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장. 여름 방학 5
“너 너무 오버였어?”
“뭐가?”
서정의 핀잔에 아정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솔직히 그 영화를 소개하는데 강가온이 먼저 나오는 게 말이 돼? 당연히 오빠 이름이 먼저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뭐. 그래도 상업적인 배우인 데다가 나보다 훨씬 더 경력이 많으니까 나보다 먼저 나오는 게 맞지.”
“그런 법이 어디에 있어.”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정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자 서정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뭐가?”
“네가 내 편이라서.”
“언제 아닌 적이 있었나?”
“늘.”
아정은 살짝 서정을 노려보더니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이리저리 목을 풀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어?”
“네가 여기에 와줘서 다행이야.”
“아니.”
아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혀를 살짝 내밀고 목소리를 낮췄다.
“엄마는?”
“안 오셨지.”
“그래?”
“아무래도 본인이 오시면 나보다 사람들이 다 자신에게 관심이 갈 거라고 생각을 하셨으니까. 나를 위해서 오지 않으셨어. 내가 그래도 이렇게 영화제에서 사람들에게 보이게 되는 거니까.”
“서운해?”
“응.”
서정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운하지 않다고 한다면 그게 오히려 거짓일 거였다.
“엄마가 당연히 오실 거라고 생각을 했으니까. 엄마도 사정이 있어서 오시지 않은 거지만. 나를 위한 거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여기에 와서 같이 내 영화를 보고 내 연기를 봐줬으면 좋겠어.”
“왔어. 그리고 봤어.”
뒤에서 갑자기 미선이 나타나자 서정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정은 혀를 씩 내밀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내가 오라고 했어.”
“어?”
아정의 말에 서정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내가 모르는 걸 아정이가 알더라.”
미선은 부드럽게 아정의 어깨를 감쌌다.
“내가 여기에 오건, 여기에 오지 않건.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알게 될 거야. 그렇다면 내가 오지 않을 이유가 없잖니? 어차피 알 거. 그냥 여기ㅔ 나타나서 너를 위로하고 싶었어. 아까 관에도 있었어.”
“정말?”
“그럼.”
서정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지자 어색하게 웃었다. 미선은 그런 서정을 꽉 안았다.
“아들 잘 했어.”
“고마워.”
“정말 잘 했어.”
“응.”
서정은 애써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눈물은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정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애써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은?”
“맞아.”
원희의 말에 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궁금해 할 생각은 하지 마. 아정이가 너에게 직접 말을 하지 않는 이상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그래.”
지수의 대답에 원희는 입술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건 지수의 말이 옳았다. 아정에 관련이 된 이야기였고, 자신에게 말을 해주지 않은 것은 아직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언젠가 아정이가 직접 말하겠지.”
“말을 안 해도 재촉은 하지 말고.”
“응.”
지수가 한 마디 더 보태자 원희는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는 그런 원희를 다소 묘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명확하게 다 이해를 하는 모양이었다.
“신기하네.”
“어?”
“아니.”
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입을 다물었다. 원희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이거 봐.”
“미안.”
아정이 곧바로 장에서 나가려고 하자 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윤아정 이럴 거 다 알면서 여기에 온 거니까. 내가 내 발등을 찍은 거지. 너보고 뭐라고 하겠니?”
“고마워.”
야정의 미소에 지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와.”
“고맙습니다.”
아정이 나가고 나서 지수는 입을 내밀었다.
“하여간.”
지수는 이리저리 목을 풀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덥다.”
“그러게.”
더웠지만 그래도 방에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서정도 근처에 있다고 하니 끝나고 같이 가면 될 거였다.
“여기 되게 넓다.”
“응.”
시청이 길에서 보이는 곳이 앞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드넓은 잔디밭을 보며 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물어봐?”
“어?”
“나랑 엄마.”
“뭐.”
아정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원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정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좋아.”
“늘 말하면서.”
“그러게.”
원희의 지적에 아정은 혀를 살짝 내밀었다. 그리고 입을 살짝 내밀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엄마에 대한 것을 원희에게 모두 말을 해도 되는 걸까? 나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괜찮아.”
“어?”
“말 안 해줘도 돼.”
원희는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은 헛기침을 하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리고 원희를 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아니.”
아정의 인사에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이걸 내가 묻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거야. 너를 보고 내가 무슨 말을 한다는 게 더 이상한 거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네가 언젠가 시간이 되면 나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해줄 거잖아. 그러니까 나는 말을 해주지 않아도 돼.”
“고마워.”
아정은 조심스럽게 원희의 손을 잡았다. 날은 여름이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순간 바람이 불었다.
“바다라도 가야 하는데.”
“여기로도 충분해.”
“나도.”
아정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멀리 하늘을 바라봤다. 여름날의 밤하늘은 여전히 밝았다. 편안했다.
“둘이 잘 어울리네.”
“네? 아.”
서정을 본 원희가 유난히 몸이 굳자 아정은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저었다. 서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뭐라고 한 게 아니잖아.”
“그렇게 분위기를 잡으면 누구나 그러지.”
“어?”
“왜 오빠에게 그래?”
“아니.”
원희의 편을 들어주려고 하다가 원희가 서정의 편을 들자 아정은 괜히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너 지금 미리 잘 보이려고 하는 거야?”
“어?”
“네가 아무리 오빠에게 점수를 딴다고 하더라도 내가 싫으면 그걸로 끝인 거거든. 그러니 나에게 충성해.”
“그렇지.”
“오빠는 조용히 해.”
서정은 입을 지퍼로 잠그며 씩 웃었다. 원희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아정을 응시하며 손을 내밀었다.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고 그런 원희를 살짝 노려본 후에 그 손을 잡았다. 서정은 둘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뭐가?”
“벌써부터 까져서.”
“엄마에게 오빠 고딩 때 물어봐?”
“그건 아니고.”
서정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아정은 눈을 흘겼다. 서정은 그저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고마워.”
“네?”
서정의 인사에 원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우리 아정이 성질이 되게 더럽거든. 그런데 네가 이렇게 아정이 옆에 있어주는 게 너무 고마워서.”
“오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사실이잖아.”
“무슨 사실?”
아정은 볼을 잔뜩 부풀렸다. 서정은 원희를 다시 쳐다봤고. 원희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더 못됐어요.”
“그건 알지.”
서정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 교복 사건을 알지.”
“네?”
“둘이 원수였다며?”
“그건 아니고.”
원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자 서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걸 가지고 원희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두 사람이 이런 관계라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원희도 혀를 내밀고 어색하게 웃었다.
“오늘 따로 자는 거지?”
“네? 네!”
“오빠.”
아정이 새된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발을 밟자 서정은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아정의 표정도 단호했다.
“그런 말 하지 않기로 했잖아.”
“아니.”
서정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안해.”
“어?”
아정이 자신에게 사과를 하자 원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미소를 지었다. 아정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여간 늘 장난만.”
“미안해.”
서정은 두 손을 모아서 사과의 말을 건네고 원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을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정은 지금 이 상황이 그 누구보다도 불편해서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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