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장. 금요일
“이제 너희들 다음 주부터 중간고사야.”
은선의 말에 아이들의 얼굴이 모두 어두워졌다. 은선은 가볍게 박수를 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주말 놀지 말고 열심히 해.”
“안 그래도 그러고 있어요.”
“더 열심히 하라고.”
은선은 더 밝은 표정을 지으며 교실을 나갔다.
“저기 선생님.”
그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은선이 고개를 돌렸다. 원희였다.
“조별 과제가 그렇게 불편하니?”
“네. 조금은 그래요.”
원희의 말에 은선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시험 끝나고.”
“알겠습니다.”
원희가 짧게 허리를 숙이고 멀어지자 은선은 고개를 저었다. 원희의 표정이 자꾸만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직도 싫어?”
“응.”
지석의 제안에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너 너무 고마워. 그러니까 너에게 더 이상 미안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아. 그거 이상한 거잖아.”
“나 혼자 공부하기가 싫어서 그래.”
“그래도.”
원희는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석은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이었으니까 더 이상 안 되는 거였다.
“그리고 말했잖아. 아르바이트.”
“그 시간을 피하면 되는 거지.”
“아니.”
원희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래도.”
“됐습니다.”
원희가 다시 힘을 주어 말하자 지석은 한숨을 토해냈다. 원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너 왜 안 한다고 하는 거야?”
“뭐가?”
아정이 갑자기 다가와서 검지를 내밀자 원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정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같이 과외를 하자는 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그렇게 싫다고 할 이유가 있어?”
“싫어.”
원희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왜 같이 해야 하는 건데?”
“아니.”
아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왜 싫어?”
“실으면 안 돼?”
“안 되지.”
“뭐?”
“전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사이여서 그런 거였고. 이제는 우리들 다들 아는 사이고 친구라며? 그런데 문제가 될 게 있어?”
“어?”
“친구잖아.”
아정의 말에 원희는 궁지에 몰렸다. 그렇게 자기 입으로 친구라고 해놓고서 안 된다고 하는 게 이상한 거였다.
“친구라면서 안 되는 이유가 뭔데? 그리고 너 이상한 고집 좀 부리지 마. 어차피 나랑 지수랑 지석이 셋이서 하면 너 하나 더 가르치는 거 돈 안 받아. 그리고 너도 알 거 아니야. 너 우리보다 수준 많이 낮아.”
“그건 그렇지만.”
“그러니까 폐도 아니야.”
원희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다가 아정의 눈을 가만히 보며 다시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아르바이트.”
“열두 시잖아.”
“어?”
“연남동에서 열 시.”
“아니.”
“근처 카페에서 하면 되는 거지.”
아정의 간단한 대답에 원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돼?”
“돼.”
아정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할 건 하나 없었다.
“너 안 그래도 혼자서 공부하는 거 힘들어하고 있었던 거잖아. 그리고 지석이도 너 알려주는 거 힘들다고 한 거고. 너 지석이가 그렇게 좋은 친구라면서 지석이에게 계속 그 부탁을 할 거야?”
“그건.”
원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정의 말처럼 이건 지석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너 정말로 지석이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네 친구라고 생각을 한다면 지석이 입장도 생각을 좀 해줘.”
“일단 생각 좀 할게.”
“그래.”
아정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싫어.”
“뭐?”
지수의 단호한 말에 아정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솔직히 수준이 다르잖아. 그리고 너도 공부를 하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 너도 괜히 전학생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아니야.”
지수의 지적에 아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공부하는 거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좋잖아. 안 그래?”
“왜 우리 셋이 걔 돈까지 내.”
“그럼 내가 낼게.”
“윤아정. 그 말이 아니잖아.”
지수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문 후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자꾸만 원희 곁에 있는 게 아정에게 좋지 않을 거였다.
“너 그거 안 돼.”
“뭐가?”
“미련을 버려야 하는 거지. 너 자꾸만 그러면 미련만 더 생기고 원희에 대해서 이상한 생각만 할 거라고.”
“그래?”
“그래가 아니잖아.”
지수의 답답한 표정에도 아정은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공부하는 게 나쁜 거 아니잖아. 내가 뭐 이상한 짓을 한다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짓이야.”
“그런가?”
“다 말할 거야.”
“오빠?”
“그래.”
아정은 볼을 부풀리고 가볍게 어꺠를 으쓱했다.
“오빠 집에 없는데?”
“뭐?”
“촬영 갔어.”
“촬영?”
지수의 목소리가 곧바로 변하자 아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잘 나가는 배우도 아닌데 도대체 윤서정이 뭐가 좋다는 거야? 너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배우 좀 좋아해.”
“그건 아니지.”
지수는 검지를 들고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을 좋아하는 게 또 매력이 있는 거라고. 그게 약간 힙한 거라고 할까?”
“힙은.”
아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수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지금 내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닌 거잖아. 너 이제 고 3이야. 이제 중간고사도 온 거라고.”
“그래서 공부하자고 우리 집에 온 거잖아.”
“그러니까.”
지수는 혀로 입술을 훑고 눈썹을 긁었다.
“나는 네가 전학생하고 거리를 좀 두기를 바라. 지금 너무 전학생에게 목을 매는 거잖아.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내가 맞아.”
“뭐.”
아정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원희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지금 포기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뭐가 이상해?”
“너무 쉽잖아.”
“아니.”
지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너 그거 문제야.”
“문제는.”
“문제 맞아.”
지수가 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아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상대가 싫다고 하는 거잖아. 너랑 사귀기 싫다고 하는 건데 도대체 너는 왜 자꾸 그러는 건데?”
“원희 나 안 싫어해. 원희도 나 좋아해.”
“아니. 아니야.”
지수는 아정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이고 어색하게 웃었다.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알아.”
“거짓말.”
“내가 안다고.”
아정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그리고 가볍게 헛기침을 하면서 지수의 시선을 피하려고 했지만 지수는 단호했다. 지수의 그런 시선에 아정은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안 좋아하는 척을 하라고? 그거 너무 이상한 거잖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뭐가 안 되는 건데? 네가 좋아하면 상대가 무조건 너를 좋아해야 하는 거야? 그런 건 아니잖아.”
“그런 말이 아니야.”
“너 지금 그래.”
“지수야.”
“너 지금 그런 거라고.”
아정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그렇게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지수의 입으로 듣는 것은 전혀 다른 경우였다.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 마.”
“뭘 하지 마.”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잘못하는 것도 아니고. 너는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잖아.”
“내가 보기에 너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거야. 너 지금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러고 있는 거라고.”
“내가 뭘?”
“전학생 자존심이 상하는 거 아니야?”
“그건.”
그게 맞을 거였다. 원희가 자신을 밀어내려고 하는 것은 모두 다 자존심일 거였다. 자신이 그 자존심을 건드리는 거였다.
“원희가 바라는 거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알고 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그래도 친해진 거잖아.”
“전학생 입장에서는 선택권이 없잖아.”
“뭐?”
“우리가 다잖아.”
“그러니까 부탁해.”
아정이 두 손을 모으며 말하자 지수는 미간을 모았다.
“뭐?”
“나를.”
“윤아정.”
“너 내 친구잖아.”
아정의 간단한 말에 지수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친구라는 이유로 뭐든 다 해야 한다는 게 이상했다.
“너 지금 그거 이상한 말인 거 알아? 아무리 네가 친구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네 편을 들어야 한다는 거 그거 아니야.”
“너 원희 싫어하잖아.”
“지금 네가 더 싫어.”
지수는 물끄러미 아정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정은 지수가 집을 나가는 것을 보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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