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없습니다.”
“그래?”
기민의 말에 영우는 미간을 모았다.
“젠장.”
“왜 그러십니까?”
“아니야.”
영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상해서.”
“이상이요?”
“응.”
“무슨?”
“그 녀석이 아무 뜻이 없다고?”
영우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영준이 따로 나가겠다고 할 때는 분명 자신만의 무엇이 있어서 나가려고 했을 거였다. 그런데 그런 것도 없이 나간다고 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다른 것을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이상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나가는 거냐고?”
“그럼 나갈 이유가 없는 겁니까?”
“없지.”
영우의 확실한 말에 기민은 가만히 있었다.
“뭐 알아?”
“모릅니다.”
“알면 바로 말하라고.”
“알겠습니다.”
“그럼 가봐.”
기민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영우는 한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미간을 찌푸렸다.
“안 힘들어요?”
“네.”
“아니.”
기민의 대답에 영준은 미간을 모았다. 어떻게 사람이 힘이 들지 않을 수가 있는 건지. 그는 너무 열심히 하는 중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 말해요.”
“아닙니다.”
“아니 그래도.”
기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영준은 가만히 그런 그를 보다가 손가락을 튕기고 가볍게 손뼉을 쳤다.
“지금 그거 근무 시간 초과 아니에요?”
“수당 별도로 있습니다.”
“아니 그래도.”
“그리고 지금 사장님 카페는 5인 미만이라 해당이 없습니다.”
“아?”
아마 자신도 모르게 서혁이 더 신경을 썼던 모양이었다. 하여간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상한 인가이었다.
“아무 의미도 없이.”
“네?”
“아닙니다.”
영준은 가볍게 손뼉을 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기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영준은 그저 엷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약만 먹는다고?”
“응.”
“그럼 치료도 받지.”
“그건 싫어.”
은수의 물음에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였다. 자신은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건 달라.”
“뭐가 다른 건데?”
“이건 그냥 진통제니까.”
영준은 작은 통을 흔들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은수는 그런 그를 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이걸 먹어야 살거든.”
“미친.”
“왜?”
은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노려봤다.
“그런 게 아무렇지도 않아?”
“응.”
“어떻게?”
“그러게.”
은수의 물음에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왜?”
“아니.”
은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뭐가?”
“뭐가라니?”
은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이해를 할 수 없는 일들이 한 가득이었다. 이런 은수와 다르게 영준은 그저 여유롭기만 한 모양새였다.
“돈이 많으면 그럴 수 있나?”
“어?”
“자기 삶에 대해서.”
“그러게.”
영준의 대답에 은수는 한숨을 토해냈다.
“내 것이 아니니까.”
“뭐?”
“늘 그저 영감이 살라는 대로 살았어. 이제 영감이 죽고 자유가 조금이라도 생기나 했더니 결국 이 모양이야. 그래도 더 자신이 있게.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어서.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은수는 다른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은수를 보며 영준은 그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네? 정리해고 대상이라고요?”
“희망퇴직.”
“그게 다릅니까?”
“뭐.”
부장의 말에 동선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어떻게 다를 수 있는 겁니까?”
“이해를 좀 해줘.”
“아니요.”
동선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대로 밀려날 수는 없었다.
“제가 그 동안 문제를 일으킨 것도 하나 없는 거 같은데 도대체 제가 왜 이런 처우를 당해야 하는 겁니까?”
“총각이잖아.”
“네?”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그게 무슨?”
“어쩔 수 없어.”
“안 됩니다.”
“자기는 젊잖아.”
“부장님.”
“이미 정해진 거야.”
“뭐라고요?”
이미 정해졌다니. 이걸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건지. 그로는 용납을 할 수 없는 거였다.
“저는 지금 직장이 중요합니다. 제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건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야 말로 조금 다른 사람들을 배려를 해줘. 다들 애들 기르고. 얼마나 힘든 줄 알아? 그걸 알아야지.”
“저도 힘듭니다.”
“아니.”
부장은 동선의 말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기는 다르지.”
“뭐가 다릅니까?”
“앞으로도 결혼을 안 할 거 아니야?”
“네?”
“맞잖아.”
부장의 표정에 동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몇 년 전 자신과 영준 사이의 일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게 이유입니까?”
“아니.”
부장은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제가 버티면?”
“어쩔 수 없지.”
“그럼 있을 수 있는 겁니까?”
“아닐 걸세.”
아니다. 이런 말을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가 있는 걸까? 게다가 이렇게 덤덤하게 말을 하는데.
“제가 뭘 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알아서 나가주게.”
“네?”
“그게 다른 이들도 마음이 편할 거야.”
“그럼 제 마음은요?”
“회사에서 나름 신경을 쓸 거야. 그리고 자기 여기에서 이렇게 일을 한 사람이라면 다른 곳에도 잘 갈 수 있을 거고. 백동선 씨. 유능한 사람이야. 다른 곳에 가서 제대로 할 수 있을 거야.”
동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이 다른 곳에 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단 그럼 저는 버티겠습니다.”
“그래?”
“그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요.”
부장은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불편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불편 탓에 자신이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곳에서 밀려난다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수단은 아무 것도 없을 거였다.
“그럼.”
“가보게.”
부장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에도 자신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하나.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버티는 거였다.
“매일 기다리는 거 안 지쳐?”
“응.”
동선의 물음에 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왜 힘이 들어?”
“아니.”
“간단한 거잖아.”
영준의 말에 동선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이상한 인간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건지.
“내가 이렇게 너를 밀어내는데 어떻게 매일 기다려?”
“나를 좋아하는 걸 아니까?”
“뭐?”
“좋아하잖아.”
영준의 덤덤한 고백에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아니긴.”
영준의 미소에 동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네가 오면 나는 늘 힘들어.”
“어?”
“나 잘렸어.”
“뭐?”
순간 영준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서혁은 이런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도 갖고 있지 않을 거였다.
“그러니까.”
“알아.”
영준이 무슨 변명을 더 하려고 하자 동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그의 잘못은 아니었으니까.
“그냥 너를 만나서 이렇다고.”
“이제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뭐?”
“믿어.”
“미친.”
동선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 모든 갑갑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준의 눈빛은 꽤나 여유로웠다.
“싫어?”
“싫어.”
“거짓말.”
“거짓말 아냐.”
“거짓말이면서.”
영준은 한 발 앞으로 내딛었다. 그리고 그대로 동선의 목에 가볍게 팔을 걸었다. 천천히 두 사람의 입술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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