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장
“별로지?”
“왜?”
“너무 말라서.”
“아니.”
영준의 말에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영준의 몸을 만졌다. 깡마르고 검게 변한 피부.
“나도 내가 싫다.”
“왜?”
“이건 내가 아니니까.”
“뭐래?”
영준의 대답에 동선은 입술을 가볍게 내밀고 동선의 어깨에 입술을 묻었다. 그런 식으로 말을 할 건 아니었으니까.
“사랑해.”
“고마워.”
동선은 영준을 꼭 안았다. 그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그저 이것만으로도 너무나도 행복했다.
“저에게요?”
“네.”
“하지만.”
기민은 긴장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동선 씨도 있고.”
“저도 길게 여행을 갈 거니까요.”
“네?”
“저도 휴식이 필요하잖아요.”
“아.”
동선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동시에 평소에 기민에게는 보인 적 없던 그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차피 회사 일도 잘 모르는 편이니까. 나중이라도 재단 일만 할 수 있다면 더 나을 거 같습니다.”
“그럼 이 자리는?”
“일단 내가 죽기 전까지는 이기민 씨가 그냥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그 자리 안 그래요?”
“네? 무슨?”
영준의 덤덤한 고백에 기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자리를 그냥 맡아달라는 의미를 아는 걸까?
“그러니까 지금 저에게.”
“부회장 대행.”
“무슨.”
기민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피어오르자 영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보다 순진한 사람이었다.
“왜요?”
“안 됩니다.”
기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왜 안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영우 때문에?”
“아닙니다.”
기민이 곧바로 대답하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두 사람 꽤나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이기민 씨가 일을 잘 하는 거. 그 동안 봐와서 알고. 내가 아니더라도 잘 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일을 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제가 하는 것은 어떤 정당성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런 걸 누가 주는 거죠?”
“네?”
“주식.”
영준의 미소에 기민은 침을 삼켰다.
“내가 줄게요.”
“하지만.”
“나 피곤해요.”
“죄송합니다.”
기민의 빠른 사과에 영준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다소 겁이 많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거였으니까. 기민이라면 그가 바라는 자리를 제대로 해줄 거였다.
“애초에 이기민 씨와 같이 일을 하기로 한 거. 이런 모든 상황들까지도 전부 다 고려를 했던 거예요.”
“네?”
기민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봤다고요.”
“아.”
기민은 침을 꿀꺽 삼키며 짧게 고개를 숙였다. 영준은 그런 그를 보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씩 웃었다.
“맨 처음 영우 녀석이 그쪽을 보낸 이유 몰라요? 정말로 일을 잘 하니까. 모든 상황을 파악하니까 그런 거라고요.”
“그래도 이런 식은 다릅니다.”
“안 달라요.”
“하지만.”
“나 정말 피곤해.”
“아.”
기민은 놀라서 동선의 눈치를 살폈다. 동선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너 너무해.”
“뭐가?”
“아무튼 나도 찬성입니다.”
“네?”
기민의 놀란 표정에 동선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민은 침을 꿀꺽 삼키고 멍한 표정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왜요?”
“아니.”
동선의 느릿한 대답에 기민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동선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며 싱긋 웃었다.
“잘 할 겁니다.”
“아니요.”
기민은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못할 겁니다.”
“왜요?”
“왜라니?”
“아니.”
동선의 간단한 대답에 기민은 미간을 모았다. 도대체 뭐가 저렇게 간단하다고 말을 하는 건지.
“부회장님이랑 같이 계시면서 많이 닮아지신 거 같습니다.”
“그런 욕을.”
“아니.”
“농밤입니다.”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네?”
“모든 게.”
“아.”
동선의 얼굴에 순간 쓸쓸함이 스치자 기민은 입을 다물었다. 동선은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숙였다.
“모르겠어요.”
“네?”
“그 녀석 생각.”
“아.”
“정말.”
동선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토해냈다. 자신이 도대체 뭘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뭘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영준의 곁에 있는 것. 그저 있어주는 것. 이건 너무나도 어려운 거였다.
“맨 처음 그 녀석이 같이 살자고 제안을 한 그 순간 모르는 척을 하고 피했어야 하는 건데.”
“그렇습니까?”
“네.”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런 말을 도대체 왜 자신이 기민에게 하고 있는 걸까?
“미안해요.”
“아니요.”
기민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저도 부회장님에게 이상한 마음 죄송합니다.”
“이상한 마음은 무슨.”
“그리고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착각이요?”
기민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뭐. 서로 닮아서 그런 거지만.”
“네?”
“아무튼 아니라고요.”
“아.”
닮았다는 발언에 바로 알았어야 하는 건데. 기민의 고백에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되기 바라겠습니다.”
“아뇨. 회장님께 죄송해서.”
“아.”
동선이 웃음을 터뜨리자 기민도 어색하게 웃었다. 동선은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건 다 잘 될 거였다.
“그렇게 나를 탓하려는 거냐?”
“네.”
“못난.”
“그렇죠.”
영준의 덤덤한 대답에 서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혀를 찼다. 어떻게 저렇게 모자란 이가 자신의 아들인 건지.
“못된 놈이다.”
“늘 그렇죠.”
“여행을 간다고?”
“네.”
서혁은 물끄러미 영준을 응시했다.
“이제 못 보는 거냐?”
“네.”
영준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대답하자 서혁의 얼굴이 굳었다. 그 슬픔. 어딘지 모를 무게 같은 것.
“왜 그러는 거냐?”
“무슨 말씀이시죠?”
“왜 한 번도. 아프기 전에 나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은 거야? 네가 부탁을 했다면 나는 했을 거다.
“했어야 하는 건가요?”
“뭐라고?”
“아니요.”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냥 그랬어요.”
“망할 녀석.”
서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동안 네 녀석이 나에게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햇다면 지금 내가 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을 거다.”
“아버지께서 먼저 손을 내미시지 않은 거죠. 아이들이 그런 것을 먼저 할 수 있을 리는 없잖아요.”
“뭐라고?”
“저는 아버지가 된 적은 없지만. 아버지는 제 나이였던 적은 있으니까. 아버지가 그러셨어야죠.”
영준의 차분한 대답에 서혁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영준은 한숨을 토해내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뭐 이런 말도 의미가 없는 거지만요.”
“네 녀석이 너무나도 밉다. 네 녀석으로 인해서 내가 평생 죄책감에 살 것. 이게 너무 힘들다.”
“그렇죠.”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오래 사세요. 오래 사셔서. 부디 오래 살아서. 저를 계속 가엽게 여기고 저에 대한 부채를 느끼면서 사세요. 아주 오래 사셔야 해요. 제가 빠르게 죽는 것. 이것보다 더 오래 사셔야 해요.”
“고얀.”
서혁의 눈에 눈물이 고이자 영준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뭐라고?”
“그냥.”
영준의 말에 서혀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제 정말로 끝인 거였다. 아들이 너무나도 미웠고 원망스러워도. 그가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을 한다고 해도 이제 끝. 더 이상 아무런 것도 없고 아무런 미련도 가질 수 없는. 그저 모든 것이 다 끝이 날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이 되어버리는 거였다. 서혁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손ㅇ르 내밀어서 영준의 손을 잡았고 영주도 그 손의 온기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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