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장
“아직도 그래?”
“응.”
출근을 하기가 무섭게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영준은 기민을 보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도 연락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기민 씨 미안해요.”
“아닙니다.”
영준의 사과에 기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 노크가 들렸다. 기민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십니까?”
“저기.”
영준을 보고 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는 사람은 지난 번 그 직원이었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네?”
영준과 동선은 서로를 쳐다봤다.
“안 돼.”
“왜?”
“약점이 될 수도 있어.”
동선의 말에 영준은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에 와서 돕겠다고 하는 건데. 지금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상황인 거잖아. 그런 거니까 그런 사람이라도 우리를 돕는 거. 그거 나는 긍정적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안 그렇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기민은 꽤나 긴장한 표정이었다.
“백동선 님의 말씀처럼 지금 새로운 사람이 굳이 들어오는 거. 이거 또 다른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를 돕겠다고 온 사람을 그냥 보내?”
“밖에서 돕자고 하자.”
“어?”
영준은 이블 내밀었다.
“무슨.”
“김영준.”
영준은 동선과 기민을 번갈아 봤다. 두 사람 모두 자신과 입장이 다르다는 사실에 영준은 미간을 모았다.
“아직도 화가 났어?”
“아니.”
동선의 물음에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화는 무슨.”
“났네.”
“아니야.”
“김영준.”
동선이 낮은 목소리로 다시 자신을 부르자 영준은 한숨을 토해냈다. 동선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네가 왜 그러는 건지 아는데. 그래도 우리는 네가 하는 일. 그거 응원하고 도우려는 사람이야.”
“알아.”
동선의 말에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어딘지 모르게 어두움 같은 것이 묻어서 동선은 그를 꼭 안았다. 영준은 그런 동선의 품을 파고 들었다. 동선이 이해가 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 나를 무시하는 거 같아.”
“뭐래?”
동선은 입을 내밀고 고개를 흔들었다.
“절대로 아니야.”
“그래?”
“그럼.”
동선은 영준의 어깨를 가볍게 만졌다. 앙상하게 마른 그 팔. 자신이 뭘 더 해야 하는 걸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점점 더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뭐라도 빠르게 해결을 해야 하는 거였다.
“이걸 왜 다 가지고 가는 겁니까?”
“부회장실에서 나온 겁니다.”
“안 됩니다.”
회계 직원들이 모두 막아섰다.
“아무리 부회장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죠. 회사에 순서라는 게 있고 체계라는 게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동을 하는 건지.”
“그래야 바른 거니까요.”
“뭐라고요?”
동선의 말에 모두 미간이 굳었다.
“그럼 우리는 바르지 않다는 겁니까?”
“네.”
동선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도와주십쇼.”
동선의 눈빛에 다들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역시 백동선 일 잘 해.”
“당연하지.”
영준은 동선이 내민 서류를 보며 싱긋 웃었다.
“확인 좀 해볼게.”
“더 크게 뽑아와?”
“아니.”
이미 충분히 큰 크기의 폰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준은 꽤나 긴장한 표정이었다. 동선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돕고 싶습니다.”
“아.”
갑자기 나타난 노조 직원의 말에 동선은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이정이입니다.”
“아니.”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인사하라는 게 아니었다. 도대체 이런 사람에게 무슨 말을 더 할 수가 있는 걸까? 이건 혼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혼란에 대해서 다른 말을 더 할 것은 없었다.
“제가 정할 게 아닙니다.”
“저 일도 잘 해요.”
“그런 말이 아니라.”
영준이 뭐라고 말을 할까.
“내가 혼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그쪽도 알 거라고 생각을 하고.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연인이시잖아요.”
“아니.”
이런 말을 듣다니.
“아닙니다.”
“네?”
“아니라고요.”
“하지만.”
“그저 소문이에요.”
동선은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날도.”
“그냥 하는 말이죠. 그런 것을 진짜로 믿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정이 씨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밝힐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쪽도 그런 거라고 무조건 몰아붙일 일은 아닌 거 같군요.”
“왜 피하시는 거죠?”
“네?”
정이의 말에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자신이 피하려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건 사실이었다.
“결국 아닌 척 하시기로 하시는 거예요? 이미 모두 다 알고 있는 일을. 이제 와서 왜요? 이상하잖아요.”
“이상하죠.”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런데 이런 걸로 협박을 하는 겁니까?”
“아니요.”
이정은 바로 얼굴이 굳었다.
“무슨.”
“그럼 왜죠?”
“그냥 돕고 싶습니다.”
“그럼 그냥 마음만 해줘요.”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당장은 그런 게 중요한 거니까.”
“아니.”
동선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지금 더 이상의 이슈를 만드는 것. 그건 결국 영준에게 문제가 될 거였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뭐?”
영준의 말에 동선이 미간을 구겼다.
“뭐라는 거야?”
“왜 부정해.”
“아니.”
동선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한숨을 토해냈다.
“너를 위한 거야.”
“아니.”
영준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으로 동선을 쳐다봤다. 영준은 세게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
“내가 부끄러워?”
“뭐?”
“아닌데 왜 그래?”
“미쳤어?”
“그래.”
영준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미쳤어.”
“김영준.”
“왜 그런 거야?”
“너를 위해서야.”
“아니.”
영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뭐라고 해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거꾸로 자신을 버린 거였다.
“내가 이미 너를 인정했잖아. 내가 이미 우리 두 사람에 대해서 인정을 했잖아. 그런데. 도대체 그런데 왜 그래?”
“그래서?”
“뭐?”
“다 인정해?”
“그래야지.”
“미쳤어.”
동선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안 돼.”
“왜?”
“너를 위해.”
“뭐?”
“네가 다쳐.”
“아니.”
영준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한숨을 토해냈다.
“나는 괜찮아.”
“김영준.”
“내가 더 잃을 게 뭔데?”
“뭐?”
“없어.”
영준의 단호한 말에 동선은 침을 삼켰다.
“아무리 그래도.”
“네가 이러는 게 아픈 거야.”
“아니.”
동선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지금 자신을 이해도 해주지 못하는 영준이 너무나도 답답하고 갑갑했다.
“나중에 네가 사라지고 난 세상에서 도대체 너를 뭐라고 말을 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건데? 몰라?”
“그게 중요하니?”
“응.”
“뭐?”
“나에게 중요해.”
동선은 입을 꾹 다물었다가 열었다.
“네가 조롱이 되는 거 싫어.”
“아니.”
“정말 싫어.”
동선은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백동선.”
“네가 그런 거 싫어.”
동선은 가만히 영준을 응시했다.
'★ 소설 완결 > 너는 없었다 [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54장] (0) | 2018.12.17 |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53장] (0) | 2018.12.14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51장] (0) | 2018.12.12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50장] (0) | 2018.12.11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49장] (0) | 2018.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