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자꾸 보이는 재수생
“정말 열심히 하네.”
“고맙습니다.”
강사의 말에 원희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하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원희에게는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는 말이었다. 원희는 문제집을 가지고 교무실을 나섰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 피곤해.”
원희는 이리저리 목을 풀고 헛기침을 했다.
“저기.”
어제까지 대화를 하던 동기가 아정이 말을 걸었지만 피했다. 아정은 당황스러웠다. 다들 자신의 시선을 피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너랑 이야기 안 할 거야.”
“어?”
동기들은 이 말을 하고 멀어졌다. 아정은 머리가 멍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네? 저는 왜 과사를 못 간다는 거죠?”
“그건 그쪽이 더 잘 알지 않나?”
“그게 무슨.”
조교의 말에 아정의 얼굴이 굳었다. 설마 어제 그런 식으로 부딪친 것 때문에 이런 일들을 하는 건가?
“저기 어제 있었던 일은 제가 피해자였는데요? 제 어머니에 대해서 이상한 말을 했다고요. 그런데 제가 왜 이런 피해를 입어야 하는 거죠? 대학생들이나 되어서 지금 이게 뭐 하는 건데요?”
“그러니까 우리가 수준이 안 맞아서 그쪽이랑 못 놀아드린다. 이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럼 되는 거죠?”
“뭐라고요?”
“바쁘니까 나가요.”
조교가 밀어내듯 아정을 몰아세웠다. 아정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고 조교는 문을 잠그고 멀어졌다.
“아니 이게 뭐야?”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 학생과 같이 조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교수가 다시 말을 했지만 그 누구도 시선도 마주하지 않았다. 교수는 한숨을 토해내며 이맛살을 구겼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조별 과제를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거지. 누구라도 지원을 좀 해요.”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정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런 모욕. 생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학생은 무슨 잘못을 한 거야?”
“네?”
갑자기 교수의 화살이 자신에게 오자 아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교수는 혀를 차면서 미간을 모았다.
“이거 수업 관두던가.”
“그게 무슨?”
“나는 조별 과제 아니면 아무튼 점수 못 줘요. 그러니까 학생이 알아서 해. 나는 더 이상 못 해.”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 이 수업 안 들어도 되는 건가요?”
“뭐라고요?”
“이거 제가 알기로는 전공 필수로 알고 있는데요. 이거 못 들어두면 졸업 못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교수님이 이런 문제로 인해서 제가 수업을 못 듣는 것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안 해주시는 거죠?”
“여기가 고등학교인 줄 알아?”
아정의 말에 교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정은 망설이지 않고 물끄러미 교수를 응시했다. 교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학생은 혼자서 해.”
“고맙습니다.”
교수는 이 말을 남기고 강의실을 나섰다. 아정은 한숨을 토해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숨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정말 싫다.”
아정은 젓가락을 내려놨다. 어제까지 같이 밥을 먹던 동기들 중 그 누구도 아정과 눈이라도 마주치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는지. 너무나도 신기한 기분이었다. 이상했다.
“그렇다고 내가 기가 죽을 줄 알아.”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무조건 견딜 거였다. 자신이 하는 거. 가장 잘 하는 거. 그게 바로 견디는 거였다.
“어떻게 집에 있어?”
“있으면 안 돼?”
“아니.”
서정의 반문에 아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영화제도 가고 바쁘게 지내던 오빠를 집에서 본 게 신기했다.
“우리 되게 오랜만에 보는 거 아니야?”
“그러게.”
아정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네가 이 오라버니에게 잘 해야 하는 거야. 우리가 얼마나 더 자주 볼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야.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는 건데. 내가 앞으로 얼마나 바쁠지도 모르는 거고.”
“아 뭐래.”
아정이 그대로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자 서정은 미소를 지었다. 학교 생활이 힘들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잘 지내는 모양이었다.
“매일 저녁에 자습 시간에 어디 그렇게 가?”
“그냥?”
같이 공부하는 친구의 물음에 원희는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친구는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너 떨어진다.”
“나는 붙어. 무조건.”
“무슨 자신감이래?”
“그냥?”
