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장
“엄청 좋은 방이네.”
“그래?”
동선의 감상과 다르게 영준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꼰대.”
“아버지에게 왜 그래?”
“사실이니까.”
영준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작 자신에게 잘하지. 고작 이런 걸로 무슨.
“내가 바보도 아니고. 애도 아니고. 이런 걸 가지고 좋아할 거라고 믿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그럴 수도 있지.”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누웠다.
“좋다.”
“뭐야?”
영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너도 이리와.”
“어?”
“얼른.”
“하여간.”
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동선을 향해 한 발 내딛는 순간 그대로 어둠에 무너져 내렸다.
“이런 적이 또 있습니까?”
“아니요.”
의사의 물음에 동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입니다.”
“앞으로 자주 있을 겁니다.”
“자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자주. 자주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리고 자주 있을 수도 없는 거였다.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겁니까? 도대체 왜? 왜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자주 있어요?”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영준의 일이라서 괜히 흥분을 한 거였다. 이런 걸 의사에게 묻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아니었으니까.
“약은요?”
“업습니다.”
“진통제도요?”
“네.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쓸 수 있는 약이 없습니다. 이미 가장 강한 약을 쓰고 있습니다.”
“가장 강한 약.”
동선은 영준을 꿀끄러미 쳐다봤다.
“이런 왕진 불법이시죠?”
“아? 네.”
의사의 어색한 미소에 동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동선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
“뭐야?”
영준에게 네가 왜 호텔에 있는 거냐고. 그렇게 따지러 오던 영우가 멈칫했다. 그의 방에서 의사가 나오는 중이었다.
“김영준.”
영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모릅니다.”
“뭘 몰라?”
기민의 대답에 영우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말이야?”
“저야 말로 지금 사장님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부회장님에게 그렇게 관심을 가지신 겁니까?”
“뭐라고?”
기민은 물끄러미 영우의 눈을 응시했다.
“단 한 번도 부회장님에게 관심을 가지신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저 부회장님이 사라지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영우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자 기민은 한숨을 토해냈다.
“왜 그러시는 거죠?”
“망할 새끼.”
“사장님.”
“너에게 있어서 뭐가 더 중요한 건지 몰라? 그 미친 새끼는 곧 죽어. 게다가 이 호텔에 있는 거. 그거 정말로 죽어서 그러는 거잖아. 정말로 다시 기회가 없어서. 그래서 그러는 거 아니야?”
“맞습니다.”
영우의 물음에 기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이리저리 목을 풀었다.
“그래서 저에게 얻고자 하시는 게 뭡니까?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말이죠. 제가 아는 건 없습니다.”
“어떻게 네가 아는 게 없어.”
기민의 대답에 영우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뭐야?”
“네?”
“어떻게 거기에 스며들었어.”
“스며들다니.”
기민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자신이 영우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 영우의 행동이 더욱 답답하고 갑갑한 기분이었다.
“정말로 부회장님이 걱정이 되시는 거라면 가서 말씀을 하시는 것이 나을 거고. 그게 아니면 지켜보시죠.”
“지켜본다.”
영우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미간을 모았다.
“그게 뭐지?”
“그래야 차지하시는 거 아닙니까?”
“차지라.”
기민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만.”
“그 새끼 죽으면 너는 끝이야.”
“그러면 사장님도 끝이 나실 겁니다.”
기민의 말에 영우는 멍해졌다. 기민은 그에게 다시 고개를 숙이고 멀어졌다. 기민은 침을 삼켰다.
“이걸 믿어야 하는 거죠?”
“그렇죠.”
시사평론가는 미간을 모았다.
“이게 무슨?”
“이거 생방송 맞죠?”
“아. 맞습니다.”
영우의 물음에 시사평론가는 고개를 들었다.
“시청자 여러분. 그저 이게 너무 심각한 자료라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KJ의 부회장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영준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슨 이유가 됩니까?”
“그러는데 이런 걸 터뜨리시는 이유가 뭐죠?”
“터뜨린다. 그건 아니죠.”
영준은 입술을 살짝 내밀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저 저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KJ가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룹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리고 계속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거. 그게 제가 생각하는 할아버지를 위한 일이고. 저는 그저 그것을 하려는 것이 전부인 겁니다. 그러니 이건 터뜨리는 게 아니죠.”
“대단하시네요.”
시사평론가의 말에 영준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그럼 한 가지 예민한 걸 물어도 되겠습니까?”
“예민이요?”
영준은 부스 밖의 동선을 쳐다봤다.
“소문이 있어요.”
“소문.”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이라는 말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동성애자라는 말이 있던데 말이죠. 아니시죠?”
“왜 아니라고 생각을 하세요?”
“네?”
영준의 물음에 시사평론가는 오히려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거 생방송이죠?”
“네.”
영준은 다시 동선을 쳐다봤다.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준은 짧게 한숨을 토해내고 씩 웃었다.
“맞습니다. 동성애자.”
영준은 덤덤하게 고백했다.
“잘 한 거야.”
“그래?”
동선의 칭찬에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생각을 해도 미친 거야.”
“왜?”
“지금 내가 하는 이 모든 일. 이거 사람들이 좋게 보지 않을 테니까. 벌써 검색어에 있는 거 아니야?”
“있지.”
동선은 망설이지 않고 긍정했다. 어차피 이런 걸 숨긴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아니었고 당연한 거였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던진 거니까. 그리고 이게 약간 다른 이슈를 덮은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조금 자제를 할 걸 그랬나?
“그래도 지금 잘 한 거야.”
“그렇지.”
이제 영준이 가진 스피커는 더 커질 거였다. 사람들에게 제대로 뭔가 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하는 거였다.
“제대로 할 거야.”
“그래야지.”
동선은 씩 웃으면서 영준의 손을 꽉 잡았다.
“빌어먹을 자식.”
호텔 방에 들어가니 서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영준에게 다가와서 손을 들었다가 그대로 동선의 뺨을 때렸다.
“미쳤어요!”
“고얀 것들.”
서혁은 어깨를 들썩였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뭐가요?”
영준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자신이 하는 것. 이건 올바른 일인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너희 두 녀석의 행동으로 인해서 오늘 주식이 얼마나 많이 하락을 했는지. 알고 있는 거야?”
“네.”
동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매입하고 있습니다.”
“뭐?”
“영준이의 힘을 줘야죠.”
“무슨.”
서혁은 눈썹을 긁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자신의 아들이 왜 이런 사과를 자꾸만 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혼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되느 거다. 그런 거면 되는 건데 왜 자꾸 이런 일을 만드는 거야. 네가 이런 일을 만든다고 해서 네가 바라는 걸 모두 다 할 수 있지 않을 걸 모르는 거냐?”
“제가 하고 싶은 게 뭐죠?”
“뭐?”
영준은 한숨을 토해내고 고개를 숙였다.
“나가세요.”
“여기 내 호텔이다.”
“그럼 저희가 나가고요.”
영준이 세게 나오자 서혁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래도 영준을 겨에 두고 보는 거. 이게 마음에 놓이는 거였다.
“망할 자식.”
“저를 그래도 걱정을 하시는 거죠?”
“고얀 놈.”
서혁의 말에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가시죠. 아 동선이에게 사과를 하시고요.”
“사과는.”
서혁은 동선을 노려보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영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동선은 그런 영준에게 다가가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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