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이제 온 거야? 어? 근데 빈손인데?”
“뭐?”
서울은 미간을 모았다.
“무슨 말이야?”
“어머니 댁 다녀온다며?”
“아니.”
서울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말을 이 정도로만 들을 수가 있는 걸까?
“헤어지자고.”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헤어져.”
“아니.”
철수는 그제야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 조금이나마 지금 서울이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게 지금 무슨 말인 건데?”
“우리 두 사람의 내일이 안 보여.”
“지금 이러는 건 아니지. 나중에 이야기를 하자. 우리 두 사람. 지금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없잖아.”
“아니. 있어.”
서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자꾸만 끌려가는 것. 결국 자신이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이건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너무 답답해. 이건 우리 두 사람의 시간을 좀 먹는 일이야.”
서울은 단호했다. 말을 꺼내기 전에는 다른 망설임 같은 것이 가득이었지만 한 번 꺼내고 나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오히려 침착해졌다.
“숨이 막혀.”
“한서울.”
“그만 두는 게 옳아.”
서울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주먹을 세게 쥐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이제 끝을 내야 옳았다.
“너는 안 지쳐?”
“왜 지쳐?”
철수는 서울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우리 두 사람 잘 어울려.”
“그게 10년이야.”
“그러니까 잘 맞으니까.”
“잘 맞아? 우리가?”
서울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우리 안 맞아.”
“아니.”
“그만 둬.”
“서울아.”
“짐은 내가 가져갈게. 보증금은 네 이름으로 한 거니까. 나에게 절반을 돌려주면 되는 거 같아.”
“뭐라고?”
서울의 말에 철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지금 돈도 없어.”
“그건 준비가 되면 줘.”
“그래도 없어.”
서울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다른 말을 더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하나 없었다. 지금 두 사람 사이를 완벽하게. 그 어느 순간보다 더 명확하게 정리를 하는 게 옳은 거였다.
“어디 가려는 건데?”
“집.”
“아니.”
서울이 나가려고 하자 철수가 막아섰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어디에 있어?”
“뭐가?”
“우리 대화는 끝을 os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할 말이 없어.”
“결혼을 안 해서 그래?”
“뭐?”
“지금 내 형편 너도 알잫아.”
서울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한숨을 토해냈다. 결국 철수가 내린 결론. 그 답은 고작 이 정도인 거였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럼?”
“그냥 앞으로 우리가 안 보여.”
“그게 무슨 말이야?”
“몰라?”
“몰라!”
이 모든 것. 결국 두 사람. 이 모든 시간들. 이것들을 모두 다 잃어버릴 수밖에 없지만 이건 당연한 거였다.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아무런 문제도 없는 거였고 이렇게 헤어지는 게 답이었다.
“그냥 다시 돌아가.”
“뭐?”
해나의 말에 서울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솔직히 너 그거 말고 뭐가 있어?”
“뭐라니?”
“답.”
“답이라고?”
서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해나가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연애를 하는데 그런 게 어디에 있어?”
“그래도 우리 이제 안 어려.”
“그럼 혼자 살지.”
“미쳤어.”
해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가볍게 서울의 팔을 때렸다. 유정은 그런 두 사람을 그저 바라볼 따름이었다.
“어떻게 평생 그러려고?”
“너는 그렇게 시달리고도 남자를 만나라는 소리를 하냐? 해나 너도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는데.”
“다른 놈이 더 나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해나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면서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서울은 어이가 없어서 머리를 긁적였다.
“해나 너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10년 만난 거면 너 이혼이나 다름 없는 거야.”
“이혼?”
서울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구가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냥 연애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서울은 단호히 대답했다.
“그런 거 아니야.”
“네가 연애가 얼마나 힘든 건지 몰라서 그러는 거네. 지금 다른 사람 보면 너는 후회를 할 걸? 철수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야.”
“나에게 아니야.”
연애라는 것을 많이 해야지만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 사람만 만나더라도 그런 것은 알 수 있는 거였다.
“유정이 너는 누구 편이야?”
“네가 걱정이라서 그런 거지. 사실 해나 말은 맞으니까.”
“걱정?”
서울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인 기분이었다.
“나 담배나 피우고 올게.”
“끊으라니까.”
“누가 너 같은 여자랑 사귀니?”
서울은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친구라는 것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서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밖으로 나왔다.
“미친년들.”
그리고 담배를 찾다가 놀랐다. 웬 남자가 자리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도정이었다. 자신의 욕이 들린 거 같아서 서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괜히 분란 같은 것은 싫었다. 게다가 남자라니. 아무리 순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도 다를 거였다. 그때 라이터가 불쑥 들어왔다.
“괜찮습니다.”
사양하는데 손이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필요하실 겁니다.”
남자는 그에게 라이터를 건네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서울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뭐야? 하여간. 한서울. 잘 하자. 잘 해.”
서울은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려고 했는데 켜지지 않았다. 그제야 가스가 얼마 없는 게 보였다. 신기한 사람이었다. 불을 붙이고 멀리 연기를 뿜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그나마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폐까지 가득 연기를 채우고 들어가는데 방금 남자가 자리에 있었다.
“누구야?”
“아. 여기 이세인. 내 사촌.”
“어?”
서울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굳이 방금 일에 대해서 언급할 이유는 없을 거였다.
“나는 갈게.”
“왜?”
“피곤해서.”
“제가 택시 잡아드릴게요.”
세인의 말에 서울은 잠시 멈칫했다. 굳이 그럴 것은 없는데. 그렇지만 무조건 밀어낼 것도 아니었다.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해나의 사촌이라고 하니까.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응.”
철수는 친구의 대답에 입을 내밀었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들어.”
“그게 뭐야?”
“그러니까.”
철수는 술을 들이켰다. 친구는 그런 그를 보며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저랑 정말 가깝네요.”
“그러게요.”
왜 그 동안 한 동네에 살면서도 보지 못한 건지.
“혹시 북고 나왔어요?”
“아 이사는 최근에.”
“아 그럼 뭐.”
괜히 머쓱한 기분이었다. 그럴 것도 없는데 혼자 신이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해버린 기분이었다.
“죄송해요.”
“왜 사과를 합니까?”
웃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신기했다. 뭔가 진지하기만 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웃으니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커피라도 드실래요?”
“네?”
“아니 그러니까. 막 그러는 게 아니라.”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그냥 커피 한 잔 마시자고 하고서 이렇게 변명을 하는 것도 우스웠다.
“아니 그러니까.”
“압니다.”
세인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제가 여성 분 집에 가는 것은 아무리 해나의 친구라고 해도 불편한 것은 있으니까요. 제 집에 가시죠.”
“네?”
“커피 마시러.”
세인의 말에 서울은 잠시 입을 내밀고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다소 낯설기는 하지만 오늘은 새로운 날이었다. 이런 일에 대해서 무조건 피하기만 하는 것은 싫었다.
“그런데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요?”
“그러게요.”
서울의 물음에 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서울은 어색하게 웃었다.
“해나도 나름 생각은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요?”
“네. 근처 사는 친구가 있다고.”
“아.”
그래서 오늘 자리라 부른 모양이었다.
“아까는.”
“일단 그건 조금 있다가 말하죠.”
“그러죠.”
서울은 싱긋 웃었다.
“그럼 되는 거네요.”
“그렇죠.”
서울은 심호흡을 했다. 이상하게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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