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장
“여전히 사람이 많네요?”
“그럼요.”
은수의 자랑스러운 표정에 동선은 싱긋 웃었다.
“고맙습니다.”
“네?”
“여긴 저에게도 의미가 있거든요.”
동선은 테이블을 만지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에이.”
은수는 입술을 내밀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동선의 눈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많이 안 좋구나. 정말.”
“네?”
“그 녀석.”
“아.”
동선은 혀를 살짝 내밀고 멋쩍게 웃었다.
“티가 너무 잘 나죠?”
“그러네요.”
은수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랑해서 닮은 것인지. 닮아서 사랑한 것인지 몰라도 닮은 사람들이었다.
“여행을 가려고요.”
“그래도 된대요?”
“네.”
“다행인 거죠?”
“아니요.”
은수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동선은 고개를 저었다. 전혀 다행이 아니었다. 이제 정말로 끝이 다다른다는 이야기였다.
“그 녀석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 녀석을 데리고 가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더라고요.”
“아.”
은수는 작게 탄식을 내질렀다.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저는.”
동선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괜찮아요.”
“백동선 씨.”
“그래도 오히려 끝을 아는 게 다행인 거 같습니다.”
“아. 네.”
은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동선은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괜히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미안해요.”
“왜 사과를 해요?”
“이런 말은 안 해도 되는데.”
“아니요.”
은수는 동선의 눈을 보며 힘을 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런 말을 해주니 고마워요.”
“그래요?”
“그러니까 해요.”
“네.”
은수의 말에 동선은 겨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회사는 어떻게 할 거야?”
“그러게.”
동선의 물음에 영준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모르겠네.”
“그럼 어떻게 하지?”
“어?”
“아마 다들 흔들려고 할 거야.”
“그럴 수도 있겠네.”
영준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가 지친 기색을 보이자 동선은 곧바로 영준을 품에 안았다. 영준은 입을 내밀었다.
“왜 이래?”
“그래서 싫어?”
“아니.”
영준은 웃음을 터뜨리며 눈을 감았다.
“편안해.”
“다행이네.”
“하여간.”
“왜?”
“좋아서.”
동선은 영준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예쁘다. 김영준.”
“뭐래? 멋지다고 해야지?”
“뭐. 그래도 예뻐.”
동선의 웃음이 섞인 목소리에 영준은 고개를 짧게 흔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동선에게 체중을 실었다.
“무겁지?”
“아니.”
“거짓말.”
“넌 나에게 늘 가벼워.”
동선은 애써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준은 눈을 살짝 떠서 그런 동선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너는 왜 말랐어?”
“어?”
“나야 죽어가니 그러지만.”
“그러지 마.”
“사실이니까.”
“김영준.”
“그러지 마.”
동선의 슬픔이 가득한 얼굴에 영준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그런 동선의 얼굴을 만졌다.
“사랑해.”
“너 미워.”
“내가 미워?”
“그래.”
“그렇구나.”
영준의 덤덤한 고백에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왜?”
“아니.”
“사실이니까.”
영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저 사실이라는 그 말.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무게가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다.
“네가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아니.”
“미안해.”
영준의 사과.
“미안해.”
다시 사과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걸까? 동선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영준은 가만히 웃었다.
“나 지금 안 보여.”
“어?”
“전혀.”
“무슨?”
“이상하지?”
영준의 말을 듣고도 그가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동선은 자신이 그것을 몰ᄅᆞᆻ다는 사실에 멍해졌다.
“그러니까.”
“알아.”
동선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동선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제 어렴풋이 어떤 느낌? 같은 것으로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고 네 표정을 알 수 있으니까.”
“그게 도대체 뭐야?”
“그러게.”
동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머리를 뭔가가 세게 때린 기분. 도대체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 걸까?
“그러니까.”
“너무 미안하게 생각을 하지 마.”
“어떻게 그래?”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내리고 살짝 숨을 몰아쉬었다. 동선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고개를 저었다.
“나 갈게.”
“가지 마.”
“시간 다 됐어.”
“나 부자야.”
“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무슨.”
영준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완벽하게 동선의 품에 누웠다.
“가지 마.”
“김영준.”
“무서워.”
영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무섭다는 말. 외면해야 하는 거였는데 외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럼 나 씻고 올게.”
“같이 씻자.”
“그래도 돼?”
“응.”
동선은 조심스럽게 영준의 몸을 살폈다. 마른 몸. 이 몸을 씻겨도 되는 걸까? 다치거나 그러지 않을까?
“나 많이 더럽거든.”
“무슨.”
동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영준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양해를 해주시는 거군요.”
“아프니까요.”
“무슨.”
주치의의 말에 동선은 미간을 모았다.
“너무한 거 아닙니까?”
“네?”
“아니.”
“어쩔 수 없습니다.”
주치의는 덤덤한 표정으로 동선을 응시했다.
“제 환자가 죽는 것을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의사의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리는 일이기도 하죠. 저의 영혼이 사라지는 건데. 그런 이를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까?”
“그거야.”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의 입장이 다르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나도 다른 거였다.
“저는 이 녀석 없이 못 살아요.”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니.”
“미안합니다.”
동선의 사과에 주치의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저 녀석 정말 얼마나 남은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모르시는 건가요?”
“네.”
의사의 슬픈 표정에 동선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의사도 모른다고 하는데 무슨 말을 더 할 수가 있는 걸까?
“이런 말이 우습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 정말로 김영준 씨의 상태는 오직 신만 아는 상태입니다.”
“신.”
그런 것은 믿은 적도 없었다. 아니 믿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믿고 싶어졌다.
“여행은?”
“내일이라도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네?”
“정말 하루라도 빠르게 가시는 게 옳을 겁니다.”
“아.”
이런 말. 어떤 의미인지. 무시하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바로 보인다는 것. 이게 슬프지만 결국 현실이었다.
“고맙습니다.”
그래도 이런 배려를 해준다는 것. 의사로 그리 찬성만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해준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었다. 동선의 미소에 의사는 별다른 대답을 더 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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