원희는 엄지를 들고 가방을 챙겼다.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문제집으로 시선을 돌리고 원희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이원희 학생.”
고개를 돌려보니 담당 교사였다.
“어디 가는 겁니까?”
“그게.”
“지금 자습 시간인 거 모릅니까?”
“아는데요.”
“그럼 다시 들어가죠.”
“아니.”
원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제 아정의 얼굴이 그다지 편한 기분이 아니었다. 분명히 자신에게 말을 하지 못하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자신이 하는 것은 그런 아정을 달래고 위로를 해주는 거였다.
“집에서 어머니께서 오라고 하셔서요.”
“누가 그래요?”
“아니.”
“그런 건 미리 연락을 해야죠.”
“죄송합니다.”
원희는 그대로 달아났다. 뒤에서 교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정을 만나는 게 우선이었다.
“오늘은 바쁜 모양이네.”
아정은 멍하니 벤치에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원희에게 부담을 주는 게 틀린 거라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수도 이제 자신의 일이 있어서 바쁜 상황이었다. 아저은 한숨을 토해냈다.
“나 왜 이러니?”
그래도 늘 뭐든 다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스스로 이렇게 무능력하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제 오늘 있었던 일은 너무 힘들었다.
“윤아정. 어디 가?”
아정은 고개를 돌렸다. 원희가 가쁜 숨을 몰아내고 있었다. 3월의 쌀쌀한 날에도 원희의 이마에 굵은 땀 방울이 맺혀 있었다.
“땀 좀 봐.”
“너 보러 오려고.”
“미쳤어.”
아정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뛴 거야?”
“지하철역부터.”
“어?”
“버스가 안 오더라고.”
“정말.”
아정의 눈에 순간 눈물이 맺혔다. 원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네가 나에게 그러면 나 너무 미안하잖아. 나는 너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해줄 수가 없는데.”
“내가 뭘 한 건데?”
“그냥 여기에 있는 거?”
원희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살짝 둘고 물끄러미 아정을 보고 앞으로 한 발 다가섰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보더니 살짝 인상을 구기고 입을 조금 내밀었다.
“안아도 돼?”
“어?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
“땀이 나서.”
“뭐래.”
아정은 원희의 팔을 가볍게 때리고 품에 꼭 안았다. 원희는 씩 웃으면서 아정을 안고 등을 문질렀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야?”
“그럼.”
아정의 대답에 원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아정이 자신이 걱정을 할까봐 입을 다물고 있는 거 같은데 도대체 여기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굳이 아정이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먼저 말을 하고 아는 채를 하는 것도 이상했다.
“너는 공부 잘 돼?”
“아니.”
원희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익살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정은 그런 표정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웃었다.”
“그럼 안 웃어?”
“그러게.”
원희는 손을 내밀었다. 아정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흔들고 그 손을 잡았다. 원희는 살짝 목을 가다듬었다.
“무슨 일이야?”
“아무 것도 아니야.”
“거짓말.”
원희는 이렇게 말하고 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정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살짝 줬다.
“나 네 편이야.”
“고마워.”
“알지?”
“그럼.”
아정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이렇게 자신을 믿어준다는 것. 이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정말로 큰 힘이 되는 거였다. 자신이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도 얼른 대학생이 되고 싶다.”
“너야 말로 힘들지?”
“힘들지.”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다가도 씩 웃었다.
“그래도 나는 다행이야.”
“뭐가?”
“다른 애들은 이미 한 번 공부를 한 거라서 오히려 더 집중을 못 하더라고. 그런데 나는 이번에 처음 보는 거 같은 게 되게 많아서. 그래서 애들이 그렇게 생각을 해는 거랑 다르게 재미가 있더라고.”
“재미?”
아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썹을 올렸다.
“공부가?”
“어?”
“이원희 많이 달라졌네.”
“그럼.”
원희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정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희는 아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헛기침을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씩 웃었다.
“그래도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야.”
“닭살.”
아정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밝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원희의 눈을 응시하면서 깊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도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은 원희의 목을 끌어당겨서 깊이 입을 맞췄다. 위로가 되는 입맞춤. 모든 슬픔과 우울을 사라지게 만드는 어떤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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