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완결/현재진행형[완]

[로맨스 소설] 현재진행형 2018 [2장. 자꾸 보이는 재수생]

권정선재 2018. 6. 12. 23:43

2. 자꾸 보이는 재수생

정말 열심히 하네.”

고맙습니다.”

강사의 말에 원희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하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원희에게는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는 말이었다. 원희는 문제집을 가지고 교무실을 나섰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 피곤해.”

원희는 이리저리 목을 풀고 헛기침을 했다.

 

저기.”

어제까지 대화를 하던 동기가 아정이 말을 걸었지만 피했다. 아정은 당황스러웠다. 다들 자신의 시선을 피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너랑 이야기 안 할 거야.”

?”

동기들은 이 말을 하고 멀어졌다. 아정은 머리가 멍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 저는 왜 과사를 못 간다는 거죠?”

그건 그쪽이 더 잘 알지 않나?”

그게 무슨.”

조교의 말에 아정의 얼굴이 굳었다. 설마 어제 그런 식으로 부딪친 것 때문에 이런 일들을 하는 건가?

저기 어제 있었던 일은 제가 피해자였는데요? 제 어머니에 대해서 이상한 말을 했다고요. 그런데 제가 왜 이런 피해를 입어야 하는 거죠? 대학생들이나 되어서 지금 이게 뭐 하는 건데요?”

그러니까 우리가 수준이 안 맞아서 그쪽이랑 못 놀아드린다. 이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럼 되는 거죠?”

뭐라고요?”

바쁘니까 나가요.”

조교가 밀어내듯 아정을 몰아세웠다. 아정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고 조교는 문을 잠그고 멀어졌다.

아니 이게 뭐야?”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 학생과 같이 조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교수가 다시 말을 했지만 그 누구도 시선도 마주하지 않았다. 교수는 한숨을 토해내며 이맛살을 구겼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조별 과제를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거지. 누구라도 지원을 좀 해요.”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정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런 모욕. 생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학생은 무슨 잘못을 한 거야?”

?”

갑자기 교수의 화살이 자신에게 오자 아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교수는 혀를 차면서 미간을 모았다.

이거 수업 관두던가.”

그게 무슨?”

나는 조별 과제 아니면 아무튼 점수 못 줘요. 그러니까 학생이 알아서 해. 나는 더 이상 못 해.”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 이 수업 안 들어도 되는 건가요?”

뭐라고요?”

이거 제가 알기로는 전공 필수로 알고 있는데요. 이거 못 들어두면 졸업 못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교수님이 이런 문제로 인해서 제가 수업을 못 듣는 것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안 해주시는 거죠?”

여기가 고등학교인 줄 알아?”

아정의 말에 교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정은 망설이지 않고 물끄러미 교수를 응시했다. 교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학생은 혼자서 해.”

고맙습니다.”

교수는 이 말을 남기고 강의실을 나섰다. 아정은 한숨을 토해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숨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정말 싫다.”

아정은 젓가락을 내려놨다. 어제까지 같이 밥을 먹던 동기들 중 그 누구도 아정과 눈이라도 마주치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는지. 너무나도 신기한 기분이었다. 이상했다.

그렇다고 내가 기가 죽을 줄 알아.”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무조건 견딜 거였다. 자신이 하는 거. 가장 잘 하는 거. 그게 바로 견디는 거였다.

 

어떻게 집에 있어?”

있으면 안 돼?”

아니.”

서정의 반문에 아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영화제도 가고 바쁘게 지내던 오빠를 집에서 본 게 신기했다.

우리 되게 오랜만에 보는 거 아니야?”

그러게.”

아정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네가 이 오라버니에게 잘 해야 하는 거야. 우리가 얼마나 더 자주 볼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야.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는 건데. 내가 앞으로 얼마나 바쁠지도 모르는 거고.”

아 뭐래.”

아정이 그대로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자 서정은 미소를 지었다. 학교 생활이 힘들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잘 지내는 모양이었다.

 

매일 저녁에 자습 시간에 어디 그렇게 가?”

그냥?”

같이 공부하는 친구의 물음에 원희는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친구는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너 떨어진다.”

