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장. 나쁜 선생님
“괜찮니?”
“네? 네.”
은선은 아정의 손을 꼭 잡았다.
“무슨 일이야?”
“그게.”
무슨 말을 할까 하다가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거짓말.”
은선의 말에 아정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자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맞았다. 다만 은선이 이렇게 말하니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제가 알아서 해요.”
“그럼 그냥 핫초코 마실래?”
“네?”
“내가 자판기 걸 좋아해.”
은선은 이렇게 말하고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았다.
“요즘에는 다들 더럽다고 안 마시기는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기분도 좋잖아.”
“아니.”
“우유는 좋아하니?”
“우유요?”
“자판기 우유.”
“아니요.”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마신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그냥 음료수를 마시면 되잖아요.”
“다르지.”
“네?”
“마셔봐.”
은선이 내민 종이컵을 아정은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니까.”
“안 죽어.”
아정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시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었다. 뭔가 핫초코보다도 더 달았다.
“이건.”
“설탕물이지.”
은선은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뭔지 몰라도. 너무 고집을 부리는 건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어. 지금은 그게 너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다지 의미가 없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안리 수도 있거든.”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은선이 마치 뭐든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들으며 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선은 아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지수랑 잘 지내.”
“그러려고요.”
“지금 엇나갔다가 다시 못 돌릴 수도 있어.”
“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걱정이 되는 거였다. 아정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 혹시 이런 거 필요해?”
“어?”
“옆집 아줌마가 줬어.”
연습장들이었다. 날짜가 지난 다이어리였는데 아마 자신이 공부를 한다고 해서 준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필요가 없는 것들을 버린 것이 아니었나 싶었는데 날짜만 지났을 뿐 잘 보관이 되어있었다.
“쓰레기 아니야.”
“그런 생각 안 했어요.”
“그래도.”
엄마는 어색하게 웃었다.
“옆집 아들이 소설을 한다고 집에 있잖아. 그리고 이것저것 적고 그러느라고 아무 것도 못 버리게 한다고 하더라고. 그 달력 뒤에도 적고 그런대. 내가 폐지 버릴 때 다 봤어. 너 수학 푼 것도 내놓다가 본 모양이야. 그래서.”
“알아요.”
엄마의 변명이 길어지자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자신을 생각해 받은 거였다.
“고마워.”
“도움이 되는 거지?”
“그럼요.”
원희의 미소에 엄마도 겨우 웃었다.
“그럼 공부해.”
“네. 고맙습니다.”
엄마가 방에서 나가고 원희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만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은 무슨.”
이 상황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주는 거. 그거 자체가 사치였다.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부터 아르바이트 금지입니다.”
“네? 그게 무슨.”
부장의 말에 은선의 얼굴이 굳었다.
“갑자기 그런 거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교칙을 그렇게 바로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왜 이렇게 말이 많아요?”
“네? 무슨?”
부장의 말에 은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부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다 위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제가 이 학교에 지금 몇 년을 있었는데요.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처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이거 지금 원희 한 학생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에요?”
“알고 있네요.”
“뭐라고요?”
“맞습니다.”
은선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한 아이 때문에 이런다는 게 말이 될 수 없었다.
“원희 사정을 부장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이건 합의하자는 게 아닙니다.”
“아니.”
“그냥 하면 되는 겁니다.”
은선은 무슨 말을 하지 못했다. 그대로 돌아서는 부장을 보고 은선은 침을 꿀꺽 삼키고 한숨을 토해냈다.
“저기 원희야.”
“네?”
기연에게 수학을 물어보고 돌아서는데 은선이 자신을 붙잡았다. 원희는 고개를 갸웃하고 은선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갑작스러운 아정의 사과에 지수는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왜 그래?”
“내가 그렇게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였어. 네 입장은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나만 생각을 했던 거야.”
“아니.”
지수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네가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
“미안해서 그래.”
“아니.”
“내가 미안해서 그래.”
아정의 사과에 지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아니 받을 수 없었다.
“나는 네가 사과하면 무조건 받아야 하는 사람이야?”
“어?”
“그냥 늘 화를 내고. 나는 네가 사과를 하면 또 받아주고. 그냥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사람인 거냐고.”
“아니.”
지수의 날이 선 물음에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데 왜?”
“더 이상 어긋나기 싫어서.”
“뭐?”
“이대로 가면 정말 어긋날 거 같아서.”
지수는 아정의 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아정은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지수를 응시하는 중이었다. 지수는 한숨을 토해냈다.
“정말 미워.”
“알아.”
“네가 뭘 알아?”
“나 미운 사람이라는 거.”
“안 미워서 밉다는 거야.”
“어?”
지수의 말에 아정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수는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미워.”
지수의 말에 아정은 겨우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나는 정말.”
지수는 아정을 가볍게 흘겨봤다. 아정은 혀를 내밀고 씩 웃었다. 좋았다. 그냥 친구가 있다는 게 좋았다.
“미안해.”
“아니요.”
은선의 사과에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학교 교칙이 그렇게 된 거라고 하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거죠. 그걸 가지고 선생님이 사과를 할 일은 아니죠.”
“그래도 미안해.”
은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자신이 조금 더 힘이 있는 교사였더라면 그랬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였다.
“그런데 오늘까지는 나갈 수 있을까요?”
“어?”
“가서 이제 못 나온다고 말을 해야 해서.”
“아. 그러네.”
은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오늘 부장의 눈치가 보였다. 은선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을 보고 원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로 할게요.”
“미안해.”
“아니요.”
원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은선이 자신에게 사과를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많은 양해를 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그래. 가.”
원희가 교무실을 나서는 것을 보며 은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나 왜 이렇게 무기력하니.”
은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너무나도 무기력한 선생이라는 게 싫었다.
“왜 이렇게 교무실을 다니는 거야?”
“여쭤볼 문제가 있어서요.”
“그럼 학원을 다녀.”
부장의 말에 원희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제대로 인사를 안 해?”
“네?”
“하여간.”
부장은 지휘봉으로 원희의 가슴을 쿡 찔렀다. 원희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다시 인사를 꾸벅 하고 돌아섰다.
“건방져.”
원희는 한숨을 토해냈다. 답답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우리 학교가 그냥 학교에요? 내 아버지부터 다니던 학교에요. 우리 남편도 이 학교를 다녔고. 나도 이 학교를 다녔어. 그런데 그렇게 떨어지는 애를 받아요?”
“죄송합니다.”
교감이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게.”
“아무리 가련한 아이들을 다 받아준다고 하지만 이건 안 되는 거지. 그러다가 무슨 꼴이 날 줄 알고.”
“그러니까요.”
“말도 안 되는 거야.”
학부모들이 이런 말을 이어가자 교감은 연신 땀을 훔쳐냈다.
“이란 그 아이 아르바이트부터 못 하게 해요. 어디 품위가 떨어지게 우리 학교 애가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해요? 차라리 장학금을 줘.”
“그럼요. 당연히 그만 두게 했습니다.”
교감은 허리를 굽실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걸 보고 있던 은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 소설 완결 > 현재진행형[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맨스 소설] 현재진행형 [43장. 콜라] (0) | 2018.01.01 |
---|---|
[로맨스 소설] 현재진행형 [42장. 외로운 섬] (0) | 2018.01.01 |
[로맨스 소설] 현재진행형 [40장. 좋은 선생님] (0) | 2017.12.26 |
[로맨스 소설] 현재진행형 [39장. 힘든 날] (0) | 2017.12.22 |
[로맨스 소설] 현재진행형 [38장. 바람이 불고] (0) | 2017.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