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장. 수요일
“정말 아빠가 준 거야?”
“그럼.”
“정말?”
“그래.”
원희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는 입을 내밀고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야.”
“그래요?”
“그래.”
원희는 그제야 겨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엄마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돈을 받았다.
“와.”
“와라니.”
엄마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엄마 늘 원희 너에게 용돈을 준 거 같은데. 아들이 그런 식으로 반응을 보이니까. 뭔가 서운해.”
“미안해요.”
“미안은.”
엄마는 짠한 눈으로 원희를 응시했다. 원희는 그 시선이 괜히 불편해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젠 내가 할 게 없을 거 같아.”
“아. 미안.”
원희가 갑자기 사과의 말을 건네자 지석은 원희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생각했다. 그러다가 입을 내밀었다.
“무슨 말이야?”
“이제 시험 기간이니까.”
“아니야.”
지석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이제 네가 내가 알려주는 것보다 잘 하니까. 그래서 그러는 거야.”
“그래?”
“그래.”
지석의 단호한 대답에 원희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도 지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네가 너무 고마워서 그래.”
“고맙긴.”
지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원희를 도와주면서 배우는 것도 꽤나 많았다.
“원래 누군가를 가르쳐주면서 배우는 거야. 네가 모른다고 하는 거. 나도 다시 한 번 확인을 하고 있어.”
“그래?”
“그래.”
원희가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다시 묻자 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는 그런 지석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 미소가 애매하자 지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혀를 살짝 내밀고 머리를 긁적였다.
“내 말을 안 믿는 거지?”
“안 믿어.”
“야.”
“그냥. 내가 미안해서 그래.”
지석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가 이러는데 자신이 다른 말을 더 할 것은 없을 거였다.
“암튼 그런 거 아니라고.”
“그래.”
원희는 겨우 미소를 지었다. 지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이제 지석이도 어려울 수 있겠네.”
“그래요?”
“당연하지.”
기연까지 이렇게 말하자 원희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연은 살짝 미간을 모았다.
“이제 고등학교까지는 온 거니까.”
“그럼 어떻게 하죠?”
“일단 계속 풀어.”
“네?”
“이게 성적 안 나오는 애들이 푸는 방법인데. 기초부터 다 풀고. 심화를 풀어. 하나하나 그렇게 풀어. 그러면 조금 더 쉬울 거야.”
기연이 알려준 방법을 체크하며 원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를 하나하나 더 푸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러니까 너는 그게 문제야.”
“잠깐.”
지수의 잔소리가 여전히 이어지자 아정은 돌아서서 손을 들었다.
“언제까지 그럴 거야?”
“어?”
아정의 물음에 지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혼자 원희를 좋아하기로 한 거고. 원희는 나를 거절했어. 그냥 이걸로 그만 아니야?”
“그러네.”
아정의 말에 지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의 말처럼 그냥 이렇게 끝이 나버린 거였다.
“나도 자존심은 상하지만 어쩔 수 없어. 원희가 나를 싫어한다고 하는데 더 이상 그럴 생각은 없어.”
“걔는 그게 무슨 이상한 자존심이야?”
“미안하네.”
갑자기 들린 말에 지수가 미간을 모았따. 교무실 문이 열리고 원희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나오는 중이었다.
“왜 남의 말을 엿들어?”
“복도에서 하면서?‘
“그래도.”
“그럼 미안.”
원희가 손을 들어 가볍게 사과의 뜻을 건넸다. 그리고 그대로 멀어지자 아정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윤아정.”
“지수야 미안해.”
“어?”
“프린트는 네가 혼자 챙겨.”
“야!”
지수가 아정을 큰 소리로 불렀지만 아정은 그대로 멀어졌다. 지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지수는 혀를 차며 어이가 없다는 듯 표정이 굳었다.
“야. 이원희.”
원희는 아정이 갑자기 자신의 손목을 잡아 돌리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정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윤아정. 왜 그래?”
“네가 자꾸 피하니까.”
“어?”
“너 자꾸 나 피하잖아.”
“아.”
원희의 짧은 탄식에 아정은 한숨을 토해냈다. 아마 원희는 자신이 아정을 피하고 있다는 것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정말.”
“미안?”
원희의 애매한 사과에 아정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원희는 혀로 입술을 적시고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미안해.”
“아니야.”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가 미안할 것 없어.”
“그래도.”
“아니.”
원희의 사과에 아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좋아해.”
“어?”
“좋아해.”
아정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원희의 눈이 커다래졌다. 원희는 침을 꿀꺽 삼키고 미간을 모았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너무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
“사실이잖아.”
아정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하자 원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오히려 아무 것도 표현하지 않는 쪽은 이쪽인데.
“네가 하는 말 아직도 제대로 이해를 하지는 못 하겠어.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너도 나를 좋아한다는 거야.”
“그게 답이야?”
“응. 그게 답이야.”
아정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뭐 하자는 거야?”
“좋아하는 거.”
“정말 네가 좋아.”
원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헛기침을 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레서 네 옆에 있을 수 없어.”
“무슨.”
“언젠가 너도 알 수 있을 거야.”
원희의 대답에 아정은 한숨을 토해냈다. 언젠가 원희를 이해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었다. 지금 당장 이해하기 바라는 거였다.
“내가 너랑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 거 알고 있어. 하지만 나도 아빠가 없어. 나도 보통의 경우는 아니야.”
“보통의 경우.”
아정은 침을 꿀꺽 삼키고 어깨를 으쓱했다. 원희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다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너는 신기해.”
“알아.”
아정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래서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거야. 나는 너를 좋아하니까. 그냥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할 거야.”
“그거 나에게 폭력이야.”
“어?”
갑작스러운 원희의 말에 아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나는 싫어.”
“그러니까.”
아정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말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너는 그런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어. 그런 거라면 내가 하는 말이 맞는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아정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낸 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혀를 내밀고 다시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너 왜 그러는 건지 나는 모르겠어. 자꾸 같은 말을 하는 거 같아서 싫어.”
“미안해.”
아정은 고개를 푹 숙였다.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원희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 아정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자꾸 말하고 싶어.”
“어?”
“그래서 엄마가 아빠를 놓친 거거든.”
“아니.”
순간 아정의 눈에서 툭 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아정은 눈물을 재빨리 훔치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뭐지?”
“무슨 일이야?”
“아니.”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잖아.”
“아무 것도 아니야.”
아정은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원희에게 이런 것까지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한숨을 쉬고 싶어도. 아무리 외치고 싶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고. 그래서 나는 후회를 하지 않을 거야.”
“후회.”
원희는 가만히 아정의 말을 따라했다. 아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가볍게 어깨를 ᅟᅳᆼ쓱했다.
“너를 좋아해.”
원희는 그런 아정의 눈을 물끄러미 보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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