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보편적 연애 [완]

[로맨스 소설] 보편적 연애 2018 [4장]

권정선재 2018. 11. 8. 02:54

4

세인의 집은 그리 멀지 않았다. 늘 서울이 가는 도서관 뒤에 있었다. 우연히 만나지도 않은 게 신기했다.

들어오세요.”

실례할게요.”

세인은 불을 켰다. 방은 꽤나 깔끔했다. 그리고 흔히 남자 집에서 나는 그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우와 깨끗해요.”

. 제가 좀 그래서.”

.”

살짝 냉정한 타입. 조금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말을 해줘도 될 텐데 세인은 전혀 웃지 않고 대답했다.

앉으세요.”

. 고맙습니다.”

부모님과 사는 자신의 집과 비슷한 넓이로 보였다. 꽤나 넓은 집은 이상하게 비어 보이지도 않았다.

디카페인 드실래요?”

뭐든 괜찮아요. 그냥 커피도 좋아요. 그냥 커피를 마셔도 잘 자거든요. 저는 괜찮더라고요. 카페인이.”

세인은 곧바로 커피를 가져왔다.

일리 거라서 별로 특별한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하실 수도 있지만 한국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라인이에요.”

. 그래요?”

그래봐야 자신에게는 그다지 큰 차이도 없는데. 세인은 자신과 다르게 이걸 꼼꼼하게 따지는 모양이었다.

향이 좋아요.”

다행이군요.”

한 모금 마시기가 무섭게 몸이 따스해졌다.

이거 좋네요.”

. 생강을 조금 넣었어요.”

. 생강.”

신기했다. 맛이 깔끔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생강이라니. 그렇다고 해서 맛을 크게 헝클지도 않았다.

맛있어요.”

헤어지셨다면서요?”

.”

그새 다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아 죄송합니다.”

아니요.”

세인의 사과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비밀로 할 것도 아니었고 다 아는데 말을 안 할 것도 아니었다.

뭐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니 헤어지자고 하더라고요. 저랑 미래 같은 것이 없다고 하면서 말이에요.”

그럴 수도 있죠.”

세인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를 하는 건지 동정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특이한 사람이었다.

뭐 먹을 것 좀 드릴까요?”

뭐든 좋아요.”

기다리세요.”

세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내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조금만 눈을 감고 싶었다.

 

일어났어요?”

.”

서울은 놀라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옷을 찾는 서울을 보며 세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 따뜻한 집에 술기운이 퍼진 모양이었다.

옷은?”

말리고 있어요.”

?”

술이 과하셨나봐요.”

.”

그제야 어제 뭔가 있었던 것들. 그러니까 끊겼던 기억들이 아주 조금이나마 자신에게 돌아오는 거였다.

미친년. 술은.”

그때 문이 열리고 해나가 들어왔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토하고 난리였어.”

내가?”

그래.”

어제 정말 제정신이 아니긴 한 모양이었다. 헤어진 게 괜찮은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 쪽팔려.”

?”

왜라니?”

서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무리 해나의 사촌이라고 해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건 아니었다.

외간 남자에게.”

내 사촌이야.”

그래도.”

그 녀석은 괜찮아.”

괜찮은 남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서울은 라떼 숏 한 잔을 모두 다 비웠다. 이제야 조금 정신이 차려지는 기분이었다.

.”

?”

생각이 나서.”

?”

철수는 그에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떻게 아직도 연락이 없을 수가 있는 걸까?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웃기지도 않네.”

?”

답장이 없어서.”

그냥 싸운 거라고 생각을 하겠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서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그가 더 이상 자신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헤어지자며.”

대단하다.”

별 게 아니라고 생각을 해서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그새 다른 사람과 잠을 잔 거였다.

이렇게 바로.”

언니.”

스터디를 한다는 후배였다.

웃기지도 않는다.”

그런 게 아니에요.”

뭐가 그런 게 아닌 건데?”

그러니까.”

서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동안 철수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보면서도 그저 좋은 여자애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평소에도 스터디에서 잘 챙겨준다는 거. 그걸 고맙게 생각을 했었다.

개자식.”

욕은 아니지.”

?”

네가 헤어지자고 햇잖아.”

그러게.”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런 인간과 헤어진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내일 당장 돈 보내.”

?”

그게 네가 할 일이야.”

서울은 단호히 돌아섰다. 애초에 이런 녀석에게 마음을 준 것 자체가 우스운 거였다. 자신이 멍청했다.

 

그래서 여기에 산다고?”

.”

안 돼.”

서울의 말에 춘자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무슨.”

엄마?”

네 방 이미 창고야.”

아니.”

서울은 어이가 없어서 미간을 모았다. 아무리 그래도 아직 딸이 시집도 가지 않았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내가 와서 잘 곳은 있어야지?”

당연히 네가 걔랑 결혼을 할 줄 알았지. 철수랑 너 같이 살기까지 했는데. 아무튼 나는 몰라.”

무슨 말이 그래?”

뭐야?”

그때 외출하다가 돌아온 부산이 둘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서울은 그런 동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이제 여기에서 살려고.”

?”

철수랑 헤어졌어.”

아 그래?”

다행히 춘자와 다르게 부산은 덤덤한 모양새였다.

그런데 내 방이 없어서 엄마가 무조건 안 된다고 하더라고. 나보고 그 창고에서 자면 안 된다고 말이야.”

그럼 내가 거기에서 자지.”

?”

부산의 간단한 대답에 춘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들 그게 무슨 말이야?”

?”

왜라니?”

춘자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

?”

아들이 어떻게?”

엄마.”

엄마!”

서울과 부산이 나란히 자신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춘자는 단호했다. 서울은 어이가 없어서 미간을 찌푸렸다.

 

미안해.”

아니야.”

부산의 사과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짐을 나르는 것도 춘자가 싫어하는 거였는데 이 정도도 다행이었다.

엄마는 네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거라고 생각을 하는 모양이야. 이렇게 건장한 녀석인데 말이야.”

미안해.”

왜 네가?”

부산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나 때문에.”

네가 왜?”

누나 나 때문에 많이 잃은 거 알아.”

부산은 서울을 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누나 미안해.”

아니야. 그래도 네가 제대로 된 녀석이라서 나도 다행이야. 네가 맛이 간 녀석이면 우울했을 거야.”

뭐래?”

부산은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됐어. 얼른 나가.”

?”

엄마.”

.”

아까부터 밖이 조용했다. 아마 춘자가 드라마를 보지 않고 지금 자신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 엄마 못 말려.”

그러게.”

서울은 싱긋 웃고 가볍게 부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다시 잘 부탁해.”

알겠습니다.”

부산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나가려는 부산의 손을 서울이 잡았다. 부산이 고개를 갸웃했다.

?”

용돈.”

됐어.”

가져가.”

서울은 신사임당을 건넸다. 부산은 가볍게 윙크를 하고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