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완결/너는 없었다 [완]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20장]

권정선재 2018. 10. 31. 00:11

20

반응이 좋아요.”

다행이다.”

그가 직접 그리는 게 아니라 디자인과 관련이 된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컵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싫어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풀리니 다행이야.”

다 사장님의 능력이죠.”

뭐래?”

기민의 말에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괜찮으신 거죠?”

?”

아니.”

괜찮습니다.”

영준은 두 손을 모으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기민은 입술을 꾹 다물고 미간을 찌푸렸다.

. 카페는 혼자 있을 수 있죠?”

? .”

그럼 나는 잠시 다녀올게요.”

. 다녀오세요.”

영준은 가볍게 손을 들고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답답하구나.”

왜요?”

망할 새끼.”

갑자기 서혁이 욕설을 하자 영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건 이제는 의미가 없을 거였으니까.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

그러니 진작 저에게 잘 하시지 그러셨어요?”

망할.”

서혁은 테이블을 소리가 나게 내리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리 모였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

네 아버지에게 이러면 좋은 거냐?”

좋을 리가요?”

영준은 입술을 내밀면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은 사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건 내키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금방이라도 죽을 수도 있어요.”

망할 새끼.”

서혁의 욕설에도 영준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좋네요.”

뭐라고?”

아버지의 걱정이라는 거.”

서혁은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구겼다. 얼굴이 굳은 그와 다르게 영준의 표정은 꽤나 편안하고 여유로웠다.

그래서 계속 이렇게 지낼 거냐?”

.”

후회할 거다.”

제가요?”

영준은 자신을 가리키며 인상을 구겼다.

어차피 끝인데요.”

망할.”

제가 후회할 겨를도 없어요.”

도대체 왜?”

그러게요.”

영준은 심호흡을 하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바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러게 왜 이럴까요?”

영준은 커피잔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이런 식으로 심술궂게 행동하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싫어.”

?”

싫다고.”

은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서 내가 왜 일을 해?”

내 친구니까.”

뭐라고?”

은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너 정말로 나를 친구로 생각을 하기는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고서야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래?”

?”

필요할 때만.”

.”

영준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개자식.”

미안.”

싫어. 정말.”

은수는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나 아직 두 학기 남았어.”

휴학해.”

더 못 해.”

그래?”

그래.”

그럼.”

영준은 입술을 내밀고 잠시 고민을 하더니 싱긋 웃었다.

여기에서 일해.”

?”

앞으로도.”

.”

내가 죽어도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줄게.”

미친.”

은수는 침을 삼켰다.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은수는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좋아.”

그럼.”

영준은 동선의 미끈한 배를 문질렀다.

몸매 역시 최고야.”

죽여주지?”

? 뭘 해?”

영준은 부러 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동선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작 이렇게 지낼 걸.”

그렇게 하지 그랬어?”

그럴 걸.”

왜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걸까? 왜 그렇게 망설이기만 했던 걸까? 왜 모든 걸 잃게 된 순간에서야 이런 걸까?

정말 싫다.”

그러네.”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동선은 살짝 몸을 모로 누워서 그런 그의 눈을 응시했다.

일은 어때?”

좋아.”

그래?”

.”

동선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안 될 거라고 했던 시간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기분이었다.

그 동안 낮밤이 바뀌는 일이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저녁에 쉬니까 그 동안 정말 힘들었구나 싶어. 오히려 너를 다시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지금 이 상황.”

다행이네.”

영준의 대답에 동선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자신의 배를 만지는 영준의 손을 잡았다.

뭐야? 너무 건조해.”

?”

너무나도 건조하잖아.”

그런가?”

그래. 지금.”

동선은 영준을 꼭 안았다. 많이 마른 상태였다. 처음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 순간과 다른 모습에 그는 침을 삼켰다.

고마워.”

영준은 동선의 팔을 문질렀다.

머가?”

동선은 부러 툴툴거리며 물었다.

나도 너와 같은 상황이었으면 같은 것을 선택을 했을 거야. 마지막까지라도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니까.”

고마워.”

동선은 더욱 꼭 영준을 안았다. 영준은 잡고 있는 손에 깍지를 끼고 싱긋 웃었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편안했다.

편안해.”

.”

영준은 동선의 몸을 더욱 파고 들었다. 추위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동선은 그런 그의 어깨를 가만히 문질렀다.

나는 갈게.”

가지 마.”

.”

그래도.”

영준은 가볍게 동선의 허리를 안았다. 동선은 영준의 옆구리를 가볍게 문지르고 이마에 입을 맞춘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서 돈 벌어야지.”

내가 더 많이 줄게.”

미친.”

?”

됐거든.”

영준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동준에게 손을 흔들었다. 동준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일어서고 욕실에 가서 물을 틀고 나서야 그는 예처럼 다시 몸을 웅크리고 신음을 삼켰다. 온 몸에 고통이 퍼져나갔다.

 

빠르게 안 좋아지고 있군요.”

그런가요?”

이런 말을 듣고도 별다른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냥 그런 일이 있는 거구나. 이런 정도의 느낌이었다.

얼마나 남은 거죠?”

지금 여기에서 쓰러질 수도 있어요.”

그렇군요.”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와 다르게 영준은 덤덤했다.

지금이라도 호스피스 병동에 가야 합니다.”

왜요?”

?”

그곳에 가면 통증이 사라집니까?”

그런 건 아니죠.”

의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물끄러미 영준을 응시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집에서 뭐든 다 해줄 수 있는 상황인 거 아닙니까? 이제 회장님도 아시고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저에 대해서 아는 것을 즐긴다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 가게 된다면 모두 다 알게 되겠죠. 기사가 될 거고. 그건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동물원의 원숭이는 아니에요.”

영준의 대답에 의사는 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영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요즘 들어서 시야가 좁아진 느낌이에요.”

아마 뇌에도 전이가 시작된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너무나도 이상하게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지금 그대로 가다가는 앞이 보이지 않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도 공포스러운 거였다. 다른 것. 걷지 못하는 것 같은 것이 차라리 나을 거였다.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힘든 일이었고 너무나도 많은 것에 갇혀 있는 기분일 거였다.

그 전에 죽으면 좋겠군요.”

저기.”

물론 시각장애인을 비하하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영준은 이렇게 말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는 가보죠.”

약은 처방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저 이걸로도 되는 거였다. 적어도 지금 당장 죽지는 않은 거니까. 그리고 시야가 좁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이제 조금씩 더 많은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다시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