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장. 겁내는 소년
“미안해.”
“아니야.”
서정의 사과에 아정은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이 와서 가야 하는 건데 이건 서정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냥 멋있는 거 하셔요.”
“내가 멋져?”
“뭐.”
서정은 씩 웃으면서 아정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아정은 그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서정은 꽤나 진지한 표정이었다.
“이거 잘 써. 그래야 내가 조금 더 마음이 편하니까. 그리고 이 정도는 내가 내줄 수도 있는 거고.”
“알았어. 고마워.”
아정은 미소를 지으며 카드를 바았다.
“그럼 나는 먼저 갈게.”
“그래.”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봬요.”
서정은 네 사람에게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수는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멀어지는 서정을 보며 지수는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뭔가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너무 멋있지 않아? 영화도 저렇게 잘 찍고? 정말 대한민국에 윤서정 배우가 있어서 다행이야.”
“뭐가?”
“정말 대박 아니야?”
“미쳤어.”
아정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서정이 잘 나가고 있다고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무슨?”
“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아니거든.”
지수는 일부러 더 크게 말했다. 아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말을 해주는 게 좋았다.
“그래도 다행이야.”
“당연하지.”
자신이 모르던 서정의 모습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저 평소에는 가볍게 생각만 하는 거였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서정에게 와서 악수를 하는 모습도 신기했다. 수많은 사람들. 아정이 이름을 아는 배우도 와서 반갑게 맞는 것이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아까 선생님 아니셨어?”
“어?”
지수의 물음에 아정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아니.”
“우리 어디에 뭐 먹으러 갈까?”
그때 원희가 끼어들자 아정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도 그를 보고 웃었다.
“그래 우리 뭐 먹을까?”
지수가 여전히 이상한 표정이었지만 아정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넘겼다. 결국 지수도 입을 다물었다.
“아까. 맞지?”
“어? 그게.”
지수의 말음에 아정은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왜?”
“아니.”
아정의 말에 지수는 눈을 흘겼다.
“그래서 이원희도 그런 거네.”
“어? 그러니까.”
“다행이야.”
“다행?”
지수는 정말로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안 가긴 하지.”
“뭐가?”
“선생님이랑 오빠.”
“아. 그렇지.”
아정은 혀를 내밀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보더라도 그 두 사람의 관계는 특별한 관계였다.
“그냥 사귀면 되는 건데.”
“정말로 괜찮아?”
“뭐가?”
“아니.”
“어머.”
지수는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힘을 주어 다시 한 번 고개를 흔들고 아정을 보고 미간을 모았다. 지수는 입술을 쭉 내밀고 이리저리 목을 풀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팬이라는 건 당연히 오빠를 위해서 뭐든 다 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빠가 연애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거고. 그냥 응원을 하는 거야. 오빠가 무엇을 하건. 그게 서정 오빠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아니까. 서정 오빠가 그저 잘 되기를 바라는 거야.”
“대단하네. 고마워.”
아정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렇게 못할 거 같아.”
“그래?”
“응.”
지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한 번 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아정의 손을 잡았다.
“서정 오빠가 얼마나 오랜 시간 그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건지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잘 되기 바라.”
“오랜 시간이지.”
아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걸ᄁᆞ?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그러니까.”
이제 두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잘 되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이 흔들리는 게 마음이 들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고 두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가까워지길 바라는 게 전부였다.
“아까 고마웠어.”
“뭐가?”
“선생님.”
“아.”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뭐.”
“네가 아니었더라면 나 그 순간에 당황해서 다 말을 했을 거야. 지수는 알지만 지석이까지는 굳이 알 이유가 으니까.”
“지석이 녀석은 여전히 모르더라.”
“그래? 바보.”
아정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이해가 안 가.”
“뭐가?”
“오빠랑 선생님.”
“뭐가 이해가 안 가?”
원희는 아정의 눈을 보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망설이는 거.”
“망설이는 거?”
원희는 미소를 지으며 살짝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리저리 목을 풀고 한숨을 토해내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너무나도 잘 이해가 가는데.”
“그래?”
“응. 지금 상황이라는 거. 그런 것들. 두 사람이 뭔가를 할 수 없는 거. 그런 것은 다 이해가 가니까.”
서정의 이야기. 시간이라는 것.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닐 거였다. 그렇디만 그래도 두 사람은 다소 걱정이었다.
“그렇긴 하다.”
아정은 가만히 웃었다.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
“아무 것도 하지 마.”
“어?”
“아무 것도.”
“아.”
아정은 그제야 겨우 미소를 지었다. 원희의 말이 옳았다. 자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맞았다.
“그건 두 사람이 알아서 할 거야.”
“두 사람의 일이지.”
“간단한 거 아니야?”
아정은 입술을 꼭 다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한심했다. 자신은 그 간단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네.”
“왜 그래?”
“아니.”
아정이 살짝 쓸쓸한 말투를 하자 원희는 어깨를 으쓱하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정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관망만 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두 사람의 일이니ᄁᆞ. 그거 힘들지 않아?”
“그냥 나랑 있으면 돼지.”
“그게 뭐야.”
아정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이렇게 느끼하지?”
“사랑에 빠져서.”
“헐.”
아정은 어이가 없어서 미간을 모았다.
“그게 뭐야?”
“왜?”
“아니.”
아정은 원희의 눈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서.”
“사랑해.”
“나도 사랑해.”
원희는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서로의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편안한 입맞춤. 아정은 조심스럽게 원희의 허리를 안았다. 원희는 아정에게 뜨거운 온기를 불어넣었다.
“고마워요.”
“아니.”
서정의 인사에 은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
“여기에.”
“그냥 왔어.”
은선은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괜히 왔어.”
“무슨.”
“오지 말 걸.”
“은선 씨.”
서정의 말에 은선은 고개를 들었다. 서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부르는 것에 아정은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
“네?”
“건방지게.”
“아니.”
은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미 모든 것은 다 끝이 난 거였다.
“우리 두 사람 말도 안 되는 사이라는 거. 나보다 네가 더 잘 알 거라고 생각을 해. 이미 알잖아.”
“아니요.”
서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뭘 알아요?”
“얼른 가.”
“아니.”
“일 해야지.”
“은선 씨.”
“가라고.”
사람들이 서정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렸다. 서정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답답했다.
“정말.”
“왜?”
“그게.”
은선은 그대로 돌아섰다. 서정이 은선을 따라 가려고 했지만 뒤에서 다시 그를 불렀다. 서정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너무나도 답답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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