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그렇다고 여기를 와?”
“그럼?”
춘자의 물음에 서울은 입을 내밀었다.
“걔한테 잘 해야지.”
“무슨.”
“너 이제 서른이야.”
“그게 뭐?”
“안 팔려.”
“엄마!”
춘자의 느릿느릿하면서도 독설이 다그한 말에 서울은 인상을 구겼다. 시대가 지금 어느 상황인데 딸을 이런 식으로 대접하다니.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엄마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왜?”
“뭘 팔리고 그래? 내가 물건이야?”
“물건이지. 그럼.”
춘자의 여유로운 대답에 서울은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는 건지.
“딸. 걔 아니면 답 없어.”
“뭐래?”
“엄마는 무슨.”
그때 방에서 나오던 부산이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면서 나섰다. 서울은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옷 좀 입어.”
“뭐래? 가족끼리.”
“가족이래도!”
서울이 뭐라고 하건 말건 부산은 속옷 차림으로 앉아서 배를 긁었다. 서울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 이제 애 아니야.”
“그럴 때 보면 엄마랑 같아.”
“뭐?”
갑작스러운 부산의 말에 서울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춘자와 같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아무튼 엄마 그럴 거 없어.”
“뭐래?”
부산까지 거들어도 춘자는 단호했다.
“그래도 이거 맛있네. 만두.”
“손으로 먹고.”
“뭐.”
서울은 춘자가 자신을 보면서 혀를 차는 것을 보며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는 것인지. 자신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는 정말 아니었다.
“아무튼 들어가.”
“싫어.”
서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속도 없이!”
그때 갑자기 춘자가 어깨를 때리자 서울은 비명을 질렀다. 부산은 재빨리 둘을 말리며 미간을 모았다.
“엄마 왜 그래요?”
“너도 네 누나 말려. 서른이나 된 년이. 지금 당장 시집을 안 가면 누가 자기를 데리갈 줄 알고.”
“아 뭐래.”
서울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정말 헤어질 거야?”
“응.”
부산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누나 10년이야.”
“그런데?”
“그런데가 아니야.”
부산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서울의 눈을 보고 엷은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결국 누나가 정할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아무리 누나가 정할 일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야.”
“뭐가?”
“그냥 싸움 아니야?”
“아니.”
서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냥 싸움이 아니야.”
“그럼?”
“앞이 안 보여.”
“앞.”
부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서울에게 술을 따랐다. 서울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싱긋 웃었다.
“그러게. 앞이라는 게 보여야지.”
“너는?”
“어?”
“안 힘들어?”
“힘들지.”
부산은 씩 웃으면서 혀를 살짝 내밀었다.
“누나는 답이 보이지 않는 글쟁이라는 거. 이거 하나도 안 힘들어 보이는 건 아니지? 이거 힘들어.”
“그러니까 너도 일을 구해.”
“어?”
“다른 일을 하면서도 글은 쓸 수 있잖아.”
“아니.”
서울의 말에 부산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서울이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
“실망이다.”
“어?”
“누나는 나를 응원할 줄 알았는데.”
“하지. 응원.”
“그런데?”
“그러니까.”
서울이 알맞은 말을 찾지 못하자 부산은 웃음을 터뜨렸다. 부산은 가볍게 테이블을 문지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
“어?”
“누나는 어설픈 재능의 저주라는 말 알아?”
“그게 뭔데?”
“나.”
부산은 자신을 가리키며 킬킬거렸다.
“아무 것도 없어. 아무 능력도 없는데. 다른 사람에 비해서 아주 조금 그 능력. 그러니까 글을 쓰는 재주가 정말 요 만큼 있어.”
부산은 엄지와 검지를 떨어질 듯 닿을 듯 벌리며 웃었다.
“그런데 이 재주를 가지고는 다른 사람들을 이길 수가 없어. 그런데 또 포기도 할 수가 없어. 이게 당연한 거니까.”
“그거야.”
“알아.”
서울의 말에 부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더 노력을 하면 되는 거지만 이제 지치는 거였다.
“어려워.”
“그럼 취업을 해.”
“그게 쉬운 줄 알아?”
“왜?”
“나 경력도 없어.”
“그런데?”
‘경력도 없고 나이만 있는 남자. 사회에서는 그다지 쳐주지 않아. 누나도 알면서 그런 말을 해.“
“그거야.”
아니라는 말을 해야 했지만 아니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건 부산의 말이 옳았으니까. 사실이었으니까.
“됐어.”
부산은 손뼉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이고 물끄러미 서울의 눈을 보며 웃었다.
“누나가 하고 싶은 거 해.”
“어?”
“누나는 내 편이 아니지만 나는 누나 편이야. 나는 누나가 바라는 것 모두 다 하면서 살기 바라.”
“고마워.”
서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부산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미안해.”
“왜?”
“네 편이 되어주지 못해서.”
“아니.”
부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나는 다르지.”
“하지만.”
“그런데 왜 헤어지려는 거야?”
“어?”
“그 동안도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았어.”
부산은 진지한 눈을 하고 서울을 응시했다.
“하지만 누나 단 한 번도 그만 둘 생각을 하지 않았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했어. 누나의 결정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왜 헤어지려는 건데?”
“그러게.”
서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안 아무런 문제도 도드라지지 않고 이어지던 사이였다.
“우리 두 사람이 지금 헤어질 이유가 하나도 없어. 그런데 다시 생각을 해보니까 나랑 철수랑 계속 만나야 하는 이유도 없더라고. 그런 게 없는데 두 사람이 서로 시간을 낭비하는 거 아니잖아.”
“낭비.”
부산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서울의 10년의 연애를 모두 봤다. 군바라지 하는 모습까지도.
“아깝기는 하다.”
“그렇지?”
“그래도 잘 한 거야.”
“어?”
“둘 안 어울려.”
“뭐래?”
서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오랜 시간을 두고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라니.
“그게 지금 할 말이야?”
“왜?”
“그럼 진작 말을 했어야지.”
“아.”
부산이 뒤늦게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자 서울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여간 한부산.”
“나는 내 이름도 싫어.”
“어?”
“부산이 뭐야? 부산이?”
“나는 서울이다.”
서울은 소주잔을 가볍게 흔들며 미간을 모았다.
“하여간.”
“부산보다는 서울이 낫지.”
“왜?”
“수도니까.”
“무슨.”
서울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나 부산이나 둘 다 마음에 안 드는 거지 뭐가 더 나을 수가 있을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생긴 곳을 이름으로 하는 거. 이거 아무리 그래도 조금 이상하지 않아?”
“내력 같아.”
“어?”
“엄마.”
“아.”
봄에 낳아서 춘자.
“누구 탓을 해?”
“그러니까.”
둘은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이런 순간에 이런 말들을 할 수 잇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고마워.”
“뭐가?”
“상담.”
“상담은.”
서울의 말에 부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내 생각을 한 거야.”
“그래도.”
부산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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