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엉킨 실타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
지석의 물음에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긴.”
지석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정이?”
“아니.”
“귀신을 속여라.”
지석은 맥주를 들이켜며 고개를 흔들었다. 원희는 그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데?”
“그냥 아정이가 힘든 거 같기는 한데. 내가 아정이가 뭐가 힘든 건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니까.”
“물어보지.”
“말을 안 하니까.”
“그래?”
지석이 미간을 모으자 원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아정의 문제도 아니었고 그냥 그런 거였다.
“너도 학교를 다니면서 힘든 거 있지 않아?”
“아니. 재미있어.”
“거짓말.”
“정말로.”
지석이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눈으로 자신을 보자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지석은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데?”
“모르겠어.”
“말을 안 해?”
“응.”
원희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가 그래도 아정이 아버지가 하는 재단이라서 조금 편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정이가 보이는 반응을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아. 대충 그런 게 문제가 있는 거 같기는 하지만 모르겠어.”
“알아봐야 하나?”
“아니.”
지석의 말에 원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정이 먼저 말을 하기 전에 묻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언젠가 무슨 일인지 말을 해줄 준비가 되면 아정이가 먼저 말을 해줄 거야. 아정이는 늘 그랬으니까.”
“그러다가 말을 안 하면?”
“어?”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
“그건.”
원희는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침을 꿀꺽 삼켰다. 아정은 반드시 자신에게 말을 할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지 않을 거라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을 하다거나 하지 않았다.
“너희 두 사람 지금이 오히려 위기 아니야?”
“위기라니?”
“반년이 되어가는 거고. 서로가 있는 위치가 다른 거잖아. 이 다른 위치라는 게 문제가 될 걸?”
“그건.”
원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석의 말을 들으니 정말로 그럴 거 같았다. 원희는 한숨을 토해내고 맥주를 모두 들이켰다. 지석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원희를 보며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 일도 없어.”
“정말?”
“응.”
지석이 일부러 동네까지 와서 묻자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 원희가 뭐라고 해?”
“아니.”
지석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걔가 뭐 자신에 o해서 그런 말을 하는 애야? 그런데 지금 두 사람을 보니까 그냥 뭔가 이상한 거 같아.”
“너도 학교를 다니면서 힘든 일들이 있잖아. 고등학교랑 다르니까. 그런데 원희에게 그런 것들에 대해서 모두 말을 해봐야. 그건 정말로 원희를 위하는 것도 아니고 놀리는 거 같은 거니까.”
“왜?”
“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건데?”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
지석은 힘을 주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거 아니야.”
“하지만.”
“아정이 네가 대충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넘기는 거. 이게 별 게 아니라고 하는 거. 이게 더 원희에게 무거운 일일 거라는 거 몰라?”
아정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원희에게 말을 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제 같은 것들이 한 번에 오는 느낌이었다.
“원희 걔는 이상해.”
“좀 이상하지.”
지석은 미소를 지은 채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가 좋아한 거잖아.”
“그건 그렇지.”
아정은 발로 가볍게 땅을 비비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다르다는 거. 그게 원희를 좋아한 이유였다.
“윤아정. 네가 원희를 흔들었어. 그리고 지금의 원희를 만든 것도 너야. 그러니까 네가 조금이라도 더 원희에게 믿음을 줘도 괜찮다고 생각을 해. 원희 그 정도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
“자격 있지.”
아정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격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학생이나 되어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너무 이상한 일이었고 너무 유치한 일이었으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을 할지 모르겠어. 다들 나를 이상하게 볼 거야. 심지어 지석이 너도 그럴 거야.”
“뭔데?”
“원희에게 말을 하지 마.”
“안 해.”
“지수에게도.”
지석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뭔데?”
“됐어.”
아정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지석의 표정을 보니 이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간단하지 않은 일을 지석이 알게 된다면 다른 말을 하게 될 거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건데? 윤아정. 나도 네 친구잖아. 나도 네 친구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정도는 말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건.”
아정은 이를 꽉 물었다.
“나 왕따야.”
저질러 버렸다.
“왕따.”
지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습지?”
“아니.”
지석은 멍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대학에서 왕따라고? 대학교에서. 이제 어른이 된 사람들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한다고?
“왜?”
“그러게.”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네.”
“미안.”
“왜 사과를 해?”
“그걸 네가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지석의 말에 아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건 자신이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는 말. 뭔가 충격적인 말이었다.
“내가 몰라도 되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한 거라고?”
“응. 누군가를 그런 식으로 따돌리는 사람들이 문제가 있는 거지.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이 무슨 잘못이 있을 리가 없잖아. 안 그래? 네가 그들에게 뭇느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모르는 척 하면서 따돌리는 건 올바른 방법이 아니야. 그 정도는 너도 간단하게 알 거 같은데?”
“그건.”
아정은 멍한 표정이었다. 사실이었다. 그게 맞는 거였는데. 지금 지석의 말처럼 생각을 해야 하는 건데.
“지금 네가 고민이 많은 건 알지만 원희에게 그러지 마.”
“어?”
“원희는 너 뿐이야.”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또 과제 안 해왔어요? 그건 내가 괴대에게 말을 했는데. 윤아정 학생? 학생이 노력을 해야지.”
“제가 노력이요?”
아정은 가만히 교수를 응시했다.
“이거 녹음해도 되나요?”
“뭐?”
순간 강의실에 싸늘한 분위기가 스쳤다.
“교수님께서 공식적으로 학교 포털에다 그 사실을 올리시는 것도 아니고. 학생에게 그런 일을 대충 맡기면서 이런 처리를 하시는 거. 그거 신입생이나 과 생활을 하고 싶지 않은 학생에게는 차별이죠.”
“저거 건방지네.”
“제가 선배에게 말했나요?”
아정이 뒤를 보면서 덤덤하게 말하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아니 윤아정 학생. 지금 윤아정 학생이 아버님을 보고 그런 식으로 함부로 굴고 있는 모양인데.”
“교수님 저도 못 들었는데요.”
그때 저 뒤에서 희건이 손을 들자 교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
“여기 저희 둘만 못 받은 건 아니고. 저쪽에 있는 만학도 학생 분도. 지금 휴대전화 스마트폰 아닐 걸요?”
“그래요?”
“네. 저도 못 들었어요.”
만학도 여성의 말에 교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이건.”
교수는 과대를 쳐다봤고 과대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교수님께서 이제부터는 무조건 강의 시간에 다음 시간의 과제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교수는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은 덤덤한 표정으로 책을 펼쳤다. 교수는 아정 족을 보지도 않았다.
“너 멋있더라.”
“아. 고맙습니다.”
희건이 말을 걸려고 하자 아정은 걸음을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런 아정과 다르게 희건도 그를 쫓았다.
“같이 밥 먹을래?”
“아니요.”
“왜?”
“저 애인 있어요.”
“그런데?”
“네”
“그냥 밥.”
희건은 밥을 먹는 시늉을 하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로 인해서 누군가가 오해를 하게 되는 상황 같은 거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저는 좋은 여자 친구거든요.”
“그래 보이네.”
희건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네가 왕따인 건 싫잖아.”
“네?”
“안 그래?”
“아니.”
“가자. 같이 밥 먹어.”
“하지만.”
희건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충 넘기려고 하는데 멀리서 자신을 따돌리는 학생들이 보였다.
“쟤들하고 설마 같이 밥을 먹으려는 건 아니지? 그리고 너도 나랑 있으면 쟤네가 못 괴롭힐 걸? 그냥 이이제이? 같은 거.”
“이이제이.”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희건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희건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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