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그만 두는 게 어때?”
“네?”
역장의 말에 서울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한서울 씨 요즘 문제 많잖아.”
“아니요.”
서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한서울 씨.”
부장이 끼어들었다.
“도대체 왜 그래?”
“네?”
“아니 지금 역장님은 한서울 씨를 걱정해서 이러는 거잖아. 얼마나 그 동안 문제가 많았어?”
“그거야.”
부장의 말을 부정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철수부터. 이건 정말 자꾸만 문제의 연속이었다.
“여기 회사야.”
“압니다.”
서울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지금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여자라고 배려를 받으려고 하는 거라면 말이야.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러는 거야?”
“네?”
여자라서.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요.”
“뭐?”
“여자라고 저를 배려해주신 적이 있나요? 그런 적 없잖아요.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죠?”
“뭐라는 거야?”
“아니요.”
서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아니 물러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이쪽에서 배려를 받은 게 하나 없는데 지금 저를 걱정을 했다고 해주시면 안 되는 거죠. 안 그래요?”
“그러니까 배은망덕이야.”
“뭐라고요?”
부장의 말에 서울은 발끈했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 바로 부역장이었다.
“부장님이 더 심해요.”
“내가 뭐?”
부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뭘 했는데 그래?”
“아니. 역장님이야 나이도 많은 분이니까 그럴 수 있지만. 부장님은 그러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뭐라는 거야?”
부장은 땀을 훔치며 얼굴이 붉어졌다.
“무슨?”
“성희롱에.”
“내가 언제!”
부장은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키웠다.
“딸이 있는 분이 안 부끄러우세요?”
“뭐라고?”
“어떻게.”
서울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의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말들의 연속이었다.
“아무튼 저는 이대로 물러나지 않아요.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도대체 왜 그만 둬야 하는 거죠?”
“그럼 다른 곳으로 가지.”
“아니요.”
서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백동선 씨처럼.”
“무슨.”
서울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제가 그 동안 그렇게 본사에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셨을 때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던 거잖아요. 그러면서 지금 갑자기 저를 다른 곳에 가거나 그만 두라고 하는 거. 그거 이상한 거잖아요.”
“추천하지.”
“아니요.”
역장의 말에 서울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하고 싶어서 가려고 한 거였지만 이런 식으로 마치 치워지는 것처럼 밀려나는 것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제가 일을 못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저 여기에 부정 승차자도 많이 잡고 일을 잘 하고 있어요.”
“일을 못 한다는 게 아니라 자꾸만 사무실에 밖의 사람들이 오고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잖아.”
“제가 문제가 된다고요?”
“그래.”
역장의 빠른 대답에 서울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뭐라고?”
“만일 그러시면 지난 번 음성 공식적으로 회사에 제출하겠습니다.”
“무슨?”
역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서울 씨.”
“그럼.”
서울은 짧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습죠?”
“네?”
“웃기잖아요.”
“아니요.”
서울의 말에 용준은 미간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나도 내가 한심한데 김최용준 대리님이 보시기에 저 되게 한심하고 미련하게 보이잖아요. 안 그래요?”
“안 그렇습니다.”
용준의 대답에도 답답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도대체 자신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어려웠다.
“어른이 되면 다들 잘 하고 있을 거라고. 모든 일이 다 잘 풀릴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안 그래요.”
“나도 마찬가지에요.”
“신기한 사람인 거 알죠?”
“저요?”
용준은 자신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생각은 안 하는데.”
“안 해요?”
“네? 네.”
“왜요?”
“무슨.”
서울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아주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사랑을 받은 적이 없는 딸이었어요. 혼자서 애 둘을 키우는 게 힘들다는 거 알아요. 그리고 모진 시어머니. 첫 아이가 딸이라서 고생을 한 것도 알고 있는데 이건 아니죠.”
“한서울 씨.”
“정말.”
주책이었다. 눈물이 흘렀다. 서울은 심호흡을 하면서 애써 울음을 삼키려고 하지만 너무 답답했다.
“도대체 왜?”
평생 춘자의 인정 하나를 받기 위해서 산 거였다. 춘자가 자신을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 거죠?”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아픔들이 이어졌던 건지. 너무나도 아프고 너무나도 슬펐다.
“정말.”
“한서울 씨 잘못 아닙니다.”
“그렇죠?”
“네.”
“내 잘못이 아니죠?”
“네.”
서울은 겨우 미소를 지었다. 낯선 사람으로 듣는 말. 이것으로도 고마웠다. 용준은 잠시 멈칫하더니 서울을 안았다.
“한서울 씨 잘못이 아니에요.”
서울은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니.”
서울의 얼굴을 본 부산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그 동안 내가 누린 게 정말로 많다는 걸 아니까. 이제 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려고 하는 거야.”
“제자리?”
서울은 한숨을 토해냈다. 부산의 잘못이 아닌데 자꾸만 부산이 원망스럽고 너무나도 미운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회사에 왔어.”
“뭐?”
“내 머리를 잡더라.”
“무슨.”
부산의 눈이 커다래졌다.
“무슨 말이야? 지금 그게?”
“네가 독립한다고 하는 거. 그거 내가 다 부추긴 거라고 하더라고. 나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거라고.”
“아니야.”
“알아.”
부산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자신의 행동이 이런 결과를 낳을지 몰랐다.
“엄마가 누나에게 함부로 군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이런 걸 가지고 누나에게 뭐라고 할 줄 몰랐어.”
“나도.”
자신도 몰랐는데 부산이 예상할 리가 없었다.
“괜찮아.”
“아니.”
부산은 힘을 주어 고개를 저었다.
“누나 안 괜찮아.”
“어?”
“신고해.”
“누구를?”
“엄마.”
“미쳤어.”
서울은 가만히 부산을 응시했다. 아무리 춘자가 밉기는 하지만 이 문제를 그렇게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엄마도 결국 잘못된 세상을 산 거니까. 그래서 그런 거니까. 이걸 가지고 더 따질 생각은 없어.”
“하지만 누나가 그렇게 세게 나오지 않으면 엄마는 다시 누나에게 가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거야.”
“그렇겠지.”
서울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춘자는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만.”
부산이 다른 말을 더 하려고 하자 서울은 고개를 저었다.
“그만 해.”
“그래.”
부산은 아랫입술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서울의 눈치를 살피며 한숨을 토해냈다.
“누나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하기 바라.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주고 싶고.”
“그래.”
“누나.”
“알고 있어.”
서울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네 잘못이 아닌 걸.”
“괜찮은 거지?”
“응.”
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이 그나마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올 준비는 됐어?”
“응. 친구 집에 일단 지내기로 했어.”
“그래.”
부산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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