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그릇된 자존심
“괜찮아.”
“고맙지만 굳이 이러실 이유 없어요.”
“어?”
아정의 말에 희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이를 드러내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왜?”
“네?”
“나는 네가 궁금한데.”
“아니.”
이건 또 뭐야? 아정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자신의 편을 들어준 사람과 부딪치고 싶지는 않았다.
“저는 학교를 그저 조용하게 다니고 싶어요. 아까는 도와주셔서 고맙지만 더 안 하셔도 돼요.”
“내가 더 이상 너랑 같이 다니지 않으면 저 녀석들 또 너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걸?”
“그건.”
아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이 남자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그것들은 너무 유치했으니까.
“그리고 나도 네가 들은 것처럼 복학을 해서 같이 다닐 사람이 없거든. 불편하지 않았으면 같이 다니길 바라.”
“불편해요.”
“어?”
“불편하다고요.”
“아.”
희건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정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너 재미있구나.”
“네?”
“그래서 다들 너를 싫어하는 거였어.”
“아니.”
“아 미안.”
아정의 얼굴이 굳자 희건은 양손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 녀석들 유치해서 그래. 하나도 잘난 것이 없는 애들이라. 그리고 너 여기 이사장 딸이라고 했던가?”
“그게.”
“그래서 온 거 아니야.”
희건은 미간을 모은 채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정은 침을 삼켰다. 희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너무 안쓰러워서 그래. 나도 그 녀석들이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그저 너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이 하나 늘어난 거라고 생각을 해주면 되는 거 아닐까?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한 거 같은데.”
“그러니까.”
“어려워?”
아정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희건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씩 웃었다. 아정은 그 시선을 피했다.
“일단 친해지자고.”
“네.”
“나는 강희건.”
희건은 손을 내밀었다. 아정은 물끄러미 그 손을 응시했다. 아정이 잡지 않자 희건은 손을 거뒀다.
“뭐 이거야. 천천히.”
“윤아정이에요.”
희건은 씩 웃었다.
“서정이 동생.”
“네?”
아정은 고개를 들었다. 오빠를 안다고? 희건은 고개를 갸웃하고 밝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배우라고?”
“뭐.”
서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저었다.
“배우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고. 그냥 단편 작업 같은 것을 하는 거 같아. 나랑 연기도 한 적이 있고.”
“그럼 배우잖아.”
“작가지.”
“어?”
“작가야. 거긴.”
“작가라니.”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하여간 이상한 사람에게 휘말린 건 사실이었다. 자신에게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유쾌한 기운의 사람이 아니었는데. 자신이 느낀 것이 제대로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너에게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됐어.”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니.”
서정의 말에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일은.”
“윤아정.”
“없어.”
아정은 부러 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혹시라도 네가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바로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 아무리 그래도 나 네 오빠야.”
“아니라고 한 적 없어.”
“지금 아니라는 거 같아.”
“아니야.”
“진짜지?”
“그래.”
서정이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서정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하여간. 다른 집에는 여동생들이 되게 살갑고 그렇다고 하던데 너를 보면 그런 건 아닌 거 같아.”
“다른 집 오빠들도 엄청 든든하고 그렇다고 하거든. 그런데 오빠를 보면 안 그런 거 같고 말이야.”
“그거야.”
서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서정은 별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아정은 짧게 미소를 지은 후 방으로 들어갔다. 서정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다가 세게 물었다.
“도대체 뭐야?”
서정의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
“얼굴이 상했어.”
“그래?”
원희의 말에 아정은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런가?”
“무슨 일이 있지?”
“아니.”
원희의 물음에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초에 무슨 일이라는 게 있을 게 없었다.
“그냥 학교를 다니는 건데 무슨.”
“나는 대학교가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지금 너를 보면 별로 행복해 보이지가 않아서 그래. 무슨 일이 있는 건데?”
“없습니다.”
아정은 부러 더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왜 그래?”
“아니.”
원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분명히 아정이 다른 날들과 다른데 뭐가 다른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확실히 공부를 열심히 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네가 보기에 내가 너무 피곤해 보이는 것을 보면.”
“그냥 그래서 그런 게 아닌 거 같으니까 그러지. 혹시라도 힘든 게 있으면 나에게 말을 해.”
“그럴 거지?”
“응.”
“정말.”
“그럴 거라고!”
아정은 자신도 모르게 날카롭게 나간 말에 몸을 움츠렸다. 자신이 이렇게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원희도 아정이 화를 내자 놀란 모양이었다.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왜 이러는 것인지. 아정은 애써 웃었다.
“그러니까.”
“안 괜찮아도 돼.”
“어?”
“너 안 괜찮아도 된다고.”
“아니.”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나 괜찮아.”
아정은 힘을 주어 말했다. 괜찮지 않다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원희에게 이럴 것도 없었다.
“너 지금 내 신경을 쓸 때야?”
“어?”
“너나 신경을 써.”
“무슨.”
“재수잖아.”
“아정아.”
“너부터라고.”
아정은 한숨을 토해냈다. 자신의 고민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작은 거였다. 이런 것까지 모두 신경을 쓴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원희가 자신의 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너의 시간을 앗아가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응?”
“나는 네 남자친구니까. 네가 힘든 거 같으면 왜 힘든 건지 듣고 싶은 거야. 이런 내가 잘못이야?”
“어.”
“뭐가 잘못인 건데?”
“괜찮다고.”
“아니.”
원희는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며 아정을 응시했다.
“너 안 괜찮아.”
“뭐라고?”
“네 얼굴이 말하잖아.”
“내가?”
아정은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쳤다. 지금 원희가 자신을 얼마나 잘 안다고 이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 나 알아?”
“어?”
“너 잘 모르잖아.”
“네 남자친구야?”
“그래서.”
아정의 날이 선 말에 원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정은 혀로 입술을 핥고 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고 있어. 네가 좋은 사람인 거.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마음대로 나를 재단할 이유가 되지는 않아.”
“재단이 아니라.”
원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아정을 재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정을 위해서 걱정을 한 게 전부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나에게 제대로 말을 해주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그저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고민 같은 것이 사라진다는 거. 그건 너도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낭만적이네.”
“뭐?”
“너무 낭만적이야.”
아정의 비꼬는 목소리에 원희를 혀로 이를 훑었다.
“너 정말.”
“됐어.”
원희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만 둬.”
“뭘 그만 둬?”
“네가 뭐가 아니?”
“뭐?”
“아무 것도 모르잖아.”
“아니.”
“공부나 해.”
“야.”
아정이 그대로 가자 원희는 아정을 잡았다. 아정은 돌아서면서 싸늘한 눈으로 원희를 응시했다.
“네가 뭘 알 거라고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스운 거지. 네가 도대체 뭘 알 수 있다고 이러는 거야.”
“뭐라고?”
아정은 그대로 멀어졌다. 원희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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