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완결/너는 없었다 [완]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8장]

권정선재 2018. 10. 15. 23:31

8

나에게 이러는 이유가 뭐야?”

후회할 거 같아서.”

후회?”

영준의 대답에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후회라니.

도대체 무슨 후회?”

나 정말로 너를 좋아했어.”

미친.”

그러게.”

동선의 낮은 욕설에도 불구하고 영준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선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꾸만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우리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그런 사람이 도대체 무슨 자격이 있어서 지금 여기에 와서 이러는 건데? 이상하잖아.”

아니잖아.”

?”

우리.”

영준의 덤덤한 말에 동선은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봤잖아. 우리.”

동선은 눈을 감았다. 봤다. 본 거였다. 두 사람.

그러네.”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젠장. 봤어?”

당연하지.”

지하철을 타러 온 영준을 보며 동선은 놀라서 물러났었다. 그 모든 걸 다 봤었던 걸까? 동선의 표정을 보며 영준은 웃었다.

김포공항역 맞아.”

시끄러워.”

?”

무슨.”

동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지. 동선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저 평소에 볼 공간이 아닌 자리에서 너를 봐서 그런 거야. 그런 거 빼고 아무런 의미도 없어.”

알았어.”

정말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라고.”

.”

영준이 순순히 대답을 해도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동선은 헛기침을 하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래서 뭐 하자는 건데?”

말을 했잖아. 연애.”

연애.”

동선은 영준의 말을 따라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연애라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

내가 죽을 사람이랑?”

.”

영준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선은 그런 영준의 눈을 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왜 그래?”

너라면 내가 죽는다고 하면 어떨 거 같아?”

슬프겠지.”

그리고?”

네가 바라는 걸 들었을 거야.”

동선은 침을 삼켰다. 자신이 바라는 것. 심장이 미친 듯 두근거렸다. 여전히 좋은 사람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곧 죽을 거라는 사람에게 다른 것을 바라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내가 지금 너를 만나는 건 멍청하다는 거야. 이제 곧 죽을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새끼가 어디에 있어?”

너무 잔인하네.”

이제 열이 살짝 내린 영준은 씩 웃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래.”

?”

영준은 주머니에서 아주 작은 약통을 꺼냈다.

마약성 진통제.”

마약?”

. 불법이기는 한데. 내가 나름 뒤에서 노력을 했지. 네가 지금 신고하면 나 바로 학교에 갈 걸?”

영준은 양손을 가로 지르며 씩 웃었다. 동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이런 미친 새끼가 다 있는 건지.

지금 네가 하는 말을 들으면 모두 다 거짓인 거 같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 같아.”

나도 그래.”

영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죽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지금 너무나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살고 싶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미 병원에서 버렸다.

수술이라도 해.”

전이가 다 되었대.”

무슨.”

그러게.”

영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모았다.

이상해.”

아니.”

나 그래도 나름 좋은 회사에 다니잖아. 그래서 검사도 받거든? 그런데 1년 전에 건강 검진에서는 나오지도 않았으면서. 이렇게 바로 4기라는 거. 이거 웃기는 거잖아. 말도 안 되는 거잖아.”

영준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피할 수 없었다.

누구나 죽어.”

그래도 우린 너무 젊어.”

젊지.”

영준은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살고 싶어.”

?”

너무나도.”

영준의 눈에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지자 동선의 심장도 툭 하고 떨어졌다.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미친 새끼.”

동선은 한 발 앞으로 다가가서 영준을 가만히 안았다. 앙상하게 마른 그의 몸이 품에서 느껴졌다.

그런 거면 그 순간 아버지가 하는 말도 다 무시하고 나에게 왔어야지. 바로 그렇게 했어야지.”

그러는 너도 다시는 나에게 연락을 하지도 않았잖아. 나를 단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은 거잖아.”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니까.”

동선의 낮은 목소리에 영준은 미소를 지었다.

 

알아서 해.”

?”

영준의 말에 기민은 미간을 모았다.

무슨?”

본사니까.”

그게 의미가 있습니까?”

당연하지.”

기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도대체 영준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민은 입을 내밀었다.

저는 지금 사장님께 와서 뭔가 일을 배우고 싶어서 스스로 지원을 한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이건 아니고요.”

그래?”

아니.”

미안해.”

영준의 대답에 기민은 미간을 모았다.

그럼 제가 할 게 없습니까?”

자기 생일이 언제지?”

?”

기민 씨.”

영준은 물끄러미 기민을 응시했다. 기민은 어이가 없어서 미간을 모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는 5월입니다.”

그럼 내가 그때 이걸 자기에게 줄게.”

? 그게 무슨?”

기민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영준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장님 왜 그러시는 겁니까?”

?”

그러니까.”

지원을 했다며.”

영준은 씩 웃으면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본사에 지금 이 모든 것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사실 우리 꼰대를 놀리려고 하는 거거든. 뭐 영감 님 돌아가시고 나서 꼰대가 나에게 잘 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니야.”

영준은 가볍게 몸을 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민 씨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한량이야. 그저 노는 일 말이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기민의 대답에 영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사장 앞에서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니.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내가 왜?”

그러니까 지금 하시는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아서 하는 말입니다. 도대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사실이니까.”

영준은 단호히 말하며 씩 웃었다.

나는 지금 기민 씨를 속이고 싶지 않아. 그래서 사실을 그대로 말을 해주는 거야. 그러니까 회사에 보고를 할 때는 조금 조용히 하라고. 이 회사. 그러니까 이 카페 회사 계열인 것도 알죠?”

압니다.”

영준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기민은 괜히 긴장된 표정을 지ᅟᅥᆻ다. 그가 알아서 왔다고 하면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제 그 분이 누구인지 여쭤도 됩니까?”

누구요?”

어제 만난.”

. 은수요?”

영준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기민 씨도 걔를 좀 좋아하는구나? 걔가 좀 털털하기는 한데. 그래도 꽤 매력이 넘치는 녀석이에요. 오늘날 여성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대로 하는. 그러니까 꽤나 괜찮은 녀석이라고 할 수 있죠.”

아니요.”

기민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그 남성 분.”

?”

나가서 만난.”

.”

영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기민의 눈을 보면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누구에 대해서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

아니.”

그만.”

기민은 눈썹을 움직였다.

비밀입니까?”

그렇죠.”

그렇군요.”

기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준은 씩 웃었다. 하여간 신기한 사람이었다. 이리 잘 보이다니.

누가 보낸 거죠?”

? 무슨?”

그러니까 영감님?”

아닙니다.”

.”

곧바로 나오는 말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정말 아닙니다.”

알아요.”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영우가 이 문제에 관여가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꽤나 귀찮을 수도 있었다.

아무튼 그 남자에 대한 것도 마음대로 보고를 해요. 그거 보고한다고 달라질 것은 하나 없으니까.”

그런 거 하지 않습니다.”

영준은 씩 웃었다. 기민이 무엇을 하건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여유는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