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장. 고백
“가자.”
“어디를 가?”
원희가 카페를 나서기 위해서 일어나자 아정도 원희를 따라 일어났다. 원희는 턱을 만지고 어색하게 웃었다.
“왜 그래?”
“그냥 간다고?”
“응.”
“미쳤어.”
아정은 머리를 뒤로 넘긴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냥 그럴 수 없는 거잖아. 그냥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이원희. 너는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어?”
“알고 있어.”
원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게 아니고 싶었지만 자신은 아정을 좋아했다.
“나는 네가 좋아.”
“그럼 된 거잖아.”
“아니.”
“이원희.”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원희의 표정은 꽤나 덤덤하지만 단호했다.
“너랑 나랑 그래서 안 되는 거라고.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좋아하면 안 되는 건데. 내가 좋아해서 안 되는 거야.”
“세상에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그거 말도 안 되는 거잖아. 그냥 좋아하면 되는 거잖아.”
“아니.”
원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자신과 아정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만큼.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안 되는 거야.”
“이원희.”
“미안해.”
아정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원희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표정이라서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겨우 입을 열고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지.”
“왜?”
“좋아하면 그걸로 그만인 거잖아.”
“아니.”
원희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그거 아니야.”
“이원희. 너 지금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거야.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는 거라고. 너는 무슨 고등학생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하고 있어. 그냥 간단하게 너만 생각하면 되는 거라고.”
“전에도 말한 거 같은데.”
원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내가 일 안 하면 안 돼.”
“어?”
“내가 돈 벌어야 한다고.”
“그건.”
“나 대학도 기술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갈 거야. 그리고 전문대. 전문대 갈 최저 맞추려고 하는 거야.”
“하지만.”
아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자신과 못 만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너 나 좋아한다며. 좋아한다고 한 거잖아. 그런데 왜 그거 하나로 안 된다고 하는 건데? 어?”
“나는 헤어질 사람하고 안 만나.”
“뭐?”
“어차피 우리 헤어질 거야.”
“안 헤어지면 되는 거잖아.”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해?”
원희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왜 안 된다는 걸까?
“그게 어려운 거야? 그냥 그러면 되는 건데. 그게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너는 잘 살잖아. 그러니까 너는 아마 4년제에 갈 거야. 그리고 유학도 한 번 다녀오게 될 거고.”
“그래서? 그 동안 편지도 있고.”
“그리고 취업도 잘 할 거야.”
원희는 더 이상 아정의 눈을 보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는 한숨을 토해내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러고 나면 취업도 잘 될 거야. 나보다 훨씬 더 좋은 곳에서 더 많은 돈을 받고 일을 하겠지.”
“뭐가 그렇게 어려워?”
“어?”
“너무 어렵잖아.”
아정의 말에 원희는 눈만 끔뻑 거렸다.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고 머리를 한 번 쥐었다가 놓고 원희를 보고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 지금 너한테 결혼하자고 하는 거 아니야. 우리 무슨 약혼 같은 거 하자는 거 아니라고.”
“알아.”
“아니. 너 몰라.”
아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원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너무 먼 것을 생각하고 너무 많은 것에 대해서 여기는 중이었다. 이건 그렇게 복잡한 일도 아니었고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너는 그냥 나랑 사귀면 되는 거야. 우리 지금 고등학생이고 그냥 그것만 생각하면 되는 거야.”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같이 해.”
“아니.”
원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싫어.”
“왜 싫어?”
“너는 그런 거 하는 사람 아니잖아.”
“그런 게 어디에 있어?”
아정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원희는 단호했다. 원희는 아정을 보며 씩 웃었다.
“세 번 데이트를 하고 나서 알았어. 너랑 나랑 다르다는 거.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
원희는 아정의 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너무 부족해. 나는 너랑 달라.”
“안 달라.”
“달라.”
아정의 반문에 원희는 곧바로 대답을 했다.
“너무 달라.”
“그렇다고 안 사귄다고?”
“응.”
원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사귈 거야.”
“좋아하는데?”
“좋아하는데.”
원희의 대답을 아정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좋아하면 그것으로 그만인 거였다.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너 생각이 너무 많아. 그냥 아무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왜 그래?”
“그게 나야.”
“뭐?”
“이게 나라고.”
원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아정은 그런 원희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가 도대체 왜 그렇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 눈앞에 길이 보이잖아. 너 아직 고 3이야. 고 3이라고. 왜 그렇게 멀리에 있는 것까지 생각을 하는 거야? 왜 그렇게 많은 것을 생각을 하는 거야?”
“그게 나니까.”
“도대체 왜?”
아정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원희를 물끄러미 보다가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팔을 한 번 세게 휘두르고 돌아서서 원희를 응시했다.
“너 바보야.”
“알아.”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나 바보인 거 알아.”
“아는데 그래?”
“응.”
“미쳤어.”
아정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를 좋아하고. 나도 너를 좋아하고. 나도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거 알고 있는데 못 사귄다고?”
“응.”
“이해가 안 가.”
“언젠가는 해줄 거야.”
원희의 말에 아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원희.”
“나 가난해.”
“나도 가난해.”
“나는 엄마도 가난해.”
“그건.”
“정말 가난해.”
원희는 마치 주문이라도 외우는 것처럼 다시 힘을 주어 말했다.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게 이유가 돼?”
“이게 가장 큰 이유야.”
“안 돼.”
“돼.”
아정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연애를 하는데 돈이라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 오늘의 커피 마셨어.”
“어?”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아정의 반문에 원희는 씩 웃었다.
“너는 모르잖아.”
“알아듣게 말해야지.”
“알아듣게 말했어.”
“네가 언제?”
“돈이 없다고.”
“어?”
“나 오늘의 커피 숏이야. 책을 네가 나에게 사줬으니까 커피는 내가 사야한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너는 캬라멜 마끼아또를 마셨어. 그거 네가 마시고 나니까 내가 살 수 있는 커피는 오늘의 커피였어.”
원희의 덤덤한 고백에 아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원희가 그저 돈을 내고 자신과 함께 카페에 왔다는 사실. 그저 이것만 중요하고 다른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너는 다르구나.”
“달랐지.”
“미안해.”
아정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정말 미안해.”
아정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원희를 응시했다.
“그러니까 그러지 마.”
“너를 보면 내 자존심이 상해.”
“자존심?”
“응.”
원희는 침을 한 번 삼켰다. 목에 단단한 덩어리가 있는 것처럼 이물감이 느껴지고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너랑 사귀고 싶지 않아. 내가 너랑 만나면 나는 매 순간 이렇게 초라함을 느낄 거야.”
“주의할게.”
“그러고 싶지 않아.”
원희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너에게도 못할 일이야.”
“뭐가?”
“이건 너의 시간이기도 하잖아.”
“어?”
“연애라는 건 두 사람이 하는 거야.”
원희의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아정이 생각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말을 듣자 원희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나를 위해서 네 모든 것을 희생하라고 말을 할 수 없어. 그건 잘못이니까.”
“그러니까 이건.”
아정은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지금 원희에게 어떤 말도 어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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