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장. 여름 방학 3
“잠까지 잔다고?”
“당연하지.”
“미쳤어.”
서정의 반응에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뭐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하루 자고 오는 건 말이 안 되지. 내가 택시비도 다 내줄 테니까 그냥 집으로 와.”
“싫어.”
“뭐?”
“뭐가 문제니?”
가만히 듣고 있던 미선의 말에 서정은 입을 내밀었다.
“엄마.”
“아들 괜찮아.”
미선은 서정의 어깨를 한 번 쥐고 고개를 저었다. 미선의 말에 서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얘, 지금 자기 남자친구랑 지금 같이 가겠다고 하는 거야.”
“그게 뭐?”
“엄마.”
“너도 그랬잖아. 여자 문제로. 고등학교 때.”
“그런 일이 있었어?”
아정이 놀란 표정을 짓자 서정은 입을 꾹 다물었다. 미선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나는 그런 것을 가지고 문제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냥 좋아하면 그걸로 그만인 거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막 이해를 하고 넘어가면 안 되는 거지. 엄마 그렇게 넘어가면 안 돼요.”
“뭐가?”
미선은 아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
“어?”
“나는 못 가.”
미선은 한숨을 토해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입맛을 한 번 다신 후 살짝 혀로 입술을 적신 후 입을 열었다.
“다들 나에게 더 관심을 가질 거 아니야? 그래도 내 아들이 이번에 중심이 되어야 하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방 두 개야.”
서정의 말이 길어지려고 하자 아정은 단호히 말했다.
“그러니까 오빠가 걱정할 그런 일 생기지 않아. 그리고 나를 뭐로 보고 그런 걱정을 하는 거야?”
“너를 의심하는 게 아니야. 세상에 멀쩡한 남자는 없다고.”
“윤서정 너도 그럴 줄은 몰랐다.”
“뭐?”
서정이 발끈하자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선은 그런 둘을 보며 그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죠.”
“왜?”
서정의 반응에 미선은 어깨를 으쓱했다.
“너 그거 요즘 시대에 안 맞는 말이야. 혹시라도 무대 인사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진 말 하지 마. 나는 대한민국 최고 여배우 유미선의 아들. 성 차별에 가득 찬 발언 해 놀란.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아.”
“지금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같은 거야.”
미선의 차분한 대답에 서정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미선은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너는 아정이를 못 믿니? 나는 솔직히 말을 하면 너보다도 아정이를 더 믿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농담이시죠?”
“진담이야.”
“엄마.”
“방도 두 개라잖아. 그리고 지수도 가.”
“그래도.”
“믿어.”
미선의 단호한 말에 서정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이미 엄마도 허락을 한 상황에서 자신이 뭐라고 할 것은 없었다.
“그래서 엄마도 안 온다고요?”
“화제 전환?”
“엄마.”
서정이 다시 한 번 부르자 미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가.”
“왜요?”
“말했잖아. 내가 더 주목이 될 거야.”
“그래도.”
“싫어.”
미선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이미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람이었다. 이런 자신이 갑자기 나타난다면 그게 이슈가 될 거였다. 어차피 서정이 자신의 아들인 것은 모두 알겠지만 자신이 굳이 드러내면서까지 그것을 이슈로 만들어서 전면에 등장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들. 내가 아들을 얼마나 살아하는지 알고 있지? 그래서 나는 지금 아들의 앞을 막고 싶지 않은 거야.”
“엄마는 저를 망친 적 없어요.”
“앞으로 그럴 수도 있어.”
미선의 단호한 말에 서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아니.”
미선은 고개를 저었다. 서정은 혀를 살짝 내밀고 어색하게 웃었다.
“정말 허락을 하셨어?”
“응.”
“그래?”
지수의 다소 애매한 반응에 아정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너 지금 그거 뭐야?”
“뭐가?”
“아니 지금 우리가 같이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전혀 반가워하지 않는 거 같잖아.”
“뭐.”
지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정은 그런 지수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수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래도 좀 그렇지 않아?”
“뭐가 좀 그런 건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호텔이라니.”
“호텔이야. 호텔.”
“그래도.”
지수는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곳에서 부모님도 없이 머무는 것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너도 선생님이 허락한 거 아니야?”
“하기는 했지.”
이상할 정도로 엄마의 허락이 간단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지수는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다. 그래도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너는 가면 이원희랑만 놀 거잖아.”
“아니.”
아정은 곧바로 지수의 허리를 꼭 안았다.
“너랑만 있을 건데.”
“퍽이나.”
“그리고 맨 앞이기는 하지만 오빠가 자기 영화 티켓도 구해줬단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같이 있을 거야.”
“정말?”
“그럼.”
아정의 대답에 지수는 속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내가 너한테는 늘 져.”
“사랑하니까.”
“그래.”
“어? 인정한 거야?”
“알았어.”
지수도 아정의 손을 쪽 잡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제?”
“네. 친구들하고 가려고요.”
“그래?”
엄마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원희는 살짝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안 돼요?”
“내가 뭐 그런 걸 허락을 하니?”
“그래도요.”
원희의 대답에 엄마는 고개를 흔들었다. 굳이 아들이 가고 싶다고 하는데 막을 이유도 없었다.
“다른 애들도 같이 간다고 하는 거고. 너도 너 나름대로 친구들하고 뭘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니까.”
“고맙습니다.”
“돈은?”
“있어요.”
엄마의 걱정이 더해지자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하루 자고 온다는 거잖아. 그러면 돈도 많이 들고 그럴 텐데. 잠시만 있어봐. 엄마가 돈을 줄게.”
“아니.”
“여기.”
엄마가 서랍에서 돈을 꺼내서 내밀자 원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돈을 받으려고 말을 꺼낸 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아빠가 보낸 거야.”
“네?”
원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빠의 사정이 그래도 조금은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 아빠 믿지?”
“그럼요.”
원희도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오실 거야.”
“정말로요?”
“응.”
엄마의 대답에 원희는 그제야 얼굴이 조금 풀렸다. 엄마는 그런 원희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리고 네 아버지가 괜히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서. 네가 하던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렇게 너를 고생만 시키고 마음이 조마조마하게 만든 거 같아서 미안해.”
“아니요.”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하나 없었다.
“어차피 축구 그만 둘 거였어요.”
“거짓말.”
“정말로요.”
“그래?”
“응.”
원희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에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는 엄마를 한 번 꼭 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수능이 끝났으면 좋겠다.”
문제집을 풀던 지석이 갑자기 테이블에 엎드리며 말하자 지수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제대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이래.”
“뭐가?”
“아니 무조건 늘 짜증.”
“그게 나다.”
“그래서 별로지.”
지수의 말에 지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너보고 나에 대해서 평가를 해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거든? 그런데 왜 네 마음대로 평가하고 그러냐?”
“남자들도 늘 그러잖아.”
“뭐?”
“왜 또 이래?”
두 사람의 말이 길어지려고 하자 아정은 두 사람을 보며 입을 쭉 내밀었다. 원희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전생에 부부였어?”
“뭐?”
“뭐라고?”
두 사람이 동시에 날을 세우면서 말하자 아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정은 곧바로 손을 들고 어색하게 웃었다.
“사과할게.”
아정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노려봤다. 아정은 그런 둘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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