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보편적 연애 [완]

[로맨스 소설] 보편적 연애 2018 [5장]

권정선재 2018. 11. 9. 23:49

5

그래서 본사는 안 갑니까?”

.”

동선의 물음에 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못 가네요.”

.”

그런 거 아니에요.”

동선의 얼굴이 굳자 서울은 입을 내밀었다. 성격이 좋은 동료이기는 한데 다른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아서 안타까웠다.

그러니까.”

고마워요.”

동선이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에 서울은 먼저 선수를 쳤다. 동선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내가 왜 만나?”

그럼?”

그럼이라니?”

나물을 무치던 춘자의 말에 갑자기 짜증이 섞이자 서울은 미간을 구겼다. 도대체 자신에게 왜 이러는 건지.

걔 다른 여자 있어.”

그래서?”

?”

헤어진다고?”

당연하지.”

서울의 말이 춘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서른이 된 딸의 결별이 이상하다는 건가?

아니 엄마는 엄마 딸의 남자친구가 지금 바람을 피운 건데. 이 상황에서도 거기에 들어가라는 말이 나와요?”

네가 그렇게 한 거지. 내가 그 동안 살아 보니까. 여자만 제대로 하면 아무 문제가 없더라. 그 모든 문제가 말이야. 다 여자가 제대로 하지를 않아서. 여자가 제대로 굴지 않아서 그런 거야.”

엄마!”

춘자의 말에 서울은 소리를 질렀다. 춘자는 입술을 내밀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나가요.”

이 시간에 어디를?”

모르지.”

서울을 보며 춘자가 혀를 차며 뭐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서울은 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할 일도 없이 도서관 앞에 앉아있는데 누가 알은 채를 해서 봤더니 세인이었다. 세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에 왜?”

. .”

가실 곳이 없어요?”

?”

무슨 유기 동물이라도 줍는 건가.

그러니까.”

우리 집에 갈래요?”

?”

추워요.”

.”

이제 명확한 가을.

그래요.”

모를 일이었다.

 

책 읽어도 돼요.”

아니요.”

책장 앞에 서있는 자신을 보고 건넨 말이었다.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책이라면 거리가 있었다.

책 안 읽어요.”

.”

?”

아닙니다.”

세인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혹시 무슨 일 하는지 여쭤도 될까요? 저는 해나에게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지하철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주간에만 일을 하는. 그러니까 그 동그란 곳에 있는. 그런 사람이 바로 저에요.”

들었습니다.”

.”

하여간 냉정한 사람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다정한 것 같아서 다가가려고 하면 묘한 느낌이었다.

드세요. 유자에요.”

아 고맙습니다.”

차를 받아들다가 멈칫했다.

뭐예요?”

?”

나는 말했는데.”

.”

세인은 혀로 입술을 축이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말하면 그쪽이 머쓱할까봐.”

?”

그쪽이라니.

저는 한서울.”

. 압니다. 저는 이세인.”

지금 갑자기 그런 걸 물은 것이 아닌데 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니. 해나의 사촌이라고 하지만 해나와는 성격도 너무나도 다른 모양새였다. 해나가 이런 답답한 사촌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세인 씨는 무슨 일을 하세요?”

글을 씁니다.”

?”

소설.”

.”

순간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책 앞에서 도망이라도 치는 사람처럼 뒤로 물러난 것이 우서웠다.

그러니까.”

아닙니다.”

세인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누구라도 그렇다는 말이 더욱 이상한 거였다. 오히려 그렇게 행동을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죄송해요.”

왜 사과를 해요?”

글을 쓰는지 몰랐어요.”

그러니까요.”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한서울 씨는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인지도 몰랐는데요. 그리고 설사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책을 싫어한다는 것에 대해서 미안할 것은 하나 없습니다. 저도 지하철을 싫어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건 한서울 씨를 싫어한다는 이야기는 아닌 거잖아요.”

그래도.”

하여간 말은 더럽게 잘 하는 인간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 해나와 또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기에 와도 돼요.”

?”

.”

아니.”

이건 또 무슨 말이지.

그러니까.”

해나 친구에게 그런 거 안 해요.”

?”

갈 곳도 없어 보이고.”

.”

얼굴이 붉어졌다. 이 나이를 먹고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게 사실이라는 게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개자식. 아니 애인이랑 헤어졌는데 갈 곳이 없어서요. 동거를 하고 있어서. 그런데 엄마도 이 나이를 먹고 뭐 어디에 가느냐고. 그냥 대충 다시 들어가라고 하고. 그게 말이 안 되는 거라서.”

말도 안 되네요.”

그렇죠!”

갑자기 목소리가 커졌단 사실에 서울은 입을 막았다.

미안해요.”

사과는.”

세인은 씩 웃었다.

그러지 마요.”

그런데 왜?”

.”

세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혼자 지내는 곳이니까요. 그리고 저 방은 비는 곳이고요. 저는 작업만 하고 거실에도 잘 없어요.”

. 그렇구나.”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럼 글을 써서 돈을 잘 버는 모양이에요.”

아니요.”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에요. 그저 책을 한 권만 냈고. 그것도 이미 절판이 되어버렸고요. 지금은 그냥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는데. 이것도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에요. 그냥 쓰는 거죠.”

그럼 이 집은?”

해나 거예요.”

?”

해나의 집이라니.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러니까.”

해나가 나름 회사를 오래 다녔잖아요. 그래서 그 돈으로 뭐 투자처럼 사놓은 것인데. 제가 그냥 전세로 들어와서 살게 되었어요. 약간 비공식적으로? 혹시 몰라서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하는데 애초에 빌라라는 것 자체가 돈이 많이 오르는 쪽은 아니니까요. 그냥 마음의 여유? 같은 것인 모양이더라고요.”

여유.”

해나가 꽤나 짠순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알뜰하게 뭐든 다 잘 할 줄은 몰랐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요.”

그래요?”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살짝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아. 하는 소리를 내고 씩 웃었다.

그러니 여기에 있어도 되는 겁니다. 어차피 저는 글만 쓰는 사람이니까요. 주로 집에만 있어요.”

그렇군요.”

그 순간에 테이블의 책들이 보였다.

이건.”

하루에 읽는 책요.”

?”

서울의 눈이 동그래졌다. 다섯 권.

이걸 하루에요?”

. 어차피 하는 일도 없고. 공부를 하는 것처럼? 그냥 그 책들을 하루에 다 읽어요. 그게 나의 공부랄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자신은 일 년에 다섯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생활인 건데 자신과 너무 달랐다.

대단해요.”

대단은요.”

서울의 칭찬에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울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끔 피난 좀 올게요.”

그것도 좋아요.”

세인의 미소에 서울도 마음이 편해졌다.

유자 맛있어요.”

좀 줄까요?”

?”

제가 담근 거라.”

아니.”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세인이 일어나려고 하자 서울은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 성정 자체가 좋은 사람이라 이런 모양이었다.

달란 건 아니었어요.”

. 그렇군요.”

세인은 다시 자리를 편하게 했다.

아무튼 언제든 좋아요.”

그거 좋네요.”

그래도 어딘가에 갈 곳이 있다는 것. 정말 별 것이 아닌 거 같지만 마음에 여유가 되는 거였다. 그리고 해나와도 아는 사람이라고 하니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 거 같고. 마음도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