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장
“뭐 마실래?”
“여기에서?”
동선의 장난기가 섞인 대답에 영준은 미간을 모았다.
“뭐하자는 거야?”
“그냥? 장난?”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김영준.”
“뭐라도 좋아.”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동선의 얼굴을 보며 영준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기민이 이쪽을 보자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저쪽은 아는 거지?”
“응.”
“젠장.”
동선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래도 다른 이들에게 성 정체성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영준 덕에 다 드러나는 모양새였다.
“마음에 안 드는군.”
“왜?”
“나는 남으니까.”
“그러네.”
동선은 다른 말을 더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살짝 헛기침을 하고 넥타이를 조금 푼 후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어?”
“아. 그리고 좀 안아줄래? 나 힘들었어. 따듯하게.”
“뭐.”
영준은 씩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동선을 꼭 안았다. 두 사람이 안은 모습을 보며 기민은 고개를 돌렸다.
“저기 질투야?”
“그럴 지도?”
“그럼 안 되겠네.”
“어?”
“내 애인.”
동선은 가볍게 영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영준은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전혀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멀 하시려는 겁니까?”
“건방진.”
영우의 물음에 서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나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가르치기라도 하려는 거야? 지금 나를 네 아버지로 안 보는 거냐?”
“지금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럼 뭐냐?”
서혁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우는 그에게 있어서 그다지 좋은 아들이 아니었다. 모든 걸 다 가져간 녀석이었다.
“내가 그 동안 너에게 해준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알고 있는 거냐? 나는 너를 위해서 모든 걸 했어.”
“그건 제가 이룬 겁니다.”
“네가?”
서혁은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지도 않군.”
“아버지.”
“네가 한 건 없다.”
서혁은 단호히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모자란 놈.”
“제가요?”
“그래.”
“너무 하시는군요.”
“뭐?”
서혁은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가져간 녀석이 이렇게도 약한 소리를 하고.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게 결국 이런 문제를 만든 거였다.
“너는 지금 뭘 하려는 거냐?”
“그게 무슨?”
“하고 싶은 거라도 있는 거냐?”
“당연하죠.”
“미련한 놈. 너는 없다.”
서혁의 지적에 영우는 인상을 구겼다. 단 한 번도 자신을 믿지 않았던 이는 여전히 자신을 믿지 않았다.
“왜 그러시는 거죠?”
“네가 하려는 건 틀린 거다.”
“뭐라고요?”
“그만 두거라.”
“아뇨.”
영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말을 듣고서 포기할 수는 없는 거였다.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만 하는 거였다.
“아버지꼐서 그러신다면 더 할 겁니다.”
“네가?”
서혁은 코웃음을 치고는 영우를 응시했다.
“기대가 되는군.”
“기대하세요.”
영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인사도 하지 않고 멀어졌다. 서혁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들어올 거면 제대로 된 직급을 가져라.”
“싫습니다.”
서혁의 제안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왜요?”
“망할 녀석.”
“이제는 익숙하시네요.”
“그래.”
서혁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물끄러미 영준을 응시했다. 이전보다 살이 빠진 그를 보는 것이 그렇게 편한 기분은 아니었다.
“상태가 더 안 좋은 모양이다.”
“당연하죠.”
영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자신의 몸에 느껴지는 고통은 익숙한 거였다.
“저는 죽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런 말은 그만.”
서혁은 소파 팔걸이를 세게 쥐었다가 놓았다.
“듣기 싫다.”
“아버지.”
“나에게 그건 고통이야.”
영준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불편하다고 하면 굳이 더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거절이라는 거냐?”
“네.”
“영우 탓이냐?”
“뭐.”
아니라고 하면 거짓일 거였다. 굳이 영우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사라질 사람이었다, 지금 자신이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저 조금은 짓궂은 장난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할아버지가 저만 좋아해서 그 녀석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제가 더 그러는 건 아니죠.”
“더 그래야 한다.”
서혁의 말에 영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씩 웃었다.
“그래도 아끼시네요.”
“그 녀석도 아들이니까.”
“저보다 더요.”
영준의 말에 서혁은 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영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가볍게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래도 돌아가지 않아요.”
“왜?”
“직급은 안 어울리니까요.”
영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눈썹을 찡긋했다.
“왜 안 가시려는 겁니까?”
“네?”
이런 건 묻지 않는 기민의 물음에 영준은 가볍게 어꺠를 으쓱했다. 이건 자신과 크게 관련은 없는 일이었다.
“가야 하는 건가요?”
“하지만.”
“나에겐 의미가 없어요.”
진심이었다. 어차피 그 lf을 한다고 해서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과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내가 그 일을 하다가 그만 두는 날이 올 테니까.”
“그렇지만.”
“그만.”
영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기민이 무슨 생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개입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일 하지도 못해요.”
“그런 거라면 제가 사장님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도요.”
영준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지금 기민의 말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얻으면 되는 거였지만 그런 것은 싫었다.
“그쪽도 좋은 거 아닌가?”
“네?”
“그래도 결국 영우를 위해서 일하는 거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기민의 대답에 영준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래요?”
“정말 아닙니다.”
“그렇다면 믿죠.”
기민은 인상을 구겼다.
“이미 저는 사장님 사람입니다.”
“고마워요. 정말. 그리고 나는 내가 기민 씨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걸 모두 다 하려고. 내가 사라지면 많은 걸 얻을 겁니다.”
“네?”
기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준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키다리 아저씨가 된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 안 해?”
“응.”
“아쉽네.”
“왜?”
동선은 씩 웃으면서 영준을 보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해야 해?”
“당연하지.”
“왜?”
“연인이니까.”
“연인이라고 다 하는 건 아니야.”
동선의 대답에 영준은 입을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같이 산다는 것은 섹스가 전제가 되어 있는 거였다.
“왜 내가 아파서?”
“그냥 너무 아껴서.”
“뭐래?”
영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동선도 그런 그를 따라 웃으면서 가만히 품에 안았다. 영준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너랑 아주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는 너를 망가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해.”
“그러다 닳겠다.”
“그래도 좋아.”
영준은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나에게 주용하지 않아.”
“왜?”
동선이 피하려고 하자 영준은 그의 허리를 안고 아랫도리를 손에 쥐었다. 잔뜩 성이 난 물건에 영준은 음흉하게 웃었다.
“이러면서.”
“그래도 아니야.”
“내가 해줄게.”
영준은 조심스럽게 동선의 몸에 입술을 가져갔다. 그의 입술이 닿는 곳마다 꽃이 피어나고 동선은 가늘게 신음을 흘렸다.
“김영준.”
“기다려.”
영준은 천천히 동선을 삼켰다. 그의 입 안에서 동선은 점점 더 거칠게 움직이고 그의 숨이 가빠졌다.
“젠장.”
동선은 낮게 욕설을 내뱉고 영준을 밀어냈다. 그리고 그의 위로 올라가서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내일 쓰러지려고.”
“그게 날 살아있게 만들어.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
동선은 가만히 영준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그의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거친 호흡이 방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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