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운이 좋군요.”
“운이 좋아요?”
의사의 말에 영준은 미간을 모았다.
“아니 이 나이에 암에 걸린 환자를 보고 지금 어떻게 의사가 되어서 운이 좋다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죠?”
“통증이 없으니까요.”
“무슨.”
맞는 말이기는 했다. 몸이 아프지 않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 다행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저는 죽는 거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누구나 죽습니다.”
“그게 무슨.”
영준은 혀로 입술을 축이고 고개를 흔들었다.
“약을 바꿔주세요.”
“왜 그래야 하는 거죠?”
“가끔 통증이 생깁니다.”
“통증.”
의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끄러미 영준을 보더니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보아하니 회장님에게는 그 병에 대해서 알리고 싶어하지 않으시는 거 같은데. 그것을 처방을 받으면 아실 겁니다.”
“그래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도 해주세요.”
통증을 참는 것 보다야 그쪽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도 하루하루 자신은 죽어가는 중이었다.
“아프지 않을 거라고 하시지만 저는 지금 죽을 거 같으니까요. 정말로 숨도 못 쉴 거 같거든요.”
“그래도.”
“그만.”
의사는 가만히 영준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잠시 무슨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치료도 받으시죠.”
“싫습니다.”
“그럼 저도 약을 드릴 수 없습니다.”
“무슨?”
영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의사라는 사람이 지금 환자와 어떤 거래를 하려고 하는 모양새였다.
“그거 좀 윤리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애초에 가족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시고 모든 것을 다 비밀로만 하는 것. 그것도 그다지 저에게 유리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렇군요.”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지만 할 것은 없었다.
“고맙습니다.”
“그럼 말 좀 들으시죠.”
“그건 아니고요.”
의사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고마워요. 외삼촌.”
의사는 물끄러미 영준을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미련한 놈.”
“뭐.”
외삼촌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야?”
“오면 안 돼?”
“아니.”
은수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오히려 네가 여기에 와줘서 너무 좋은데. 그 동안 내가 그렇게 오라고 할 때는 안 오더니.”
“그러게.”
영준은 씩 웃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은수는 그런 영준의 얼굴을 살피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뭐야?”
“뭐가?”
“너 지금 이상해.”
“그래?”
영준은 부러 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이런 것에 대해서 다른 말을 할 것은 없었으니까.
“뭐 먹을래?”
“학식.”
“어?”
“그냥 먹고 싶었어.”
은수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알았어. 가자. 누나가 쏠게.”
“네가 왜 누나냐?”
“생일이 먼저니까.”
“뭐래?”
가벼운 농담에 영준은 밝게 웃었다. 마음이 편했다.
“오래 기다린 거야?”
“네.”
“그렇구나.”
기민의 말에 영준은 살짝 넥타이를 만졌다. 영우의 기분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영준은 입술을 내밀었다.
“이런 거면 연락을 하지.”
“네?”
“그래도 와야 한다고.”
“오실 거였잖아요.”
“아니.”
기민의 말에 영준은 씩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이 올 거라는 말.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
뭐든 마주해야 하는 거였다.
“이거 좀 해주실래요?”
“네?”
서울의 말에 동선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방금 전 분명히 역장이 서울에게 시킨 일이었다. 하지만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저한테만 일을 다 주셔서 일이 너무 많아서요. 해주실 수 있는 거죠?”
“아. 네.”
동선은 쭈뼛거리며 서울의 옆에 앉았다. 서울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안 돼요.”
“네?”
퇴근하기 위해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서울이 먼저 말을 건넸다.
“무슨?”
“늘 그렇게 약하게 굴면 안 되는 거라고요. 저 사람들은 오히려 백 대리님을 무서워할 거 같은데?”
“아.”
그럴 수도 있었다. 그네들에게 동성애자라는 것은 너무나도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으니까 당연한 거였다.
“그런데 저에게 왜 갑자기 잘 해주세요?”
“뭐.”
서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씩 웃었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요.”
“네?”
“누군가가 이렇게 백 대리님의 편이 되어준다고 할 때. 그냥 그거 받으세요. 일부러 밀어내지 말고.”
“하지만.”
동선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할 때 지하철이 들어왔다. 서울은 반대 지하철로 향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지하철에 오르고 나서야 동선은 멍해졌다.
“뭐야?”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마음에 어떤 부담 같은 것이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에 더욱 신기했다.
“뭐하는 거야?”
“뭐가?”
영우의 물음에 영준은 느긋하게 대답했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
“사장이잖아.”
“그런데?”
“이렇게 오래 비워?”
“응.”
영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래서 사장을 하는 거잖아. 이러헥 오래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지 않을 거라면 아버지랑 일을 하겠지.”
“무책임하군.”
“그래?”
영준은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고개를 저었다.
“안 그런데.”
“무슨.”
“그런데 여기에 왜 온 거야?”
“뭐?”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아.”
영준의 말에 영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사람과 같이 일을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였다.
“사실 나는 아직도 네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러게.”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보다 형인 거 보면 말이야. 결국에는 네 어머니가 첩이었던 건데. 지금 그 자리에서 너무나도 여유롭게. 당신이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을 하시는 거잖아. 안 그래?”
“뭐라고?”
영우의 날이 선 반문에도 영준은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굳이 끌려갈 이유는 없으니까.
“여기에 왜 온 거야?”
“네가 말한 거.”
“아.”
영준은 입술을 살짝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지. 그거.”
“그런데 지금 이런 식으로 일을 대충하는 사람과 그런 계약을 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는데.”
“괜한 트집.”
“뭐라고?”
“너도 알잖아.”
영준의 자신이 넘치는 태도에 영우는 한숨을 토해냈다. 지금 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전에도 말한 것처럼 나는 네 자리를 빼앗을 생각은 없어.”
“지금 네가 빼앗으려고만 한다면 가질 수 있다는 거야?”
“당연하지.”
“뭐?”
“간단하잖아.”
영준은 입술을 살짝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식.”
“무슨?”
할아버지가 주신 주식. 그것은 서혁이 가진 것보다도 더 많은 양이었고 지금 영준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였다.
“첫 손주이지만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그래서 너무 가여운 거였고 할아버지의 아픈 손가락인 나니까.”
“치사하군.”
“지금 치사한 건 너야.”
영우는 물끄러미 영준을 응시하다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자꾸 가운데로 올 생각은 하지 마. 이 작은 카페에서 만족을 하란 말이야.”
“그러게. 그러면 다 되는 건데.”
영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게 안 되네.”
“뭐?”
“네가 나를 자극할수록.”
영준의 대답에 영우는 침을 삼켰다. 영준은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이건 지금 자신이 제대로 쥐고 있는 카드였다.
'★ 소설 완결 > 너는 없었다 [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16장] (0) | 2018.10.24 |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15장] (0) | 2018.10.23 |
[로맨스 소설] 너는 없었다. [13장] (0) | 2018.10.19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12장] (0) | 2018.10.18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11장] (0) | 2018.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