나는 붙어. 무조건.”

무슨 자신감이래?”

그냥?”

원희는 엄지를 들고 가방을 챙겼다.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문제집으로 시선을 돌리고 원희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이원희 학생.”

고개를 돌려보니 담당 교사였다.

어디 가는 겁니까?”

그게.”

지금 자습 시간인 거 모릅니까?”

아는데요.”

그럼 다시 들어가죠.”

아니.”

원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제 아정의 얼굴이 그다지 편한 기분이 아니었다. 분명히 자신에게 말을 하지 못하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자신이 하는 것은 그런 아정을 달래고 위로를 해주는 거였다.

집에서 어머니께서 오라고 하셔서요.”

누가 그래요?”

아니.”

그런 건 미리 연락을 해야죠.”

죄송합니다.”

원희는 그대로 달아났다. 뒤에서 교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정을 만나는 게 우선이었다.

 

오늘은 바쁜 모양이네.”

아정은 멍하니 벤치에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원희에게 부담을 주는 게 틀린 거라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수도 이제 자신의 일이 있어서 바쁜 상황이었다. 아저은 한숨을 토해냈다.

나 왜 이러니?”

그래도 늘 뭐든 다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스스로 이렇게 무능력하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제 오늘 있었던 일은 너무 힘들었다.

윤아정. 어디 가?”

아정은 고개를 돌렸다. 원희가 가쁜 숨을 몰아내고 있었다. 3월의 쌀쌀한 날에도 원희의 이마에 굵은 땀 방울이 맺혀 있었다.

땀 좀 봐.”

너 보러 오려고.”

미쳤어.”

아정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뛴 거야?”

지하철역부터.”

?”

버스가 안 오더라고.”

정말.”

아정의 눈에 순간 눈물이 맺혔다. 원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네가 나에게 그러면 나 너무 미안하잖아. 나는 너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해줄 수가 없는데.”

내가 뭘 한 건데?”

그냥 여기에 있는 거?”

원희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살짝 둘고 물끄러미 아정을 보고 앞으로 한 발 다가섰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보더니 살짝 인상을 구기고 입을 조금 내밀었다.

안아도 돼?”

?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

땀이 나서.”

뭐래.”

아정은 원희의 팔을 가볍게 때리고 품에 꼭 안았다. 원희는 씩 웃으면서 아정을 안고 등을 문질렀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야?”

그럼.”

아정의 대답에 원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아정이 자신이 걱정을 할까봐 입을 다물고 있는 거 같은데 도대체 여기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굳이 아정이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먼저 말을 하고 아는 채를 하는 것도 이상했다.

너는 공부 잘 돼?”

아니.”

원희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익살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정은 그런 표정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웃었다.”

그럼 안 웃어?”

그러게.”

원희는 손을 내밀었다. 아정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흔들고 그 손을 잡았다. 원희는 살짝 목을 가다듬었다.

무슨 일이야?”

아무 것도 아니야.”

거짓말.”

원희는 이렇게 말하고 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정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살짝 줬다.

나 네 편이야.”

고마워.”

알지?”

그럼.”

아정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이렇게 자신을 믿어준다는 것. 이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정말로 큰 힘이 되는 거였다. 자신이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도 얼른 대학생이 되고 싶다.”

너야 말로 힘들지?”

힘들지.”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다가도 씩 웃었다.

그래도 나는 다행이야.”

뭐가?”

다른 애들은 이미 한 번 공부를 한 거라서 오히려 더 집중을 못 하더라고. 그런데 나는 이번에 처음 보는 거 같은 게 되게 많아서. 그래서 애들이 그렇게 생각을 해는 거랑 다르게 재미가 있더라고.”

재미?”

아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썹을 올렸다.

공부가?”

?”

이원희 많이 달라졌네.”

그럼.”

원희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정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희는 아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씩 웃었다.

그래도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야.”

닭살.”

아정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밝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원희의 눈을 응시하면서 깊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도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은 원희의 목을 끌어당겨서 깊이 입을 맞췄다. 위로가 되는 입맞춤. 모든 슬픔과 우울을 사라지게 만드는 어떤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