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그게 무슨 의미야?”
“그러게.”
영준의 대답에 은수는 미간을 모았다.
“김영준.”
“4기.”
영준은 손가락을 피며 씩 웃었다.
“포기하라는 거지.”
“야. 무슨.”
가벼운 말장난처럼 처리하는 영준을 보며 은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왜?”
“아니.”
“은수야 고마워.”
“뭐가?”
은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자신이 도대체 왜 일에 끼어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건지 스스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 너무 잔인해.”
“그러게.”
젊어서 그렇다고 했다. 너무나도 빠른 전이. 이건 자신이 바라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얼마나 남은 거야?”
“지금 당장 죽어도 안 이상하대.”
“뭐라고?”
은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의사가 그렇게 말을 해?”
“아 그리고 보신탕 먹으라고 하더라고.”
“뭐라고?”
“그게 좋대.”
“아니.”
은수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다른 말을 더 한다고 해서 변할 것은 없었으니까. 다만 이 상황에서 너무나도 덤덤하게 행동하는 이런 영준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무 답답했다.
“어떻게 할 거야?”
“뭐가?”
“이제 말을 해야지. 가족에게.”
“가족.”
가족이라니. 자신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미 영감이 죽고 나서 서혁도 그에게 크게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왜 그래야 하는 건데?”
“어?”
“나랑 과계도 없어.”
“정말 너 왜 그러는 건데?”
“그만 하자.”
은수가 한 번 더 자신에게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은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여간.”
영준은 흥분한 은수와는 다르게 그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씩 웃었다.
“너 정말 미워.”
“알아.”
“내가 뭘 하기 바라는 거야?”
“지금처럼.”
“어?”
“그냥 이렇게 해줘.”
영준의 말에 은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영준은 그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뭘 하려는 거야?”
“고백?”
영준의 장난스러운 말에 동선은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지.
“김영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같이 살자.”
“뭐?”
“너랑 살고 싶어.”
“나는 싫어.”
동선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더 이상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오늘 죽어도 안 이상하대.”
“무슨 말이야?”
“나.”
영준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지금 죽어도 안 이상한 거라고 하더라고.”
“뭐라는 거야?”
“미안해.”
“아니.”
세상에 같이 살자고 말을 하면서 자신이 죽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였다.
“그걸 지금 고백이라고 하는 거야?”
“고백이라기 보다는 그냥 같이 살자는 제안?”
영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면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의 모습은 이질적이었다.
“싫어. 나는.”
“왜?”
“나보고 송장을 치우라고?”
“아 그러네.”
영준은 순간 씩 웃었다. 동선은 침을 삼켰다. 굳이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말은 너무 심했어.”
동선은 인상을 구기면허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너도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거 알아야 하는 거야. 지금 네가 하는 모든 거 헛소리야.”
“나는 네가 좋아. 너는 아니야?”
“그건.”
동선은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도 좋았다. 영준과 뭔가 할 수 있다는 것.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그냥 넘어간다는 것.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나는 네가 필요해.”
“좋아.”
영준의 말에 동선은 침을 삼키고 미간을 모았다.
“아버지께 말씀을 드려.”
“어?”
“그럼 그렇게 할게.”
“음.”
동선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영준은 그의 아버지에게 이것에 대해서 얘기하지 못할 거였다.
“그럼 이제 이건 끝이 난 거지?”
“왜?”
“어?”
‘그렇게 할게.“
“한다고?”
“응.”
“간단히?”
“아니.”
영준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누가 말을 하더라도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간단할 리가 있어?”
“그런데 왜 하려는 거야?”
“너랑 살고 싶으니까.”
“아니.”
영준의 고백에 동선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영준은 지나치게 그에게 기대는 중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뭐가?”
“타인의 감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어?”
“내가 그런 것도 고려를 해야 해?”
“뭐?”
“나 죽어.”
영준은 덤덤히 대답했다.
“나 죽는다고.”
“아니.”
“정말 죽어.”
영준은 엷은 미소에 동선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말처럼 죽는 사람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미안해.”
“왜 사과를 해?”
“그런데 나는 버거워.”
동선은 가만히 영준의 눈을 응시했다.
“나는 힘들어.”
“그게.”
“정말 힘들어.”
영준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서 동선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바라는 대로 할게.”
“아니.”
“응?”
영준의 채근에 동선은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뭐라고?”
“제가 죽는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냐?”
서혁은 물끄러미 영준을 응시했다.
“무슨 망할 소리야.”
“그러게요.”
영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씩 웃었다.
“그런데 별로 어려운 말은 아닌데.”
“뭐라고?”
“암이래요.”
영준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런 것을 사실대로 말을 하니까 오히려 너무 장난스럽게 느껴졌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거짓. 그저 장난처럼 하는 별 것 아닌 이야기가 되는 기분이었다.
“췌장암.”
“췌장암이라니?”
서혁은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영준의 모친. 이 아이의 생모 역시 마찬가지의 병으로 죽었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너는 내 아들이다. 치료를 하면 된다. 내가 그 정도 능력은 있어. 나도 아버지야.”
“4기래요.”
“무슨.”
영준은 손가락 네 개를 피며 밝게 웃었다. 오히려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가볍게 말하는 쪽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냥 이게 낫다고 생각해요.”
“영준아.”
“오버는 하지 마시죠.”
서혁의 진지한 반응에 영준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뭐가 더 중요한지 아세요?”
“무슨 말이냐?”
“그냥 두고 보세요.”
“무슨.”
그제야 서혁의 얼굴이 굳었다.
“다 알고 그런 것을 한 거냐?”
“당연하죠.”
“왜 그런 거냐?”
“그러게요.”
영준은 더 밝게 웃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가볍고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모든 걸 잃게 되는 순간이 되어서야 결국 이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게 무슨.”
“다행이에요.”
서혁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게 지금 네 아비에게 할 말이냐?”
“다행 아니에요?”
“뭐?”
“영우에게도.”
순간 서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손을 들었다. 영준은 그런 서혁의 손을 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별 거 아니셨네.”
“망할 자식.”
“그래도 이제 아버지 같으세요.”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혁은 한숨을 토해내며 다시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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