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장. 방학 보충 4
“그래도 본인이 싫다고 하는 건데 우리가 멋대로 신청하면 원희 입장에서 싫다고 하지 않을까?”
“어차피 공부할 시간도 필요하잖아.”
“그건 맞지만.”
지석은 지수의 눈치를 살폈다. 지수가 결국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먼저 나섰다.
“아정아. 너 지금 이러는 거 이원희랑 사이만 나빠지는 거야. 그쪽에서 원하지 않는 거잖아. 아니야?”
“그래도.”
“아정아.”
“정말 싫어.”
아정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 도대체 왜 내가 돕겠다고 하는 건데 나를 밀어내는 거야? 내가 나쁜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 나도 원희를 돕고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거.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걸 하겠다는 거잖아.”
“상대방이 그걸 원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네가 무조건 한다고 해서 그게 도와주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아정아.”
지수가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말하자 아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게 다였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하나하나 꼽아줄 이유는 없었다.
“원희가 알아서 한다고 하잖아.”
“그래도.”
“이제 2주도 안 남았어.”
“알아.”
아정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어.”
아정의 말에 지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너 이렇게 계속 아르바이트 해도 되는 거야? 이제 슬슬 여름 방학도 끝이고 한데 공부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충분히 하고 있어요.”
선재의 애정 어린 질문에 원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이제 더 열심히 해야지.”
“그러면 쓰러질 걸요?”
“그런가?”
“그럼요.”
선재는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너 근무 시간 좀 줄여야겠어. 처음에 너 봤을 때 보다 지금 많이 살이 빠진 거 알아?”
“그래요?”
원희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딱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선재의 말을 듣고 나니 살이 좀 빠진 거 같았다.
“그러면 좋죠.”
“뭐가 좋아?”
“남들은 일부러 다이어트도 하는 걸요.”
원희의 긍정적인 대답에 선재는 미간을 모았다.
“너 아무래도 고생이야.”
“괜찮습니다.”
원희의 씩씩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선재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원희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여기요.”
“네. 갑니다.”
선재는 바삐 움직이는 원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자. 모두 힘을 내자. 이번 주가 마지막이지.”
은선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모두 지친 표정이었다. 은선은 교탁을 한 번 치고 생긋 웃었다.
“그럼 모두 열심히 해보자.”
“2학기부터는 그만 두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그게 무슨.”
부장의 말에 은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부장님.”
“애초에 계약직 선생님에게 학교에서 너무 무리를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양해를 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부장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은선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갑자기 이런 식으로 뭔가가 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한 해는 다 마쳐야죠. 제가 갑자기 담임이 된 것도 아니고 이런 경우는 아닌 거 같은데요.”
“은선 선생은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학교의 결정입니다.”
은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학교에서 이렇게 말하는데 자신이 다른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할 거였다. 은선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따져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쩔 수 없을 걸.”
기연이 자기가 열을 내며 나서려고 했지만 유정은 고개를 저었다.
“학교에서 이미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한 거니까 돌리기 어려울 거야. 그리고 학기 중에 그러는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중년인 유정의 말에 은선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 이미 그러기로 결정한 것을 돌리기 어려울 거였다.
“힘들지?”
“아니요.”
은선은 겨우 미소를 지은 채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가에 그늘이 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너 담임 바뀌겠더라.”
“어?”
갑작스러운 유정의 말에 지수는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희 담임 바뀐 다던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이제 고 3인데 갑자기 담임을 바꾸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유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전학생 문제가 있는 모양이야.”
“선생님이 원희 편을 들어줘서?”
“원희?”
유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너도 걔를 받아들인 거니?”
“엄마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래.”
유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입가에 미소는 가득 담고 있는 채였다. 유정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렇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제 너희가 고 3인데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는 거지. 안 그래?”
“엄마는?”
“교사잖아.”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유정의 대답에 지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마 엄마 입장에서는 이것을 알려주는 것도 문제일 거였다.
“네가 알아서 해.”
“내가?”
“그럼.”
유정의 말에 지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말도 안 돼.”
“그러니까.”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우리 선생님이 지금 바뀌면 우리는 공부를 어떻게 하라고?”
“그렇게 따져야지.”
“어?”
“우리가 고 3인 거.”
“하지만.”
아정은 망설였다. 괜히 자신이 나서는 것이 또 문제가 되지 않을까? 아마 다른 종류의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일단 그렇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어?”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거.”
“나는 좋은데.”
“뭐라고?”
성호의 말에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왜 우리 선생님이 바뀌는 게 좋은 건데?”
“사실 계약직이잖아. 계약직이 알면 뭘 얼마나 알겠어? 우리 대학을 가는데 별 도움이 안 될 거 같은데.”
“윤성호.”
“왜 강요야?”
지웅까지 나서서 말하자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은선이 오자 그대로 돌아섰다.
“괜찮아?”
“어? 어.”
원희와 다투고 나서 제대로 대화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원희가 위로의 말을 건네니 고마웠다.
“그러게.”
“나도 할게. 서명.”
“고마워.”
아정은 원희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원희는 짧게 한숨을 토해냈다.
“미안해.”
“어?”
갑작스러운 원희의 사과에 아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까.”
“내가 유치해서 그래.”
원희는 헛기침을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너한테 괜히 자격지심이 있어서. 안 이러고 싶은데 자꾸만 유치하게. 또 유치하게 행동을 하게 되어서 이러는 거야. 너에게 너무 미안해. 안 그래도 너도 많이 힘든데 내가 더 힘들게 해서.”
“아니야.”
아정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원희가 원망스러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모두 말해주니 다행이었다.
“고마워.”
“뭐가 고마워?”
“모두 말해줘서.”
“이걸 가지고 뭐.”
“그래도.”
원희는 아정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행이다.”
“뭐가 다행이야?”
“네가 먼저 용기를 내줘서.”
아정의 인사에 원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같이 하는 거. 그게 중요한 거였다. 두 사람이 같이 있다는 거.
“이걸 가지고 뭐가 달라질 거 같니?”
“네. 달라질 거예요.”
반 아이들은 두 아이를 제외하고 모두 서명을 했다. 부장은 그것을 물끄러미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정아. 차라리 네 어머니에게 부탁을 하지 그러니? 그 편이 차라리 더 빠를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아니요.”
아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부장의 눈을 보더니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으로 하는 건 같잖아요.”
“뭐가?”
“치사하죠.”
“뭐?”
부장은 뭐라고 한 마디를 하려다가 헛기침을 하고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아정은 여전히 당당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거. 옳은 거. 그걸 하려고요. 유치하게 행동하는 거. 그것도 너무 싫고요.”
“내가 유치하다는 걸로 돌리는 구나.”
“그럼 그런 거겠죠.”
아정의 당돌한 대답에 부장은 물끄러미 그녀를 응시했지만 아무 말도 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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