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장
“싫습니다.”
“왜?”
“싫어요.”
본사라니.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 서게 될 거였다.
“저 죽어요.”
“그게 뭐가 어떻다는 거냐?”
서혁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너는 내 아들이다.”
“아니라는 게 아니잖아요.”
공연히 문제가 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그렇게 나서게 된다면 영우 역시 나서게 될 거였다.
“저 정말로 얼마 안 남았어요. 이미 아버지께서도 아시는 거 아닙니까? 저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있어요.”
“아니.”
“사실이에요.”
여준의 대답에 서혁의 얼굴이 구겨졌다.
“내가 비록 지금 다른 여자랑 살기는 하지만 내가 가장 먼저 아낀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네 엄마다.”
“그래서요?”
영준은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도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면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게 답이 되나요?”
“망할 녀석.”
“그래도 달라지지 않아요.”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죽어서도 다른 이들의 시선에 살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제가 좋아할 거라고 믿으세요?”
“내 아들이니까.”
“네?”
“너도 나를 닮았으니. 욕심이 있을 거다.”
“욕심.”
영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초에 이런 것과 자신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은 서혁과 하나도 닮지 않았다. 닮을 수가 없는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욕심이라면 이런 것보다는 살고자 하는 쪽에 둘 거였다.
“그럼 저는 가겠습니다.”
“후회할 거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 보다는 적을 겁니다.”
“뭐라고?”
“마지막까지도 저와 나눈 대화가 고작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아시게 되면. 분명히 후회하실 겁니다.”
영준의 말에 서혁의 인상이 구겨졌다. 영준은 그런 그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서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자꾸 오는 거야?”
“그러게.”
영우의 긴장된 물음에 영준은 씩 웃었다.
“마음에 안 드는군.”
“안 들어?”
“당연한 거 아니야?”
“그래?”
영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더 해야 하는 건가?”
영준의 간단한 대답에 영우는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 영준은 씩 웃으면서 목을 이리저리 풀었다.
“네가 자꾸 그러면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일도 하게 돼. 자꾸만 네가 나를 자극하고 있으니까.”
“그러는 너야 말로 나를 너무 자극하는 거 아닌가? 내가 너를 그냥 두고 보고 있는 거. 이거 고맙게 여겨.”
“왜?”
“뭐?”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영준은 이를 드러내고 서늘하게 웃었다. 안 그래도 서늘한 표정이 살이 빠져서 더욱 도드라지게 보였다.
“나는 네 형이야.”
“뭐?”
“나는 너보다 많이 갖고 있어.”
영준은 여유롭게 웃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 할 거야.”
“그게 무슨?”
“기다려.”
영준은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영우는 돌아선 그를 보며 바닥을 한 번 세게 굴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영우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싫습니다.”
“왜요?”
“저는 카페 매니저입니다.”
“그래요?”
기민의 대답에 영준은 살짝 입술을 내밀면서 엷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기민은 고집이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필요한 사람은 기민 씨야.”
“그래서 안 갑니다.”
“뭘 주면 되는 거죠?”
“네?”
기민은 인상을 구겼다. 영준과 영우는 서로가 닮았다는 것을 모르는 거 같지만 그가 보기에는 꽤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러셔도 안 합니다.”
“아마 카페를 접을 거 같아서 그래요.”
“네?”
영준은 싱긋 웃었다. 요 얼마 간의 시간 동안 기민은 꽤나 카페에 정을 붙이고 열심히 일을 하는 모양새였다.
“이게 기민 씨를 움직이는 거군.”
“아니.”
“가게를 살리려는 겁니다.”
기민은 꽤나 진지하게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해야 하는 일이에요.”
기민은 침을 삼키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결국 영우를 도발하고 영준을 위한 일을 og야 하는 거였다.
“잠시 시간을 주실 수 이습니까?‘
“오케이.”
영준의 미소에 기민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잘 나가네.”
“내가?”
은수의 말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본사도 가는 거고.”
“그건 좀 다른 거기는 하지만.”
“어?”
은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생각이야?”
