저녁 신청 안 했어.”
아정의 당당한 말에 원희는 한숨을 토해냈다. 사람을 농락해도 유분수였다. 이런 식으로 무시를 받고 싶지 않았다.
“너 돈이 많은 거 알고 있어.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렇게 불쌍해?”
“응.”
아정이 너무나도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원희는 입을 벌렸다. 아정은 씩 웃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너 너무 이상한 거 알아? 내가 이런 식으로 너를 계속 밀어내면 자존심이 상하지 않아? 화가 나고 막 짜증이 나지 않아?”
“안 나.”
아정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뭐?”
“내가 너를 좋아해서 뭐라도 하고 싶어하는 거야. 그런데 이걸 가지고 화를 낼 이유는 없을 거 같은데. 나는 정말로 네가 좋아.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거. 지금 내 마음. 이 모든 것을 다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이상한 식으로 나를 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나 밀리지 않을 거야.”
“아니.”
원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하지만 아정은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원희가 돌아서려고 하자 아정이 손을 잡았다.
“라면 먹어.”
“안 먹어.”
“그럼 뭐 먹게?”
“됐어. 너랑 안 먹어.”
“그럼 네가 사.”
“뭐?”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아정의 말에 원희는 미간을 모았다. 아정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하자는 거야?”
“왜. 내가 너 사주는 게 자존심이 상한다는 거 아니야? 그럼 내가 너에게 얻어먹겠다는 거야. 내가 그 동안 너에게 해주는 거 있으면 그래도 네가 나에게 그 정도는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니.”
원희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아정이 먼저 아줌마에게 가서 주문을 시작했다. 원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너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자꾸 이러면 너 자존심 상하지 않아? 나를 보면 화가 나지 않아?”
“안 나.”
머리를 잡고 라면을 먹으며 아정은 씩 웃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어?”
“내가 너를 좋아해서 표현하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그 선을 넘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겁을 내지는 말고.”
“아니.”
그런 게 겁을 낸다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이렇게 밀어낸다면 아정이 물러나야 하는 게 맞았다.
“자존심 안 상하냐고. 너 이상하잖아. 처음에는 나를 무시하고 가난하다고 하던 네가 나에게 왜 이러는 건데.”
“미안해.”
“뭐?”
“그거 정말 미안해.”
아정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하자 원희는 한숨을 토해냈다.
“내가 정말 잘못한 거야. 내가 실수한 거야. 내가 너에게 그러면 안 되었던 건데. 너에게 그러면 안 되었던 거야. 너무 미안해. 내가 너를 무시한 게 아니었어. 네가 화를 풀 때까지 계속 사과할게.”
“아니.”
원희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짜증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그거 먹던 말던 나는 먼저 갈게.”
“같이 먹어.”
“싫어.”
“진짜 치사해!”
아정의 외침이 뒤에서 들렸지만 원희는 무시하고 그대로 돌아섰다. 아정은 입을 쭉 내밀고 면을 입에 밀어넣었다.
“거지새끼. 밥 먹을 돈도 없냐?”
복도를 돌아 나오는데 성호와 지웅이 원희를 막아섰다.
“그렇게 돈이 없으면 학교에서 도와달라고 해. 거지 같이 살면서 무슨 자존심으로 그런 것도 안 받아.”
“아. 받고 있어.”
원희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받아쳤다.
“그런데 저녁은 갑자기 하게 되어서. 그런데 왜 갑자기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한 건지는 궁금해서.”
“그거야 교칙이니까.”
“교칙?”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원희의 이런 여유로운 모습에 지웅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는 거야?”
“그거 갑자기 바뀐 거잖아.”
“뭐?”
“신기하지.”
원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씩 웃었다.
“도대체 왜 그런 건지 너무 궁금해서 그래.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싶기도 하고. 혹시 너희는 왜 그런지 알아?”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아?”
지웅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그대로 지나가버렸다. 성호와 지웅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나도 같이 가자니까.”
“너 어차피 밥 먹는데. 그리고 너 요즘 살이 좀 붙은 거 같아. 한 달 사이에 살이 좀 찐 거 같아.”
“아니거든.”
지석이 자신의 배를 내려 보면서 한숨을 토해내자 원희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수학 좀 도와줘.”
“너 라면 먹으면 큰일 난다.”
“괜찮아.”
아정은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씩 웃었다. 지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너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 그런 거 잘 안 가리는 거 알잖아.”
“그래. 그래. 알겠다.”
아정은 씩 웃으면서 지수의 허리를 안았다. 지수는 가만히 웃으면서 그런 아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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