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장. 방학 보충 2
“나는 그런 일을 못 해.”
“하지만.”
“안 돼.”
은선은 서정을 보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어떤 담임이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을 보고 과외를 좀 받으라고. 그런 말을 할 수가 있겠어?”
“그게 거꾸로 그 아이를 위한 것일 수도 있잖아요. 은선 씨도 알다시피. 걔는 그런 게 필요해요.”
“아니.”
서정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은선은 단호했다. 원희에게 그런 말 같은 것을 할 이유도 할 수도 없었다.
“그 아이 혼자서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데.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가 필요하다고 할 때까지 안 돼. 그나저나 요즘 너희 집 원희 일에 꽤 관심이 많은 거 같아? 어머니도 직접 학교에 오시고.”
“뭐.”
서정은 혀를 내밀고 어색하게 웃었다. 은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열었다.
“너희 집 대단해. 알고 있어. 하지만 그런 식으로 누군가 마음 함부로 가질 수 없는 것도 알아야지.”
“은선 씨.”
“선생님.”
“아니.”
“선생님이야.”
은선의 단호한 말에 서정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내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거니까.”
“그게 아니라도.”
“아무튼 저는 지금 원희를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 당연히 과외를 받아야 성적이 오르는 거니까.”
“아니.”
은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마도 안 되는 거였다. 반드시 과외를 받지 않아도 될 거였다.
“원희 빠르게 성적이 늘고 있어. 본인이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흥미도 가지고 있고. 그걸로 충분해.”
“하지만 아정이가 걱정을 하니까.”
“그건 아정이 일이야.”
은선은 딱 끊어 말했다.
“원희가 왜 그것까지 해야 해?”
“네?”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그건 그렇지만.”
서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말이 맞았다.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은선이 단호하게 밀어내기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은선은 물끄러미 서정을 응시했다.
“내가 서운하니?”
“네.”
“왜?”
“아정이 오빠니까요.”
“그거야.”
은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네?”
“너는 지금 원희를 위해서 그 말을 하는 게 아니니까. 그저 아정이가 안쓰러워서 그러는 거니까.”
“그건.”
서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사실이었다. 그게 사실일 수밖에 없었다. 서정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나는 갈게. 이제 점심이 끝이 나서.”
“고맙습니다.”
“어?”
서정의 갑작스러운 인사에 은선은 미간을 모았다.
“뭐가?”
“그런 말요.”
“아니.”
은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은 서정에게 그런 말을 전혀 들을 이유가 없었다. 잘한 게 없었다.
“네가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너는 나에게 고맙다고 이야기를 할 이유 없어. 그건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거니까.”
“그래도요.”
“아무튼 나는 갈게.”
“아. 저 영화 부천 영화제에 걸려요.”
은선은 고개를 돌려 서정을 응시했다.
“올래요?”
“아니.”
은선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
“은선 씨.”
“그거 아니야.”
은선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서정을 물끄러미 보다가 엷은 미소를 지은 채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잘 하네.”
은선은 이 말을 남기고 멀어졌다. 서정은 그런 은선의 뒷모습을 보면서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학교 공부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하니?”
“네. 충분해요.”
은선은 가볍게 원희에게 물었다. 원희의 대답을 듣고 나니 더더욱 자신이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른 애들은 이제 학원도 더 늘리고 그러니까.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고.”
“아니요.”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요. 다른 애들처럼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어요. 애초에 운동을 하던 제가 이 만큼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죠. 선생님들이 아니었다면 못했을 거예요.”
“네가 그렇게 말을 해주니 고맙네.”
“사실이니까요.”
원희는 덤덤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선은 입을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원희를 응시했다.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알겠습니다.”
원희가 다시 문제를 풀기 시작하고 은선도 책장을 넘겼다.
“못 하게 하세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퇴근을 하기 위해서 교무실로 은선은 미간을 모았다.
“부장 선생님.”
“아니 지금 애 하나 때문에 학교에서 전기를 쓰는 거.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까?”
“그건.”
애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다. 학교에서 자습을 하는 애는 원희 하나였다. 부장은 단호했다.
“학교라는 곳이 그렇게 돈이 없는 애들을 위해서 모든 곳을 다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야죠.”
“그럼 원희는요?”
“뭐라고요?”
“어디로 가나요?”
“그걸 왜 내가 신경을 씁니까?”
“무슨.”
은선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교사라는 사람이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공부를 하겠다는 애를 몰아내라고요?”
“아니 여기 도서관도 있고 그러지 않습니까? 이거 은선 선생이 수당 받으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뭐라고요?”
은선은 어이가 없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라면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걸까?
“제가 선생님인 줄 알아요?”
“뭐라고요?”
“지금도 그냥 출석 찍으려고 오신 거잖아요.”
“아. 아니. 나야.”
부장은 은선의 공격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은선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타협을 할 일이 아닙니다. 원희가 학교에서 공부를 못 하게 한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홍은선 선생.”
은선은 부장이 부르지만 그냥 무시하고 돌아섰다. 굳이 부장의 말에 하나하나 다 대답할 이유는 없었다.
“보고 싶어.”
‘내일 학교에서 보면 되지.’
“그런 게 아니라.”
아정은 볼을 잔뜩 부풀리고 침대에 누웠다.
“이원희 너는 가끔 보면 센스가 되게 있고 상대를 잘 배려하는 거 같으면서도 이럴 땐 아닌 거 같아.”
‘그래?’
“그래.”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목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나 완전 조폭 같아. 지금 목에서 소리 났어.”
‘그건 누구나 나.’
“하여간 건조해.”
‘고맙습니다.’
원희의 대답에 아정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후 입술을 쭉 내밀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직도 싫어?”
‘과외?’
“응. 나는 네가 같이 받았으면 좋겠어.”
‘불편해.’
“그거야.”
원희의 불편함이 뭔지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저 자신이 바라는 것 그대로 원희를 몰아세우는 거였다.
“내가 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 아주 약간의 시간이라도 너랑 더 있을 수 있다면 좋겠어.”
‘나는 아니야.’
원희의 대답에 아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나랑 같이 있고 싶지 않다는 말이야?”
‘그런 말이 아니야.’
아정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답답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 엄마 왔다. 끊을게.”
‘알았어. 내일 봐.’
“응. 내일 봐.”
아정은 다급히 전화를 끊고 한숨을 토해냈다.
“하여간 자존심.”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무릎을 안았다.
“정말 싫다.”
아정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과외.”
원희는 한 번 더 이 말을 입 안에서 굴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더 이상의 도움은 받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다들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는데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들. 바빠?”
“아니요.”
그때 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왔다.
“웬 주스?”
“그냥 싸서 샀어.”
“안사도 돼요.”
“그래도 공부하는데 힘이 되라고.”
엄마의 미소를 보는 순간 과외 같은 것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옷은 많이 후줄근해져 있었다.
“엄마 옷 사야겠다.”
“집에 있는 사람이 무슨.”
“그래도.”
“아니야.”
원희가 다른 말을 하려고 했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엄마는 지금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아들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 괜히 엄마가 이상한 사람 같잖아.”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됐어.”
엄마는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다가 원희의 문제집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원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방을 나갔다. 원희는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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