“말 그대로.”
영준은 싱긋 웃으며 장난스럽게 목을 이리저리 풀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지금 하고 있는 일. 이거 제대로 할 수 있는 거 하려고. 그게 내 전부야.”
“그래도 다행이네.”
“뭐가?”
“이 카페 이제 손을 떼는 거 아니야?”
“아.”
순간 영준의 얼굴이 피어오른 미소에 은수의 얼굴이 굳었다. 은수는 단호히 고개를 흔들고 검지를 들었다.
“싫어.”
“왜?”
“나는 내가 다니는 지금 학교가 마음에 들어. 너에게 다 끌려가면서. 나 그런 거 딱 질색이야.”
“너무하네.”
“너무하긴.”
은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영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부탁 좀 할게.”
“아니.”
“너 밖에 없어.”
은수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영준을 노려봤다. 영준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목을 이리저리 풀었다.
“다른 일이라뇨?”
“어차피 오래 있었잖아.”
“그래도 이건.”
동선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제가 왜 그래야 하는 거죠?”
“어?”
“이거 차별인 거 같은데요.”
“차별은 무슨.”
부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난처한 기색이 묻어나는 것이 동선이 가야만 하는 모양새였다.
“저는 싫습니다.”
“제발 좀 가.”
옆에서 역장까지 끼어들자 동선은 미간을 찌푸렸다. 부장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역장까지도 이러니 당황스러웠다.
“제가 일을 못 하는 것도 아닌데 지금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다른 곳으로 가라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심지어 지금은 정기적인 인사이동 시즌도 아니니. 제가 가야 할 이유는 더욱 없는 것 같은데요.”
“누가 그만 두라는 것도 아니잖아.”
역장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냥 다른 곳에 가서 일을 하라는 거예요. 우리는 주간 근무만 하는 사람은 한서울 씨만 있으면 되니까.”
동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안 가면요?”
“그럼 다른 것을 생각을 해야 하는 거겠지.”
동선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너무나도 답답한 순간이었다. 자신의 잘못과 상관없이 자꾸만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제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이건 아닌 거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지금 불편하게 생각을 하는 거 몰라? 그쪽의 그런 취향 때문 말이야?”
“전에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부장님이 이성애자라고 해서 모든 여성들이 다 좋아하지 않는 거랑 마찬가지에요. 지금까지 솔로인 것도 그것과 크게 차이는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말이죠. 남성이라고 해서 무조건 부장님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을 하시는 그거. 되게 우스운 일인 거 같은데요.”
그때 갑자기 서울이 웃음을 터뜨리자 모두 그리로 시선을 돌렸다. 부장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한서울 씨 지금 할 말 있습니까?”
“제가 본사로 가고 싶다고 그렇게 말씀을 드릴 때는 아무도 들은 척도 안 하다가 지금 이러는 게 이상해서요.”
“이건 다르지.”
“뭐가 다른 거죠?”
서울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리고 백동선 시가 가기 싫다고 하는데 다들 이러시는 것도 이상하게 생각이 되고요. 안 그래요?”
“뭐가 그래?”
서울은 서류를 탕탕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백동선 씨보다 제가 먼저 신청했어요. 백 대리님이 본사에 가는 거면 저도 가야 한다고요.”
“이건 달라.”
“뭐가 다른 거죠?”
역장을 보며 서울은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혀로 입술을 축이더니 이내 싱긋 웃었다.
“분명히 방금 역장님께서는 이게 차별이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만일 이런 식으로 백동선 대리만 가면. 이거 무조건 차별이에요. 그리고 저는 이걸 분명히 따질 거고요.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죠?”
“호모를 무슨.”
“아니요.”
부장의 말에 서울은 검지를 들었다.
“여성차별이요.”
“뭐?”
“제가 여성이라서 본사에 보내주지 않는 거라고. 저는 그렇게 주장을 할 거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요.”
서울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버버버 아무 말도 못 하는 역장과 부장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럼 저랑 백 대리님은 이만.”
서울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 동선과 나란히 사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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