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내가 무슨 상관이라고.”
“그러게.”
은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선의 말이 옳았다. 그는 영준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한심해.”
동선의 지적에 은수는 입을 내밀면서도 엷은 미소를 지었다. 동선이 이런 말을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아.”
“언제까지 이럴 거야?”
“뭐가?”
“그냥 둘 거야?”
“뭐.”
은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자신의 일도 아니었다. 모든 것은 다 영준이 스스로 결정을 내린 일이었다.
“그래도 친구라면 병원에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그쪽은 그래도 저 미친 새끼랑 친한 거 같은데.”
“그래도 안 돼.”
“왜?”
“왜라니?”
은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자신도 너무 싫었다. 지금 말도 안 되는 거였지만 결국 영준의 선택이었다.
“당연히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당신은 친구라면서 지금 저 미친 새끼를 그냥 저렇게 두는 거라고?”
“영준이가 정한 거야.
“뭐라고?”
동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래서 그냥 보는 거야?”
“응.”
“미친 거야?”
“그럴 수도 있네.”
“미쳤네.”
동선의 말에 은수는 그저 웃었다. 자신을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친구라면 당연히 치료를 받게 해야 하는 거잖아. 어떻게 그냥 죽게 둘 수가 있는 거야? 이건 아니지.”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산다는 보장이 없다고 하더라고. 그런 거라면 그냥 저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좋지.”
“그래도.”
은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다가 동선의 눈을 보며 싱긋 웃었다. 동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좋아하는 거기는 하네.”
“뭐?”
“지금 걱정.”
“무슨.”
동선의 얼굴이 구겨지자 은수는 씩 웃었다.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 오랜 시간 마주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는데 지금 보기가 무섭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영준과 동선은 꽤 아까운 사이라는 거였다.
“그냥 외면하면 되는 걸 텐데.”
“그럴 순 없어.”
“왜?”
“그러게.”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왜 안 되는 걸까?”
“좋아하니까.”
“그건 아니야.”
“그거 맞아.”
동선의 대답에 은수는 가볍게 대답했다. 동선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당신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러게.”
은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영준이 손님들을 보내고 이리로 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이제 가야겠다.”
은수는 남은 커피를 모두 마셨다.
“당신 김영준 좋아해. 너무나도.”
“아니.”
“그래.”
은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씩 웃었다.
“김영준 남은 시간 얼마 없어. 잘 해.”
“아니.”
그리고 동선이 무슨 말을 더 하기 전에 가볍게 손을 흔들고 멀어졌다.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뭐야?”
동선은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때 영준이 은수를 보내고 밝은 미소로 동선의 앞에 앉았다.
“단골이네.”
“단골.”
영준의 말에 동선은 미간을 구겼다.
“그게 무슨 망할 말이야?”
“왜?”
“아니.”
“그래도 좋아.”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뭐 하자는 거야?”
“연애.”
“연애?”
동선은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제 죽을 거라는 인간이 지금 연애라는 말을 하는 거였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게다가 자신과 그는 이미 멀어졌다. 이런 건 연애와 관련이 없었다.
“내가 왜?”
“그러게.”
“젠장.”
동선이 욕설을 내뱉자 영준은 씩 웃었다.
“내가 좋구나.”
“나도 네가 마지막이었어.”
“아.”
“너는 아니야?”
“맞아.”
동선의 날이 선 물음에 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누구도 만날 시간도 없었고 그 시간 동안 동선을 잊지 않았다.
“지옥이네.”
“지옥.”
영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정말 죽는 거야?”
“응.”
“아니.”
“진단서라도 줄까?”
“됐어.”
영준은 아이처럼 밝게 웃었다. 동선은 침을 꿀꺽 삼키고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 덤덤하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건지 잊지 않았다.
“미친 새끼.”
“왜?”
“웃음이 나오냐?”
“그러게 웃음이 나오네.”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테이블을 만지작거렸다. 숨이 막혔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안 해.”
“뭐가?”
“아픈 사람이랑.”
“나는 그대로야.”
“그대로?”
동선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어떻게 이걸 그대로라고 할 수가 있는 걸까? 이미 모든 시간이 끝이 난 거였다. 그때 영준이 테이블을 넘어서 얼굴을 가까이 했다. 그 순간 동선은 그의 입술을 집어 삼켰다. 뜨겁고 거칠한 입술. 서로의 숨을 거칠게 빨아들였다. 동선은 입술을 떼고 이마를 맞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뒤로 물러나서 고개를 저었다.
“미쳤어. 미친 거야.”
“미안해.”
“도대체.”
“정말 미안해.”
동선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는 걸까?
“돈 거야.”
“그렇지.”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가슴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다시 사귀자.”
“싫어.”
“왜?”
“왜라니?”
동선은 그대로 가방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어지는 그를 보면서 영준은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2년 전. 그 시간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그 시간.”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왜.”
그 모든 시간이 이대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결국 스스로의 잘못이었다.
“나의 잘못.”
그가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한 거였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났던 거였다. 모든 건 스스로 해결을 해야 하는 거였다.
“젠장.”
동선은 심장이 마구 뛰었다.
“무슨.”
이제 다 잊은 거였다. 게다가 그 시간 동안. 너무나도 힘들었다. 두 사람은 뜨거웠고 그 만큼 멀어지는 게 힘들었다.
“도대체 왜.”
동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영준.”
그와 헤어지라고 그의 아버지는 회사에까지 사람을 보냈었다. 다행히 다른 것으로 둘러대서 아직 다닐 수 있는 거였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지금 그만 두게 되었을 거였다. 영준은 지옥이었다.
“지옥.”
그런데 심장이 뜨거웠다.
“관둬.”
스스로에게 하는 말.
“무슨.”
이제 죽는 사람이었다. 곧 죽을 거라는 사람에게 지금 이렇게 심장이 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 오히려 영준을 만나고 나서 죽었던 자신의 삶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이게 뭐야?”
“그냥 해보는 거.”
“그냥이라니.”
손님이 없기는 하지만 하나하나 컵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은수는 고개를 저었다.
“너 미친 거야?”
“그래?”
“당연하지.”
영준은 눈썹을 긁적이다가 씩 웃었다.
“그럼 좀 도와줄래?”
“뭐?”
“응?”
“아니.”
은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내 친구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야. 이런 거 자꾸 시키면 안 올 거라고.”
“네가 나를 좋아하니까.”
“뭐래?”
“아니야?”
“아니야.”
영준의 물음에 은수는 한숨을 토해냈다.
“나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어.”
“알아.”
은수는 그러면서도 펜을 들었다.
“도대체.”
“아우 착하다.”
“조용히 해.”
은수의 말에 영준은 미소를 지었다. 은수는 그런 그를 보며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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