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많이 안 다쳤어요?”
“네.”
용준의 물음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를 가지고 뭘요.”
“하여간 미련해.”
“그러니까요.”
역장과 부장의 말에 서울은 미간을 모았다.
“저 지금 부정 승차자 잡은 거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식으로 하면 우리 역사의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어? 남들이 어떻게 보겠느냐고?”
“그러게 말입니다.”
“아니.”
도대체 저런 걸 지금 말이라고 하고 있는 걸까? 당연히 직원이 한 일을 잘 했다고 말을 해줘도 부족할 판에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상사로 있는 게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였다.
“그러니까.”
“저는 멋있는데요.”
“뭐?”
“멋있잖아요.”
용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저만 하더라도 그렇게 그냥 가버리는 사람 잡을 생각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거 귀찮은 일이잖아요.”
“그거야.”
“하지만 한서울 씨는 잡았죠.”
용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은 그런 그를 보며 겨우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혀를 내밀었다.
“병원에 안 가봐도 될까요?”
“네. 그럼요.”
서울은 가볍게 다리를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 거 아니에요.”
“하여간 다들 너무해요.”
“그러게요.”
서울은 혀를 살짝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아니요.”
용준은 손을 흔들었다.
“한서울 씨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거니까. 그렇게 멋지게 가는 거 너무 멋있어요.”
“그래요?”
서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저 해야 하는 일을 한 거였고. 나중에는 그저 오기였다. 그를 너무나도 무시하는 그 사람에게 그저 제대로 된 것을 보이려는 게 전부였다.
“뭘 잘 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한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한 일을 가지고 용준 씨가 그럴 이유 없어요.”
“나는 못 그래요.”
“할 수 있어요.”
“아니요.”
서울의 응원에 용준은 고개를 저었다.
“귀찮잖아요.”
“네?”
“그리고 무섭고.”
“무섭기는.”
“안 무서웠어요?”
“음.”
용준의 물음에 서울은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지하철 역사라서 가능한 거였지 그렇지 않다면 너무나도 무서울 거였다. 너무나도 무섭고 힘들 수밖에 없는 거였다.
“고마워요. 정말.”
“에이.”
“진심이에요.”
서울의 인사에 용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왜 이러는 거야?”
“뭐가?”
“나 돈 없어.”
“그래?”
철수의 말에 서울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동산에 전화할게.”
“뭐?”
“그럼 되잖아.”
“아니.”
철수는 서울의 앞을 막았다.
“뭐 하자는 거야?”
“뭐가?”
“너무하잖아.”
“내가?”
“그래.”
서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자신의 돈을 손에 쥐고 이런 일을 하는 철수가 더 너무한 거였다.
“너는 단 한 번이라도 내 입장에 대해서 고민을 해준 적이 있니? 없잖아. 그러면서 지금 나보고 너무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내가 지금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런 것도 하나 모르면서 말이야?”
“무슨 말이야?”
“됐어.”
철수의 얼굴에 순간 걱정하는 것 같은 표정이 스치자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대우는 싫었다.
“아무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거야. 그게 전부야. 이에 대해서 다른 말은 하지 마.”
“아니.”
“아니라는 말도 하지 마.”
서울은 검지를 들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도대체 나를 뭐로 보는 거야?”
“뭐?”
“그래도 우리 한때 연인이었던 거니까. 이런 일에 있어서는 당연히 더 깨끗하게 처리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철수는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숙였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알고 있어. 너라고 해서 돈이 무작정 나올 수 없다는 것.그래도 이런 건 아니잖아. 너는 지금 나에게 돈을 주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있어.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나는 너에게 서운해.”
“뭐?”
서운이라니.
“뭐가?”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같이 지낸 시절이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그럴 수 있어?”
“일방적?”
서울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이라는 말을 쓸 수가 있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김철수. 아무튼 나는 그 돈 필요해.”
“왜?”
“나도 따로 살아야 하는 거니까.”
“그럼 일단 사는 건 같이 살고.”
“미쳤니?”
어이가 없었다.
“영화야?”
“아니 나는 돈이 없고. 너는 지금 당장 살 곳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아니.”
서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빌어먹을 상황 같은 것 고려한 적도 없었고 고려하고 싶지 않았다.
“역겨워.”
“역겹다니.”
“너는 나를 사랑하기는 했니? 아니잖아. 나중에는 그저 필요에 의해서 나를 만나고. 그런 거 아니야?”
“아니야.”
서울의 말에 철수는 단호히 항변했다. 서울은 한숨을 토해냈다. 뭐가 되었건 이미 두 사람 사이는 끝이었다.
“네가 뭐라고 해도 나는 그 돈이 필요해.”
“아니.”
“매일 올 거야.”
서울은 이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철수는 미간을 모았다.
“엄마가 왜?”
“아무튼.”
집에 가기 전 도서관으로 불려온 서울은 미간을 모았다. 부산의 말대로라면 춘자가 여기저기 뒤지는 거였다.
“무슨 자격으로?”
“어?”
“엄마가 왜?”
“엄마잖아.”
“아니.”
부산에게는 좋은 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아니었다. 자신에게는 늘 나쁘고 모진 사람이었다.
“너는 그냥 모른 척만 하면 되는 거야. 나 이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거니까. 그러니까 너만 모른 척을 해.”
“어떻게 그래?”
“뭐?”
“누나잖아.”
“그런데?”
“아니.”
“그게 이유가 되니?”
서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전혀 이유가 되지 않않다. 아니 될 수가 없었다.
“나 너무 힘들어. 정말 너무 힘들어. 엄마랑 마주하는 모든 순간들이 다 너무나도 괴롭고 힘들어.”
“나도 마찬가지야.”
“아니야.”
서울은 검지를 들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너는 달라.”
“아니.”
“다르다고.”
“알아.”
서울의 강한 반응에 부산은 입술을 꾹 다물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울을 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아무리 다르다고 해도 엄마를 무조건적으로 부정하는 거. 그거 할 수 없을 거라는 것도 알아.”
“왜?”
“왜라니?”
“나 이미 하고 있어.”
“누나.”
“한부산. 부탁이야.”
부산은 침을 꿀꺽 삼키고 입술을 세게 물었다.
“애초에 자식들 이름을 서울이랑 부산이라고 짓는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애정을 기대해?”
“평생 안 볼 거야?”
“가능하면.”
“너무하네.”
“너무해?”
서울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아니.”
“내가 너무하다고?”
“아니야.”
서울의 목소리가 떨리자 부산은 재빨리 두 손을 들고 고개를 저었다. 서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고 그를 노려봤다.
“너도 똑같아.”
“알아.”
“아니.”
서울은 힘을 주어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부산은 모르는 거였다. 그저 옆에서 보기만 한 사람이 아는 것. 그 정도를 가지고. 정말 겨우 그 정도를 가지고 자신도 안다고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내가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버겁고 아프고 그렇게 지내온 건지 너는 몰라.”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몰라.”
“몰라?”
“그래. 몰라.”
부산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누나가 이렇게 망가지는 동안 자신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저 엄마가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그 정도 생각만 하고 있었지 다른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일이 이렇게 된 것에서 가장 큰 부분에는 자신이 있는 거였다. 자신의 문제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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