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미친 짓을 한 거네?”
“그래?”
“아니.”
동선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왜라니?”
동선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안 그래도 회사에서 자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람들 안에서 버티고 있는데. 지금 영준이 한 행동은 자신을 더 궁지로 몰아세우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거였다.
“너로 인해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내 삶이 망가지는 건?”
“망가지는 거야?”
“당연하지.”
“아니.”
동선의 대답에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뭐라고?”
“오히려 지킬 거야.”
“무슨.”
“어차피 아실 거였어.”
영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물끄러미 동선의 눈을 응시했다. 그리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내가 이렇게 나서지 않았더라면 내 뒤에서 너를 괴롭히기 위해서 온갖 행동들을 했을 거야.”
“그래서 네가 잘한 거라고?”
“응.”
“아니.”
“잘한 거 맞아.”
영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전혀 잘한 것이 아닌데 도대체 왜 이렇게 자신감이 넘칠 수가 있는 걸까?
“지금 너로 인해서 내 모든 것이 다 망가지고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거 너는 모르는 거야? 정말 그래?”
“너는 내 전부야.”
“무슨.”
“전부라고.”
영준은 이 말을 하고 씩 웃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그대로 동선에게 입을 맞췄다. 숨이 거칠어지고 서로의 타액이 섞였다. 동선은 영준을 밀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 피우고 올게.”
“흥분을 뭐 굳이.”
“환자랑 안 자.”
“환자라니.”
동선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영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무슨 빽이야?”
“네?”
아침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부장의 물음에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자신에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무슨 말인지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는 해야 하는 거 같은데.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자기 빠졌어.”
“네?”
“희망퇴직.”
“아.”
어제 영준이 말을 했던 것이 바로 이런 거였을까? 거꾸로 그를 더 지킬 수밖에 없다는 게 이런 의미인 걸까?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튼 저 위에서 자기를 자르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왔어. 아니 왜 그렇게 사람이 이기적이야?”
“네?”
“우리라고 그쪽 같은 사람. 불편하지 않은 줄 알아?”
“무슨.”
동선은 어이가 없어서 미간을 모았다.
“제가 남자를 좋아하는 게 문제가 됩니까?”
“무, 무슨.”
지금 실컷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고서 정작 동선의 입에서 이 말이 제대로 나오자 부장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부장님이 이성애자라고 해서 모든 여성이 다 부장님을 좋아하지도 않고, 반대의 경우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지금 무슨 말이야?”
“그쪽. 남자가 봐도 매력 제로입니다.”
동선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뒤늦게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지 안 부장이 고함을 질렀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게 더 낫다는 것. 이게 무슨 말인지 아주 조금이지만. 정말로 별 것은 아니지만 지금 영준의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가 됐다.
“신기하네.”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영우 사람이네.”
“그게.”
기민이 놀라자 영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습니다. 뭐 어차피 회사에서 누군가가 나를 감시할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게 어느 쪽인지.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영우 쪽이라서 다행입니다.”
“네?”
“만만하거든.”
영준은 씩 웃으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일을 시작할까요.”
“아. 원두 구매가.”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해.”
“네?”
“매니저 해요. 매니저.”
기민은 살짝 미간을 모았다. 영준은 그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사람이 확 줄었어.”
“당연히 그렇지.”
은수의 말에 그림을 그리던 영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굳이 여기까지 찾아오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잖아. 그저 커피 한 잔을 마시러 오는 거니까.”
“그래도 그렇게 많더니.”
“여긴 너무 외지니까.”
“외지는 무슨.”
“맞잖아.”
영준은 가볍게 말하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차피 자신은 손님이 얼마이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손님이 늘어난다고 해서 나에게 더 좋을 것은 없으니까. 오히려 나는 지금 이 정도가 더 편해.”
“미친.”
은수는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쳤다.
“그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어.”
“왜?”
“왜라니?”
영준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장난스럽게 웃었다.
“어차피 나는 이 카페를 통해서 돈을 벌려고 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나랑 저쪽. 두 사람이 모두 다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정도가 좋아. 안 그랬다가는 나 또 쓰러졌을 거니까.”
“쓰러졌다고?”
“어? 어.”
은수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렸다.
“그걸 왜 말을 안 했어?”
“그러니까.”
영준은 머리를 긁적이고 어색하게 웃었다.
“네가 걱정을 할 거니까. 너를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네 친구 아니야?”
“어?”
“친구잖아.”
“그렇지.”
“그럼 말을 해야지.”
“그러게.”
은수의 말에 영준은 혀를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은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리고 저쪽은 어떻게 할 건데?”
“기민 씨?”
“그래. 너는 그냥 지금 일이 줄어도 괜찮다고. 지금 이 정도만 해도 괜찮은 거라고. 그렇게 말을 하지만 저쪽은 아니잖아. 너 저 사람에게 이 카페를 줄 거라고. 그런 말까지 다 했었던 거 아니야?”
“그렇지?”
영준은 아랫입술을 물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그 동안 제대로 생각을 하지 못하던 거였다.
“그러네.”
“조금 더 열심히 해.”
“알겠습니다.”
영준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은수는 그런 그를 보며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
“네?”
영준의 간단한 물음에 기민은 미간을 모았다.
“무슨?”
“아니. 그쪽은 영우랑 일을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면 그쪽을 위해서 영우도 뭔가 할 거 같은데?”
“저는 일단 김영우 사장님을 위해서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건 지금 제가 하는 일도 아니니까요.”
“아니라고?”
“네. 아닙니다.”
기민이 힘을 주어 말하자 영준은 자신의 턱수염을 만지며 끙 하는 소리를 냈다. 이대로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나는 지금 도움을 청하는 거야.”
“저도 이 카페 소속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겠지만. 지금 사장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건 제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에이.”
영준은 입을 내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네?”
“영우가 그쪽을 보냈다는 거. 기민 씨를 어느 정도 믿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장님께서 그러셔도 모릅니다.”
기민의 대답에 영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것 자신이 가서 직접 만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서두르십니까?”
“네?”
“지금 여기 오래 가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요?”
“아니요.”
기민의 물음에 영준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 문을 닫는다고 해도 나는 사실 손해를 볼 게 없으니까. 나는 이 카페 기민 씨를 위해서 키우려는 거니까.”
“네?”
기민은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나는 이 카페에 미련이 없거든요.”
“그건 안 됩니다.”
“네? 뭐라고요?”
기민은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식으로 하면 저도 열정을 가질 수가 없으니까요. 저는 사장님을 믿고 이런 걸 하는 거니까요.”
“나를 믿고.”
영준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자신을 믿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건지 너무나도 어려운 거였다.
“그거 나에게는 버거운데.”
“버겁다.”
영준의 말에 기민은 미간을 찌푸렸다.
“창업을 하시고 사람을 붙여달라고 하셨다면 어느 정도는 아셨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까칠하네.”
영준은 턱을 만지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신기했다.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게 묘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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