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장. 밤길
“요새 아정이가 데이트를 하는 거 같던데. 그거 은선 씨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거 맞죠?”
“선생님이라고 하라니까.”
“싫다니까.”
서정의 능글거리는 대답에 은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저었다.
“집에서도 다 알고 있으니까 학교에서 뭐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정이가 행복하기 바라고 있으니까.”
“나도 별 생각 하고 있지 않아.”
“선생님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뭐?”
서정의 말에 은선은 미간을 모았다.
“하여간.”
“그래도 요즘 조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에는 아정이가 전혀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던 아이였으니까. 이렇게라도 뭔가 하는 거 같아서.”
“그게 오빠로 할 말인가?”
“그러게요.”
서정은 머리를 긁적이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게 오빠로 할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사실인 거니까.”
“어려운 말을 하네.”
“그래요?”
서정은 혀를 살짝 내밀었다.
“저는 이제 저녁을 하러 가야겠습니다.”
서정은 장바구니를 들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앞으로도 아정이 잘 부탁드려요.”
“네가 아니라도 잘 해주고 있어.”
“알죠.”
서정은 장난스럽게 경례를 붙이고 씩 웃었다. 은선은 한숨을 토해내면서도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서정도 그런 은선을 보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좋다.”
아정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밤공기를 맡으니까 좋다. 밤 냄새 나.”
“밤 냄새?”
원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깨끗한 냄새?”
“그런 게 있어?”
“너는 안 나?”
“응.”
“그렇구나.”
아정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싱긋 웃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너는 몰라도 되는 거지.”
“뭐야. 그게.”
아정의 대답에 원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상해.”
“이상해?”
“이상해.”
원희가 힘을 주어 말하자 아정은 혀를 내밀고 더 밝은 표정을 지었다.
“뭐 이상하면 어때? 그냥 나만 즐거우면 되는 거지. 더 이상 다른 것에 그렇게 목을 매지 않을 거야. 그거 너무 이상하잖아. 안 그래? 나는 그저 나만 행복하면 되는 거야. 원희 너는 안 그래?”
“안 그래.”
원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럴 수 없어.”
“왜?”
“왜라니?”
원희는 당황하며 웃었다. 이 상황에서 왜라는 말을 듣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가 있는 걸까?
“거기에 다른 이유 같은 것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 그냥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게 전부야.”
“아무리 그래도 네가 우선이 되는 것에 대해서 왜 겁을 내는 건지. 왜 망설이는 건지 모르겠어.”
“모르겠다.”
원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정을 따라 웃었다. 아정도 그런 원희를 보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요즘 아정이 너무 늦지 않아?”
“뭐.”
엄마의 물음에 서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걔도 자기 생활이 있는 건데. 엄마 너무 그러지 마요. 이제 아정이 겨우 또래처럼 사는 거야.”
“너 뭐 알지?”
“어?”
엄마의 공격에 서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진짜 연애하니?”
“뭐.”
“어머.”
엄마는 입을 가리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야?”
“비밀이야.”
“비밀이라니.”
서정의 말에 엄마는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한테도 제대로 말을 안 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상한 말 하지 마요. 아정이가 난리를 칠 거야.”
“그래도.”
“엄마.”
“알았어. 알았다고.”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엄마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거 같아서 서정은 한숨을 토해냈다.
“미치겠네.”
“미치긴.”
“엄마. 지금 그거 문제야. 나중에 아정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아정이 신경질을 낼 걸.”
“알아.”
“알기는.”
엄마의 대답에 서정은 혀를 차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서정이 이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그 동안 남자애들이 그렇게 고백을 해도 들은 척도 안 한 거 아니야?”
“안 했지.”
서정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해가 안 가지.”
“이해가 안 가기는.”
엄마는 가볍게 서정의 어깨를 때렸다.
“그래도. 나 이제 네 아버지에게 안 미안할 수 있을 거 같아. 아정이가 이제 자기 삶을 사는 거 같아서.”
“미안했어?”
“미안하지.”
엄마의 알 수 없는 표정에 서정도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서정의 표정을 보고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엄마가 왜요?”
“그냥 미안해.”
“에이.”
서정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 번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묘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걔가 연애를 한다고 하니까 조금 이상하긴 해.”
“그래?”
“응. 엄마가 생각하는 것 보다 나 아정이 많이 아끼고 있어. 걔한테 신경을 쓰고 있고. 알죠?”
“알지.”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의자에 올리고 껴안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고맙게 생각을 하고 있어.”
“고맙기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네가 해주고 있는 거잖아.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네가 다 하고 있으니까.”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나 피곤하다.”
엄마는 무릎을 한 번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가서 잘게.”
“네. 주무세요.”
“고생해.”
“그럼.”
서정은 방으로 가는 엄마를 보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한 번 헛기침을 한 후 고개를 푹 숙였다가 들었다.
“책을 읽기는 해?”
“그럼.”
아정의 물음에 원희는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책 읽는 거 본 적 없어.”
“집에서 읽어.”
“그래?”
“읽어.”
아정이 눈을 크게 뜨면서 장난스럽게 대답하자 원희는 다시 힘을 주어 대답했다. 아정은 입을 쭉 내밀고 씩 웃었다.
“그렇구나.”
“안 믿는 거지?”
“음. 그렇지.”
아정의 순순한 대답에 원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신기한 아이였다.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는 거야?”
“그런 거 중요해?”
“어?”
“나는 내가 중요해.”
아정의 말에 원희는 잠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은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솔직한 사람.
“그렇구나.”
“그래서 너도 솔직했으면 좋겠어.”
“어?”
“솔직하라고.”
아정은 어깨를 으쓱하고 씩 웃었다.
“이원희. 너를 보면 너를 너무 숨기고 있는 거 같아. 네가 너를 너무 숨기고 있는 거 같아서 나 힘들어.”
“나 안 숨기고 있어.”
“거짓말.”
아정의 단호한 말에 원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너 되게 거짓말을 잘 한다고 생각을 하지? 아니. 너 거짓말 하나도 하지 못해. 나 지금 고민이 있어. 나 지금 너무 힘들어. 나 지금 뭔가 숨기고 있어. 그렇게 지금 얼굴에 다 있단 말이야.”
“그래?”
원희는 얼굴을 만지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너무 신기했다.
“그렇구나.”
“이원희.”
“그냥.”
아정이 무슨 말을 더 하기 전에 원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그래.”
“원희야. 나는 네가 좋아.”
“알아.”
원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준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것인지. 얼마나 의미가 있는 일인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잘 알고 그게 의미가 있는 거였다.
“나도 네가 좋아.”
“그럼 되는 거 아니야?”
“아니.”
원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을 거였다.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왜 안 되는 건데?”
“나는 네가 아니니까.”
“어?”
“나랑 너랑 다르잖아.”
“뭐가 달라?”
아정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나도 안 달라.”
“달라.”
아정의 말에도 원희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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