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왜 정리를 하셨어요?”
“그러게.”
기민의 물음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사장인데 그 정도 정리를 하는 것도 안 한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하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
기민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실 이유 없습니다.”
“어?”
“어차피 제가 하니까요.”
“아니.”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대충 자기 마음대로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해결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기민에게 이미 카페를 주기로 마음을 먹었던 거니까 더 열심히 해야만 하는 거였다.
“기민 씨에게 제대로 뭔가를 보여주려고?”
“네?”
“그냥 했어요.”
기민은 뭐라고 더 말을 하려다가 돌아섰다. 영준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동선의 인사에도 역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전날까지만 해도 자신과 같은 파트였던 부역장 역시 그를 외면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동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
“한 대 줘요?”
“네?”
평일에만 근무하는 여성 직원이 무심한 듯 담배를 내밀었다. 동선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것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내 이름 잘 모르죠?”
“아? 네. 그러니까.”
여서 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서울이에요.”
“서울.”
“신기하죠?”
“아. 뭐.”
“나를 서울에서 낳았대요.”
서울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일을 안 해서. 그리고 그쪽. 백 대리님은 사람들 눈도 잘 안 보고 다니시는 거 같던데요?”
“그게.”
“저도 들었어요.”
동선이 무슨 말을 더 하기 전에 서울은 싱긋 웃고 멀리 연기를 뿜었다. 동선은 서울에게서 담배를 받았다.
“고맙습니다.”
“우리 오빠도 그쪽이에요.”
“네?”
“뭐.”
“아.”
동선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서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엷은 미소를 지은 후 ㅕ유로운 자세를 취했다.
“미안해요. 이런 이야기.”
“아닙니다.”
“아무튼 저 담배 피우는 건 비밀.”
“아. 네.”
동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은 입에 구강 청결 스프레이를 뿌리고 옷에도 뿌리고 건물로 들어갔다.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멍하니 담배를 보다가 웃었다.
“나 뭐하냐.”
동선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안 힘드세요?”
“안 힘들어요.”
하나하나 다 그림을 그리는 영준을 보고 기민은 미간을 모았다. 저렇게 해서는 수익적으로 나오지 않을 거였다.
“지금은 이게 가능하지만. 전처럼 다시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면 그거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가요?”
영준은 입을 내밀고 씩 웃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미리 많이 그려두죠.”
“네?”
“그럼 되잖아요.”
“안 됩니다.”
“왜?”
“그거 포갤 수도 없어요.”
“아.”
혹시라도 속지에 잉크가 묻기라도 하면 그게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거였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할지도 모르고. 그림에 좋아하던 사람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 기민은 그가 그린 모든 것들을 하나로 죽 나열을 한 채로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그럼 저도 돕죠.”
“그래요.”
기민은 영준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펜을 들었다. 영준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왜 하시는 겁니까?”
“뭐 손님도 오라고.”
“아니요.”
기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카페.”
“네?”
“그 분을 만나고 싶으신 거라면 그냥 책방도 괜찮고. 그럴 거 같은데. 굳이 카페인 이유가 멉니까?”
“그러게요.”
영준은 씩 웃으면서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냥 여기에서 추억이 많아서.”
“그렇군요.”
“그런데 안 불편해요?”
“네?”
“내가 남자 좋아하는 거.”
“뭐.”
기민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다행이네.”
“네?”
“이런 내가 싫으면 뭐.”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저는 여기 직원인데.”
“냉정한데.”
“현실이죠.”
영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신기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건지. 영우가 보낸 사람이라고 해서 긴장을 했었는데 전혀 그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싫다. 정말.”
“네?”
“아닙니다.”
영준은 씨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친구가 생기는 거네.”
“친구.”
영준의 말에 동선은 살짝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걸 가지고 친구라고 말을 할 수가 있는 건지.
“그냥 직장 동료지.”
“그런데 이름도 몰랐어?”
“어? 어.”
어차피 늘 낮에만 근무를 하는 사람이었고 자신과 마주할 일이 없다고 생각을 했다. 따로 근무 표를 더 본 것도 아니었고.
“신기하네.”
“그러게.”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미간을 모았다.
“그런데 너 더 말랐어.”
“그래?”
“미친.”
동선은 손을 내밀어서 영준의 얼굴을 만졌다. 더 거칠어진 피부. 동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뭐가?”
“도대체 왜?”
“좋으니까.”
“좋다고?”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자신과 영준은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건 우스운 일이었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이러는 건데?”
“그러게.”
영준은 혀로 입술을 축이며 씩 웃었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김영준.”
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동선에게 허리를 숙였다. 뜨거운 입술. 동선은 밀어내려고 했지만 영준은 더욱 거칠게 그의 입술을 삼켰다. 두 사람의 타액이 섞이고 서로의 숨결이 가까이에 닿았다.
“무슨 짓이야?”
“안아줘.”
“싫어.”
영준은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지만 동선은 뒤로 물러났다.
“이러지 마.”
“왜 그래?”
“아픈 사람이랑 이러는 거 싫어.”
“무슨.”
영준은 동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목을 안고 그의 무릎에 앉아서 고개를 저었다.
“사랑해.”
“그러지 마.”
“좋아해.”
“하지 마.”
“네가 좋아.”
동선은 끙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영준에게 이마를 맞대고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러는 거 싫어.”
“동선아.”
“나로 인해 네가 더 아픈 게 싫어.”
“아니.”
영준은 고개를 흔들고 동선의 손을 자신의 아래로 가지고 갔다.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상태였다.
“네가 지금 다시 나를 살게 하는 거야. 네가 지금 나를 밀어낸다면 나는 이 최소한의 살 의지도 갖지 않아.”
“그건.”
“사랑해. 너를.”
영준의 고백에 동선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랑이라는 말. 처음 듣는 말이었다. 말도 안 되는 말.
“우리 안 본 지 오래야.”
“그런데 그 긴 시간. 나는 늘 너를 머릿 속에. 그리고 가슴 속에 담고 살았어. 너라는 사람을 다시 만날 기회를 찾았어.”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동선은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그건 아니지.”
“왜?”
“힘든 순간에도 왔어야지.”
“그래서 왔어.”
“뭐?”
“나를 안아줘.”
동선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 멍하니 영준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천천히 두 사람의 입술이 닿았다. 그 어느 순간보다도 뜨겁게. 서로의 거친 입술이 부딪치고 타액이 섞였다. 살짝 뜨거운 숨결. 영준이 동선의 옷 속으로 손을 넣으려고 하자 동선은 그를 밀어냈다. 영준은 미간을 모았다.
“그건 안 돼.”
“왜?”
“너를 위해서.”
동선의 말에 영준은 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동선은 그런 영준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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