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완결/너는 없었다 [완]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53장]

권정선재 2018. 12. 14. 01:55

53

미안해.”

아니야.”

이튿날 동선의 사과에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자신의 문제인 거였다.

너를 걱정한 거야.”

알아.”

동선은 영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러니까.”

그만.”

김영준.”

그만 하자고.”

영준의 말에 동선은 침을 삼켰다.

여전히 화가 난 거잖아.”

화는 무슨.”

동선의 물음에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동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너 도대체 왜?”

나는 뭐 네가 늘 사과를 하면 무조건 받아줘야 하는 사람이야?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거기는 하지만 지금 너를 보면 이상하게 느껴져. 지금 너 너무 이상하다고.”

아니.”

동선은 다른 말을 하려고 했지만 영준이 그 손을 잡았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영준은 정이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저 내가 지금 하려는 것을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쪽은 분명히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 같고요.”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럼 된 거죠.”

영준은 더욱 밝게 웃었다.

기민 씨.”

?”

좀 도와줄래요?”

. .”

기민이 정이를 데리고 나가자 동선은 혀로 입술을 축이고 물끄러미 동선을 응시하고 고개를 저었다.

뭐 하자는 거야?”

뭐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항의라도 하는 거야?”

항의?”

지금 저 사람을 네 옆에 두면 저게 어떤 문제가 될지 모르는 거야? 저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말로 몰라? 진짜로 몰라서. 정말 저걸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어서 지금 부르는 거야?”

그럼 내가 뭘 하기 바라?”

?”

?”

동선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물끄러미 영준의 눈을 응시했다.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두 다 알 수 없어서 너무나도 답답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저 너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전부야. 그런 사람은 너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그런 사람?”

그래.”

그게 무슨 말이야?”

영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백동선. 너 지금 이상한 말을 하는 거 알아? 혹시 질투라도 하는 거야? 그 녀석이 나랑 같아서?”

아니.”

동선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질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 건 절대로 아니었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지금 여기에 온 건 줄 알아? 그리고 정말로 이쪽인지. 그런 것도 모르는 거잖아. 도대체 그런 것도 하나도 모르는데 도대체 왜 우리가 이렇게 행동을 해야 하는 건데?”

그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나에게는 중요한 사람이야. 누구 하나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 건데? 나에게는 지금 그런 사람이라도 필요하다는 거 몰라?”

내가 있잖아.”

동선의 낮은 물음에 영준은 고개를 숙였다.

그만 둬.”

김영준.”

안 그래도 힘들어.”

영준의 말에 동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냥 두고 봐요.”

지치는 게 보입니다.”

은수는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그런 상황에서 지금 더 일을 한다는 거. 결국 스스로를 죽이는 거라는 거.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백동선 씨도 이미 다 알고 같이 하기로 한 거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건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고 한다고 해도 이건 다른 거였다.

그 녀석이 하루하루 지쳐가는 것. 그리고 말라가는 것을 보는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그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죠.”

은수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동선 씨 살짝 떨어지는 건 어때요?”

?”

두 사람 너무 가까워서 그래요.”

아니요.”

아무리 그래도 떨어지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서로에게 시간이 얼마나 적게 남아있는지 알고 있었다.

제가 참아야죠.”

그게 문제에요.”

은수는 손가락을 튕기고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위해 참으니까.”

?”

그 속에 이야기들 안 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동선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서로에게 아쉬움을 말할 시간이 없었다.

오로지 두 사람만 있는 거니까. 이런 상황에서 다른 말을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더 서로를 봐야 해요.”

동선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많이 힘드십니까?”

?”

기민의 말에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지쳐보이십니다.”

그래요?”

영준은 얼굴을 만지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팔을 하나 들 힘도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다 보이는 모양이었다.

내가 조금 지나치죠?”

.”

자기가 그러는 거 보니 사실이네.”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기민이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말하는 것을 보니 다소 심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 녀석이 어떻게 할 거 같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영준은 테이블을 어루만졌다.

. 이정이 씨는?”

프락치는 아닌 거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혹시라도 동선의 말처럼 문제라도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거꾸로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할 거였다.

그런데 저에게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신다고 해도 달라질 거 하나 없다는 거. 이미 부회장님도 아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알죠.”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화가 납니다.”

?”

아니요.”

기민이 반문하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이런 말들까지 모두 다 그에게 다 전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저기.”

미안해.”

동선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영준이 먼저 사과의 말을 건넸다.

내가 실수한 거야.”

?”

동선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알아.”

영준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의 모든 아픔과 고통. 이걸 동선이 견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거였다.

네가 나로 인해서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는데. 그래도 조금은 나를 이해를 해주기 바라.”

이해.”

이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한 거였다. 누군가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희생한다는 것. 그것이 이해라고 한다면. 자신은 그런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에게 바란 적은 없는 것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책임을 지게 된 이 모든 것. 너무나도 아픈 것이었고 지치는 일이었다.

너를 사랑하는 내가 싫네.”

사랑해?”

동선의 말에 영준의 눈이 커다래졌다.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장난으로 나올 거야?”

그러게.”

동선의 물음에 영준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네.”

김영준.”

?”

사랑해.”

동선은 조심스럽게 영준에게 한 발 다가갔다.

네가 뭐라고 하건. 네가 나에게 뭘 바라건.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리고 내가 너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거. 그런 것도 전부 다 무시할 거야.”

그래.”

동선의 고백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옳은 거였다. 이미 두 사람은 서로에게 그저 있는 것으로 다행이었다.

너를 생각해.”

.”

무조건.”

그래.”

김영준. 그런데 지금 너를 보면 그게 아닌 거 같아서 이러는 거야. 네가 너를 우선으로 보고 있지 않은 거 같아서.”

아니야.”

영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저었다.

왜 자꾸 이러는 거야?”

너를 걱정해서.”

지쳐.”

아니.”

동선은 조심스럽게 영준을 안았다.

그러지 마.”

나를 위해서 그러는 건 아는데 너무 그러지 마.”

그 말의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없을 사람이니까.”

그만.”

사실이잖아.”

아니.”

절대로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너 이대로 모두 다 놓게 하지 않아.”

영준은 그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걸. 동선이 할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