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장. 다시 만난 세계 밖의 소년
“뭐하시는 거예요?”
서정이 그 손을 막았다.
“아버지.”
“놔라.”
“아버지.”
“놔!”
태훈의 언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서정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물끄러미 태훈을 응시했다.
“도대체 아정이도 싫다고 하는데 왜 여기에 오셔서 이런 일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러세요?”
“아정이 AB형이야?”
“네?”
“아정이 AB형이냐고.”
“그게.”
“그 사람 O형이었다.”
태훈의 말에 서정은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태훈의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갔다.
“그래서요?”
“내 딸이야.”
“이제 와서요?”
“뭐?”
“원희야 가.”
“형.”
“얼른.”
원희는 짧게 고개를 숙이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서정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거냐?”
“아버지야 말로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하시는 거예요? 지금 딸을 잃고 아들도 잃으시려고요?”
“뭐?”
“20년이에요.”
서정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 긴 시간에. 단 한 번도 아버지는 아정이를 자신의 딸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으셨어요. 아니에요?”
“그건.”
태훈은 침을 꿀꺽 삼켰다. 순간 늙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며 서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되게 이상하신 거 알아요?”
“너도 애를 낳으면 알 거다.”
“아니요.”
서정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아이를 낳는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을 거였다.
“저는 그렇지 않아요.”
“윤서정.”
“아정이 지금 행복해요.”
“저런 거지같은 놈이랑?”
태훈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물끄러미 서정을 응시했다.
“너도 네 여동생을 우선으로 생각을 한다면 저런 거지가 주위에 꼬이지 않게 조심해야 할 거다.”
“돌아가세요.”
“네 엄마 부탁이다.”
“뭐라고요?”
“병원 옮기라고.”
서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혀로 이를 훑고 고개를 숙였다.
“됐어요.”
“뭐?”
“제가 아정이 지켜요. 그리고 아정이 그 정도로 심각한 거 아니니까. 그냥 돌아가세요. 부탁이에요.”
태훈은 서정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손을 놓고 안경을 올렸다.
“멍청한 놈.”
“제가요?”
“그래.”
태훈은 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돌아섰다. 서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우유는?”
“아. 미안.”
원희의 사과에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지수는 그런 원희를 보며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너는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못 하니?”
“그러게.”
“야.”
아정이 자신의 팔을 때리자 지수는 입을 내밀었다.
“뭐야?”
순간 지수의 얼굴이 밝아졌다.
“오빠.”
“어. 지수야.”
서정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침대에 다가왔다.
“아정아 짐 챙겨.”
“어?”
“퇴원해도 된대.”
“아니.”
서정의 말에 아정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링거를 맞는 중인데? 원희를 봤지만 원희의 표정도 어두웠다. 뭔가 다른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둘은 좀 나가있어. 내가 옷 입을게. 지수 너는 나를 좀 도와줄래? 챙겨야 할 것도 있고.”
“응.”
아정은 간호사를 불렀고 링거를 뺐다. 원희는 그 모습까지 복도로 나왔다. 서정은 어색한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미안.”
“아니요.”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형이 왜요?”
“내 아버지니까.”
“에이.”
원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모의 잘못을 자식들이 잘못으로 느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거 형이 잘못한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상한 말은 하지 마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그거야.”
“형.”
“알았어.”
서정은 씩 웃었다.
“두 사람 뭐가 있는 거 같지?”
“응.”
아정의 물음에 지수는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데 나에게 말도 하지 않고 지금 이 시간에 퇴원을 하자는 건지. 이상해.”
“그러니까.”
지수는 아랫입술을 물고 입을 내밀었다. 지금 서정이 하는 행동은 그 동안 그가 보던 행동과 전혀 달랐다.
“여기는 왜?”
“내가 도와달라고 했어.”
서정의 말에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이제 겨우 원희와 잘 풀리는 거 같은데 희건이라니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오빠 지금 뭐하는 거야?”
“뭐가?”
“아니.”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선배님은 왜 여기에 게세요?”
“네 오빠가 지금 나에게 좀 도와달라고 해서. 내가 지금 여기에 오는 거 문제가 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아니.”
아정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아정의 손을 잡았다.
“나는 괜찮아.”
“하지만.”
“얼른.”
멀리 미선의 차가 보였다.
“도와줘.”
“알았어.”
희건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아정의 짐을 들었다.
“집이 좋지?”
“뭐.”
팬트하우스. 원희는 어딘지 모르게 들어가는 사람을 주눅이 들게 하는 집에 살짝 미간을 모았다. 이 집은 사람이 쉬기 위해서 있는 집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있는. 그런 집이었다.
“나랑 이 녀석은 거실 소파에서 자면 되니까. 네가 방에 들어가서 자면 돼. 아무도 들어가지 않을 거야.”
“제가 소파에서 잘게요.”
“뭐래?”
“됐어.”
아정은 두 남자 모두 자신을 보면서 미간을 모으자 입을 내밀었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아무렇지도 않아. 그리고 사실 여기에 왜 온 건지 모르겠어. 다시 학교도 가야 하는 건데.”
“학교는 여기에서 다녀.”
희건의 말에 아정은 미간을 모았다.
“무슨.”
“네 부모님이 기숙사에 있는 거 다 아시는데. 거기에서 다니는 게 편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그래도 여기에서 있는 게 마음이 편한 거 아니거든요. 저는 선배랑 있는 거 너무나도 불편하거든요.”
“그래?”
희건은 입술을 내밀더니 씩 웃었다. 그리고 바로 원희에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 녀석도 같이 있음 되겠네.”
“네?”
“뭐라고요?”
당황한 원희와 다르게 희건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무슨.”
“왜?”
“아니.”
“너만 있을래?”
“아니요.”
“안 돼요.”
희건은 둘을 보면서 씩 웃었다. 두 사람은 뭔가 말렸다는 기분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 다 지금 이 상황이 되게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말이야. 아. 우리 뭐 간단히 먹지 않을래?”
“저는 됐어요.”
“저도 됐어요.”
“치사한 것들.”
둘의 대화를 보며 희건은 입을 내밀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전화가 울리자 고개를 돌렸다.
“네 오빠네.”
“저를 좀.”
“됐어. 혹시라도 네 부모님일 수도 있고.”
“아.”
희건은 종료 버튼을 누르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럼 나는 나갔다가 올게.”
“네.”
“둘이 이상한 짓 하지 말고.”
“뭐래요?”
“무, 무슨.”
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자 희건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정은 원희의 앞을 막았다.
“이상한 말 하지 마요.”
“뭐래? 내가 보기에 지금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너희 둘인 거 같거든. 사실 나도 정확히 지금 이 상황이 뭔지 모르니까 네 오빠에게 가면 대충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겠지. 뭐가 됐건.”
희건의 말에 아정은 입을 다물었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드는 남매야.”
희건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가볍게 두 사람을 보고 미소를 짓더니 그대로 나갔다. 아정은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이 지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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