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 현재진행형 2018 [42장. 외로운 섬 하나]

42장. 외로운 섬 하나

“고마워.”

“아니요.”

서정의 인사에 원희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해야 하는 걸 한 건데요.”

“무슨.”

서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도대체 왜 연락을 안 받은 건지. 밤이라도 내가 다 받았어야 하는 건데. 원희 너에게 미안해.”

“아니요.”

서정은 그제야 원희의 얼굴이 거칠한 것이 보였다. 서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너무 미쳤네.”

“왜요?”

“한심하게.”

“무슨.”

“원희 너 가서 좀 씻어. 아. 가야지. 공부를 해야지.”

“아니요.”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저는 공부를 어디에서 해도 되는 거예요.”

“그래도 가족이 있어야지.”

“형 일을 하신다면서요.”

“아. 뭐.”

원희의 물음에 서정은 턱을 만지면서 어색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저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

서정의 말에 원희는 싱긋 웃었다.

“왜요?”

“너희 헤어졌다며.”

“아니요.”

“아니야?”

“네. 아니에요.”

원희의 대답에 서정은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원희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 아정이랑 뭐 하려는 거야?”

“그러게요.”

“원희야.”

“알아요.”

서정이 자신을 낮게 부르자 원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답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지금도 아정이가 너무 좋아요. 너무 좋은데 오히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에 해줄 수 있는 게 있고, 없고. 그런 게 어디에 있어? 그냥 하면 다 되는 거지. 안 그래?”

“아니요.”

서정의 말에 원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그런 건 분명했다.

“아정이가 너무 힘들어서 지친 순간인데 저는 아정이를 위해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아정이도 그거 알고 있어. 그리고 애초에 그 일에는 원희 네가 끼어들 여지가 그리 많지도 않아.”

“알아요.”

원희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미안.”

원희의 그 표정에 서정은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몰랐네.”

“그래요?”

“응.”

서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은 후 고개를 들고 한 번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씻고 와.”

“그럼 30분만 있다가.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응. 여기 앞에 사우나 가.”

“네?”

“부탁이야.”

“뭐.”

서정은 원희의 손에 카드까지 쥐어주었다. 원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을 받았다.

 

“그런데 왜 집에 와?”

“원희가 있으니까.”

“뭐?”

미선의 얼굴에 균열이 갔다.

“그게 무슨 말이야?”

미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걔가 지금 가족이 없는 애도 아니고. 너도 있고 나도 있는데. 도대체 왜 걔가 거기에 있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해? 당연히 너나 내가 거기에 가있어야 하는 거지. 거기가 어디야?”

“가만히 좀 계세요.”

미선이 일어나려고 하자 서정은 막았다.

“무슨?”

“왜 그러세요?”

“뭐?”

미선은 이마를 짚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아정이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사람. 그게 원희라는 거 어머니께서도 이미 아시잖아요. 아니에요?”

“아니야.”

미선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 말이 옳다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걔가 왜?”

“어머니.”

“걘 아니다.”

미선은 다시 한 번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문제네요.”

“뭐?”

“아정이.”

“아들.”

“아정이가 왜 그러는 건지.”

서정의 말에 미선은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정말 몰라요?”

“몰라.”

“그렇구나.”

서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 서정을 보고 미선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너는 네 엄마보다도 그 이상한 애 편을 우선으로 든다는 거야? 걔 지금 대학도 안 갔다며?”

“못 갔어.”

“그게 그거지.”

“달라요.”

서정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정이 탓이야.”

“뭐?”

미선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들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왜 아정이 탓이야? 아정이가 걔를 보고 대학에 가지 말라고 붙들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런 것도 아닌데 그게 도대체 어떻게 아정이 탓일 수가 있어? 그게 지금 말이 된다는 거니?”

“가지 말라고 했어.”

“뭐라고?”

미선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알맞은 말을 찾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아정이가 자신과 같은 학교에 다녔으면 좋겠다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대학에 가지 못하게 했어.”

“무슨.”

미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거였다.

“그게 말이 되니?”

“왜 안 되는 건데요?”

“그러니까 지금 내 말은.”

“그러니 그냥 두고 보세요.”

미선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정이를 위해서.”

서정은 재킷을 들고 한숨을 토해냈다.

“저는 일하러 가요.”

“배우 해.”

“안 해요.”

“왜?”

“내 선택이야.”

서정은 이 말을 남기고 집을 벗어났다. 미선은 침을 꿀꺽 삼키고 자신의 아들이 있던 자리를 멍하니 쳐다봤다.

 

“미안하게.”

“뭐가?”

원희가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면서 아정은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왜 여기에서 이러는 거야?”

“어?”

“그냥 가면 되잖아.”

“어떻게 그래?”

“뭐?”

“남이라도 안 그래.”

“아니.”

아정은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헤어진 사이에서 이러는 건 이상했다.

“우리 헤어진 거잖아.”

“그런데?”

“그런데라니?”

아정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더 이상 사귀지도 않는 사이인데. 지금 이런 식으로 서로 관심을 갖는 거 이상하지 않아?”

“응.”

“뭐?”

“안 이상해.”

원희는 덤덤히 대답했다.

“친구잖아.”

“아니.”

“그냥 친구라도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어. 네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어.”

아정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원희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정은 다시 자리에 누웠다.

 

“돈?”

“네.”

“무슨 돈?”

“아정이가 입원했어요.”

서정의 말에 태훈은 미간을 모았다.

“그러냐?”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아버지시니까요.”

“공식적.”

서정의 말이 옳았다. 태훈 자신은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아정의 아버지였고, 이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아이가 내 돈을 필요로 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서정이 너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건 달라요.”

“뭐가 다른데?”

“제가 중간에 있으니까요.”

태훈은 물끄러미 서정을 응시했다. 그러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요즘 들어서 점점 더 무례한 부탁을 하는 거 같구나. 네가 할 이유가 없는 이야기들까지 말이야.”

“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래?”

“네. 동생을 지키려고요.”

“동생.”

태훈은 검지로 턱을 긁적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은 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병원에 가봐도 되겠냐?”

태훈의 말에 서정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지금 태훈이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