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장
“잘 했어.”
“그래?”
동선은 영준의 얼굴을 만졌다.
“다행이다.”
“추하지?”
“아니.”
“거짓말.”
“정말.”
영준은 바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영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사랑해.”
“사랑해.”
영준은 눈을 감았다.
“무리인가?”
“네.”
“젠장.”
동선의 대답에 서혁은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가 나게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약이라도 써서.”
“그러니까 늦으신 겁니다.”
“뭐라고?”
동선의 차가운 대답에 서혁은 그를 노려봤다.
“내가 뭘 늦어!”
“그 녀석을 위해서 뭐라도 더 하셨어야 하는 겁니다. 선대 회장님이 하시기 전에 하셔야 했던 겁니다.”
“뭐라고?”
“버리면 안 되었던 겁니다.”
서혁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은 아직도 그 모양이야?”
“그렇습니다.”
영우는 한숨을 토해냈다.
“젠장.”
“보러 가실래요?”
“어?”
“가시죠.”
“아니.”
영우는 놀라서 기민을 응시했다.
“그러니까.”
“가시죠.”
기민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면 되실 거 같습니다.”
“아니.”
영우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그런 그의 눈을 계속 주시하고 영우는 마지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온 거야?”
“응.”
“미친.”
영준은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왜 이래?”
“어?”
“도대체.”
영우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도대체. 왜?”
“뭐가?”
“일어나.”
영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영준은 그런 그를 보면서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렇게 마주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이제 형이라고 부를 거야?”
“그럼 일어날래?”
“어?”
“형.”
영우의 말에 영준은 씩 웃었다.
“고마워.”
“개새끼.”
“하여간.”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영우는 일부러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토해냈다. 눈물이 흘렀지만 다행히 영준이 보지 못했다.
“정말.”
영준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영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여행이요?”
“네.”
“무슨?”
주치의의 말에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지. 지금 병실에서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녀석과 무슨 여행을 하라는 건지 그의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정말 곧 돌아가실 겁니다.”
“뭐라고요?”
“아실 거 아닙니까?”
“아니.”
동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니요.”
동선은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환자를 위한 겁니다.”
“아니.”
“여기에 있다가 그냥 죽는 거. 정말 아니라고 생각을 하시지 않습니까? 저 분을 위해서도 말이죠.”
“젠장.”
욕 밖에 할 게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도 준비를 하겠습니다.”
“얼마나 될까요?”
“모르겠습니다.”
“아.”
동선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여행?”
“응.”
영준은 동선을 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된대?”
“응.”
“다행이네.”
“그렇지?”
동선의 물기가 섞인 목소리에 영준은 힘겹게 손을 들어서 가만히 동선의 얼굴을 만졌다. 앙상하게 마른 손.
“미안해.”
“왜?”
“먼저 갈 걸.”
“에이.”
“진작 찾을 걸.”
“아니야.”
이건 영준이 사과를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동선 자신도 그를 찾지 못했다. 자꾸만 피하고 망설였다.
“내가 찾았어도 되는 거야.”
“네가 어떻게?”
“넌 늘 보이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도 늘 너를 봤어.”
“어?”
“늘.”
영준의 고백에 동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농담이 아니야.”
“아니라고?”
“응.”
“무슨?”
동선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늘 너를 찾고 있었어. 그리고 네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런 것도 다 보고. 어떻게 지내는지 다 살피고 있었어.”
“무슨?”
“미안해.”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그러니까 영준은 자신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거였다. 모든 순간에 있었다는 거였다.
“그런데 왜 안 나타난 거야?”
“알잖아. 내가 너의 삶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 순간 너의 삶이 모두 다 흔들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나로 인해서 네가 너무나도 망가지고. 내가 너를 살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젠장.”
영준의 고백에 동선은 낮은 욕설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너무나도 답답하고 갑갑한 기분이었다.
“나 너무 한심하다.”
“왜?”
“그걸 몰랐어.”
“내 직원들이 일을 잘 하네.”
“그래?”
동선은 일부러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네.”
“나 이제 잘래.”
“응.”
동선은 울음을 참으려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가슴이 콱 하고 막히는 이 모든 서러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어디로 가고 싶어?”
“모르겠어.”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어디라도 좋아?”
“응.”
“그래.”
“멀리는 말고.”
“응.”
“이동 시간에 다 보내고 싶지 않아.”
“그래.”
동선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둘이 보내는 게 더 중요할 거 같았다.
“재단은 진행이 된대.”
“다행이다.”
“그렇지?”
“아버지는 아버지인 모양이네.”
“부러워.”
“어?”
“나는 그런 아버지가 없으니까.”
“아.”
영준은 손을 내밀어서 동선의 손을 잡았다. 더 이상 생기가 없을 거 같은 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내가 너의 곁에 있을게.”
“응.”
“남은 순간까지.”
“그런 말은 하지 말고.”
“알았어.”
동선이 울음을 터뜨리려고 하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울지 마.”
“그래.”
“힘들어.”
“응.”
“그럼 나도 힘들고.”
“그래.”
영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눈을 감았다.
“정말.”
“응.”
동선은 영준을 안았다. 야윈 영준. 그를 가만히 안아내는 것. 그 아픔. 그 모든 쓸쓸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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