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장. 반쯤 남은 콜라
“싫어.”
“하지만.”
“싫다고.”
아정의 대답에 서정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아무리 네가 싫다고 해도 아버지라는 거 그거 변하지 않아. 네가 부정하고 싶어도 그거 사실이야.”
“사실이라고?”
아정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사실?”
“윤아정.”
“누가 그래?”
“뭐가?”
“그 사람이 내 아버지라고.”
“그 사람?”
서정은 미간을 구겼다. 아무리 우리가 태훈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이런 식의 발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너에게 실수하신 것은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날을 세우는 거야?”
“그런 거 묻는 거.”
“뭐?”
“진짜 아빠는 묻지 않아.”
아정의 대답에 서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정의 말이 옳았으니까.
“왜 또 여기에 와?”
“왜?”
아정의 말에 원희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못 오는 곳에 오는 것도 아니고.”
“아니.”
아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네가 자꾸 여기에 오면 미안하잖아.”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정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끄러미 원희를 응시했다.
“너 왜 그래?”
“어?”
“우리 헤어진 거잖아.”
“응.”
원희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아?”
“어.”
“어떻게?”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자신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괜찮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나는 지금 너를 보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아. 심장이 이상한 기분이고. 제멋대로인 거 같아.”
“그래.”
원희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을 해.”
“뭐?”
“이거 어떻게 풀어?”
“어?”
“얼른.”
원희의 채근에 아정은 입술을 꾹 다물고 미간을 모았다.
“당신도 나랑 다를 게 없군.”
“뭐라고요?”
미선은 어이가 없다는 듯 태훈을 응시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당신도 못 가보고 있으니.”
“우린 달라요.”
“뭐가 다르지?”
미선은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
“윤태훈 씨. 당신은 정말 최악의 남자야. 당신의 여자도 지키지 못했고. 당신의 아들과 딸도 지키지 못해.”
“그렇군.”
태훈은 한숨을 토해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끄러미 미선을 응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 당신은? 왜 그런 거지?”
“뭘요?”
“그 사람.”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다고?”
“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어린애 같아.”
태훈의 낮은 대답에 미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병원 옮겨줘요.”
“무슨 말이지?”
“이 대학 병원이 더 좋으니까.”
“내가 한다고 올 아이 같아?”
“아니더라도 옮겨.”
미선의 단호한 말에 태훈은 한숨을 토해내고 관자놀이를 꾹꾹 문질렀다. 그리고 물끄러미 미선을 응시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해도 이건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병원은 내가 관련이 되어 있는 게 아니라 내 형의 것이니까. 그런 것은 당신도 어느 정도 알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아주버님의 것이건 말건 그런 거 나는 몰라. 그냥 내 딸. 당신이 그걸 지키기 바라는 거야.”
태훈은 물끄러미 미선을 응시했다. 얼굴에 미소도 지니지 않은 채 보는 그 소름 끼치는 시선에도 미선은 덤덤했다.
“좋아.”
태훈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대신 아들은 둬.”
“뭐라고?”
“서정이 배우 시키지 마.”
“당신 정말.”
“왜?”
태훈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를 위해서 지금 내 뒤를 따르는 것이 더 낫다는 거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 그 아이 배우를 해서 도대체 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지? 배우 보다는 일을 배우는 게 나을 거야.”
“그건 그 아이가 바라는 게 아니야. 아버지가 되어서 아들이 원하는 일을 우선으로 했어야지.”
“아니.”
태훈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싫어.”
“뭐라고요?”
“내 아버지 말을 들었으면.”
“무슨?”
“그럼 당신을 만나지 않았겠지.”
미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태훈을 한 번 더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나도 마찬가지야.”
민서는 그리고 돌아섰다. 태훈은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리면서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사과의 말을 건넸어야 했는데.
“미치겠군.”
태훈은 미간을 모았다.
“많이 늘었네.”
“그래?”
아정의 칭찬에 원희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좋니?”
“응.”
원희의 대답에 아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입술을 꾹 다물고 물끄러미 그를 응시했다.
“너 왜 이래?”
“뭐가?”
“우리 헤어졌잖아.”
“그런데?”
“아니.”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미간을 모은 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왜 그래?”
“왜 그러냐니?”
“아니. 원희 너의 행동이 지금 이해가 안 가서. 그래서 지금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서 그래. 안 이상하니?”
“응.”
“안 이상하다고?”
“응.”
원희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리고 입술을 내밀고 한숨을 토해내고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네가 뭐라고 하건 이건 하나도 다르지 않아.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그대로인 거니까. 안 그래?”
“헤어졌어. 사귀던 사람이 헤어졌다고. 그런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관계일 수가 있는 건데?”
“여전히 나는 너를 걱정하고 있으니까. 네가 뭐라고 하건. 네 말이 무엇이건. 나는 너를 걱정을 하고 있으니까.”
아정은 고개를 푹 숙였다. 원희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말. 별 것 아닌 거 같았지만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왜 나를 걱정해? 동정이야?”
“응.”
원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정이야.”
“동정.”
“너도 나에게 그랬잖아.”
“아니.”
“거짓말.”
아정의 대답에 원희는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하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너 정말 마음에 안 들어.”
“그래?”
“그래.”
아정은 무릎을 안고 입을 내밀었다.
“나를 너무 잘 알아?”
“이것도?”
“어?”
원희는 아정에게 콜라를 내밀었다.
“이거 뭐야?”
반쯤 남은 콜라.
“김 빠진 거.”
“아.”
아정이 놀란 눈으로 원희를 쳐다봤다. 원희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네가 좋아하잖아.”
“그렇지.”
아정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네.”
아정은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다가 툭 떨어진 눈물에 놀라서 대충 훔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왜 이러지?”
“울어.”
“어?”
“울어도 돼.”
“아니.”
아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건 자신의 자존심이었고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싫어.”
“왜?”
“창피해.”
“아니.”
원희는 덤덤히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때로 지쳐서 힘든 거. 그거 말하는 거. 그런 거 하나도 부끄러운 거 아니야. 그건 창피한 일이 아니야. 오히려 자신의 감정이 지금 다르다는 거. 그거 말을 하지 못하는 게 더 부끄러운 거야.”
아정은 고개를 푹 숙이고 침을 삼켰다. 그리고 하늘을 보고 한숨을 토해냈다. 가슴이 콱 막힌 기분. 자신이 뭘 더 할 수 있는 걸까? 아정은 원희를 보고 입을 막았다. 자신은 그 누구도 없었다. 세상에 홀로 떨어진 자신. 이런 자신을 지금 잡아주는 유일한 사람이 원희였다. 원희는 그런 아정을 꼭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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