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서울이만 안 태어났으면 나도 이렇게 살지 않았어. 나도 더 잘 살 수 있다는 걸 너도 알아야 해.”
“엄마.”
춘자를 설득하기 위해서 말을 꺼냈던 부산의 얼굴이 굳었다. 어떻게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걸가?
“누나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렇게 말을 해요? 누나 엄마에게 정말로 잘 한 거 몰라?”
“잘 해?”
춘자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망할 년.”
“엄마.”
“아우 됐어.”
춘자는 손을 내저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 년이 지 엄마를 무시하고 산다고 하면 그 년이 나쁜 거지. 그런 걸 가지고 네가 왜 신경을 써?”
“엄마도 너무해.”
“뭐라고?”
춘자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엄마가 한 번이라도 정말로 누나를 딸이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어? 항상 나만 챙기고 누나는 뒤였잖아.”
“그래서 불만이니?”
“어.”
“뭐?”
“그렇다고요.”
부산은 수저를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나갈래.”
“무슨?”
춘자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무슨 말이야?”
“엄마 아들로 사는 거 너무나도 무섭고 아팠어요. 도대체 어떻게 나를 이렇게 괴물로 만들려고 그래? 나랑 서울이 누나는 남매야. 남매. 그런데 도대체 왜 우리를 원수로 만들려고 그래요?”
“아니.”
춘자는 멍한 표정이었다. 부산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너무 힘들었다. 이 모든 시간이 너무나도 버거웠다.
“아무튼 그렇게 아세요.”
“아들.”
춘자가 쫓아왔지만 부산은 바로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아들. 문 좀 열어. 아들.”
춘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부산은 외면했다.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떠나야 하는 거였다.
“귀여워.”
용준이 준 장난감을 보며 서울은 미소를 지었다.
“신기한 사람이야.”
고마운 사람이었다.
“저기 한서울 씨.”
“아. 네.”
밖에서 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울은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식사 하시죠.”
“고마워요.”
주는 돈이 얼마 안 되는 것인데도 이렇게 세인이 자신을 걱정해주고 챙겨주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세인 씨는 요리를 잘 하네요.”
“좋아합니다.”
세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맛있어요.”
“저도 좋네요.”
“네?”
“누군가에게 이렇게 먹을 수 있게 해줘서.”
“아.”
신기한 사람이었다. 은근히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말을 안다고 해야 할까? 서울은 혀를 내밀었다.
“그럼 왜 연애는 안 하고?”
“그러게요.”
“아 그러니까.”
오지랖은.
“미안해요.”
“아니요.”
세인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래도.”
“궁금할 수도 있죠.”
세인은 젓가락으로 밥을 뒤적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성격이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에이. 성격이 왜 안 좋아요?”
“많이 안 좋아요.”
서울은 입술을 쭉 내밀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이 보기에 세인처럼 성격이 좋은 사람은 없었다.
“제가 만일 다시 연애를 하게 된다면 저는 무조건 세인 씨 같은 사람하고 연애를 하고 싶은데요?”
“그래요?”
“아니.”
서울은 순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서울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나 별로에요.”
“아니요.”
서울이 곧바로 대답하자 세인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세인의 반응에 서울은 입술을 죽 내밀었다.
“장난기도 많고.”
“그렇습니까?”
세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줄 몰랐는데.”
“아무튼.”
“그래요.”
세인은 가만히 서울의 눈을 응시했다. 왜 저렇게 빤히 보는 건지. 서울은 괜히 불편해서 시선을 피했다.
“그럼 우리 사귈래요?”
“네?”
“나는 한서울 씨가 마음에 드는데.”
“아니.”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러니까.”
“음. 이런 식으로 갑자기 말을 하는 게 조금 미안하기는 한데. 한서울 씨랑 같이 지내고 보니 한서울 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니.”
이런 식으로 고백을 하면 어떻게 같이 살라고.
“그러니까.”
“미안합니다.”
세인은 곧바로 손을 모으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한서울 씨가 이 집에서 나가기 바라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지금 내 생각이 그렇다고요.”
“고마워요.”
일단 내가 좋다고 하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지금 바로 답을 해주지는 말아요.”
“네?”
“부탁입니다.”
“알았어요.”
세인의 말에 서울은 입술을 꾹 다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머리가 복잡했다.
“내가 괜한 말을 했네요.”
“아니요.”
세인의 사과에 서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요.”
“아. 네.”
이걸 위로라고 하는 건지. 이쪽에서 뭐라고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하는 말인 건지. 세인은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제가 왜 좋아요?”
“편해요.”
“네?”
“사실 제가 해나를 제외하고는 편하게 대하는 이성이 없거든요. 그런데 한서울 씨는 편해요.”
“편해요?”
이걸 고백이라도 해도 되는 걸까? 그래도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 편하다고 하는 것이 고마운 말이기는 했다.
“고마워요.”
“왜 고마워요?”
“그냥?”
서울은 혀를 살짝 내밀고 어꺠를 으쓱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더 들고 나니 누군가에게 좋아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꽤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침부터 무거운 말을 한 건 아니죠?”
“아니요.”
“그럼 다행이고요.”
세인의 미소를 보니 서울도 기분은 좋아졌다.
“세인 씨도 따뜻해요.”
“고마워요.”
“아니요.”
서울은 손을 내저었다.
“정말로 고마워서 하는 말이에요. 내가 지금 당장 갈 곳이 없는데 이렇게 같이 살 수 있게도 해주고. 같이 밥도 먹어주고.”
“밥은 한서울 씨가 먹어주는 겁니다.”
“네?”
“같이 먹는 거. 그거 좋은 거거든요.”
“아.”
세인의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사연 같은 것이 떠오르는 표정에 서울은 침을 삼켰다. 신기한 사람이었다.
“한서울 씨가 있어서 나도 잘 사는 거 같아요.”
“그건 이쪽에서 할 말이에요.”
“아니요.”
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한숨을 토해내고 살짝 헛기침을 하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에이.”
“정말이에요.”
서울은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 같이 아침을 보낸다는 것. 그건 이래야 하는 거였다.
“한서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힘들다.”
산다는 게 이렇게 팍팍한 것일 줄이야.“
“한서울!”
그때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서울은 고개를 들었다. 춘자였다. 춘자는 바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엄마.”
“이 망할 년.”
춘자는 바로 서울의 머리를 낚아챘다.
“어디에서!”
“왜 이래?”
서울은 겨우 춘자를 밀어냈다.
“네가 부산이 꼬셨지?”
“뭐?”
“부산이가 집을 나간다잖아!”
“아니.”
그걸 도대체 왜 여기에 와서 따지는 걸까? 도대체 자신이 뭘 할 수 있다고 자신에게 이러는 걸까?
“그건 내가 아는 것도 아니고 나랑 관련도 없는 건데 왜 나에게 와서 이래? 그건 부산이에게 말을 해야지!”
“네가 꼬셨잖아.”
“뭐라고?”
“이 망할 년아!”
춘자가 다시 달려들었다. 서울은 그런 그를 밀어냈다. 너무 답답하고 숨이 콱 막히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왜 회사까지 와서 이래!”
“네가 화상이야. 네가 있어서 이래. 너만 아니었다면 내 삶이 이렇지 않았어! 네가 내 살을 이렇게 망가뜨린 거야.”
“엄마.”
춘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는 그 어떤 애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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