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장
“우리 가서 뭐 할까?”
“좀 쉬어도 돼.”
“아니.”
동선의 말에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싫어.”
“왜?”
“뭘 쉬어.”
“김영준.”
“쉬는 거 싫어.”
영준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어차피 곧 죽게 된다면 계속 쉬는 거였다. 더 이상 쉬고 싶지 않았다.
“너 자꾸 나에게 쉬라고 하지 마. 나 그러고 싶은 생각은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아니.”
“나 이미 충분히 쉰 거 같아.”
영준의 미소에 동선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네가 걱정이라 그러지.”
“그러지 마.”
“어?”
“그렇게 보지 말라고.”
“김영준.”
“나 약 많이 먹어.”
영준이 자랑이라도 하듯 꽤나 많은 양의 약을 보이자 동선은 한숨을 토해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오래 살 거야.”
“응.”
“무조건.”
“그래.”
동선은 영준을 꼭 안았다.
“그래야지.”
“너 내가 가엽지.”
“어?”
“불쌍하지?”
“아니.”
“그래.”
동선의 대답에 영준은 그의 얼굴을 손으로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이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한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는 중이었다.
“고마워.”
“뭐가?”
“여전히 나를 네 사랑으로 봐줘서.”
“사랑이라니.”
동선이 일부러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자 영준은 입술을 내밀었다.
“이제 아니야?”
“그럼.”
“그럼 뭔데?”
“너는 나야.”
“어?”
“그냥.”
동선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영준을 품에 꼭 안았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내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의 주인공들처럼. 서로의 이름으로 불러주는 거지. 그들이 서로를 올리버라고 부르고, 엘리오라고 불렀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이름이 되고 서로를 부르는 거야.”
“그게 뭐야?”
“왜?”
“너무 닭살이라?”
“그래서 좋아서.”
동선의 말에 영준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영준은 입술을 떼고 숨을 내쉬었다.
“고마워.”
“뭐가 자꾸 고마워?”
“이런 나랑 입을 맞춰줘서.”
“어?”
“나도 내가 얼마나 추한지 알아.”
“무슨.”
동선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영준에게 가볍게 코를 비비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그래?”
“내가 그래?”
“무슨.”
“나는 뭐 눈이 없나?”
“잘 안 보이잖아.”
“뭐?”
“그러니까 제대로 못 보는 거야.”
동선은 검지를 들고 마치 어린 아이에게 수학 문제라도 풀이를 해주는 것처럼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영준은 그런 그를 보며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사랑해.”
“당연한 거지.”
동선은 영준의 허리를 가볍게 안았다.
“좋아.”
“그래?”
“응. 네가 부자라서.”
“뭐?”
“네가 부자가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병원을 호텔처럼 쓰면서 달콤한 일을 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야.”
“달콤한 일이라니.‘
영준은 가볍게 몸을 떨면서 미간을 모았다.
“이런 말을 그렇게 잘 했어?”
“당연하지.”
“몰랐어.”
“너무한데?”
“너무한 건가?”
“당연하지.”
영준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동선은 밝게 웃었다. 그리고 그를 침대에 눕히면서 그 옆에 조심스럽게 누웠다.
“안 좁지?”
“여기 넓어.”
“그렇지.”
호텔보다도 넓은 침대.
“김영준.”
“응?”
“사랑해.”
“나도 사랑해.”
동선의 말에 영준은 손을 내밀었다. 동선은 그 손을 가만히 쥐었다. 이전보다 조금 더 작아진 손.
“김영준이 그래도 내 말을 이제라도 잘 듣는 거 같아서 다행이야. 전에는 내 말을 듣지 않았으면서.”
“내가 언제?”
“늘.”
“아니거든.”
영준이 입을 내밀면서 말하자 동선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런 그를 품에 가만히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 피곤해?”
“응. 이상하게.”
“다행이다.”
“그런가?”
“그럼.”
분명히 괜찮을 리가 없었다. 오늘 회사에 다녀온 것이 문제인지 영준은 분명히 지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괜찮다고 말을 해주는 것. 그저 이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뭐 안 먹어도 돼?”
“응.”
“왜?”
“너도 안 먹는데.”
“그러지 말고.”
영준은 가볍게 동선의 가슴을 밀어냈다.
“네가 내 옆에 제대로 있기 위해서는 뭐라도 하나 더 제대로 먹어야 하는 거야. 그런 거 너도 알고 있잖아.”
“그래도 이런 식으로 너를 두고 혼자서 뭐 먹고 싶지 않아. 그리고 뭐 먹고 싶으면 너를 먹으면 되는 걸?”
“뭐라고?”
동선은 조심스럽게 영준의 귀를 물었다.
“이렇게.”
“미쳤어.”
“왜?”
“병원이야.”
“그래서?”
동선은 영준의 옷 안으로 손을 넣어서 부드럽게 그 몸을 쓸어내렸다. 깡마른 영준의 몸에 다시 온기가 돌았다.
“어차피 우리 두 사람에게 이 방을 준 이유 다소 빤한 거 아닌가? 우리가 사귀는 것도 다 알고 있는데 뭐.”
“미쳤어.”
“왜?”
“정말.”
영준은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동선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해.”
“응. 나도 사랑해.”
영준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동선의 눈을 보고 싱긋 웃었다.
“나는 정말로 괜찮으니까 밥 먹고 와.”
“어?”
“응?”
“아니.”
“부탁이야.”
“부탁.”
영준의 말에 동선은 혀를 내밀며 어색하게 웃었다. 누군가의 부탁이라는 말. 그저 밥을 먹어주는 것이 부탁이라는 그 말이 얼마나 큰 일인지. 그리고 이런 와중에서도 영준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어서 그 답답함 같은 것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면 뭐라도 사와서 여기에서 먹을까?”
“싫어.”
“왜?”
“그거 고문이야.”
“고문이라니.”
“내가 먹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잖아.”
“아. 그러네.”
영준은 미식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꽤나 음식을 즐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프고 나서. 아니 아프고 나서도 제대로 먹었지만 확실히 요 근래 제대로 무언가를 먹지 못하는 게 사실이었다.
“나를 배려하려고 하는 건 알고 있는데. 네가 나를 배려하는 게 거꾸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일 수도 있어.”
“그래.”
영준의 지적에 동선은 가만히 웃었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으니까. 동선은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밥 먹고 올게.”
“그리고 집에 가서 자.”
“어?”
“불편하잖아.”
“아니.”
“그러지 마.”
“싫어.”
동선은 힘을 주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다른 건 몰라도 같이 자지 않는 것. 그것은 싫었다.
“그래.”
영준도 더 힘을 빼기 싫어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것까지 다투는 것. 우스운 일이었으니까.
“그럼 나 밥 먹고 올게.”
“응. 그럼 나는 좀 잘게.”
“그래 쉬어.”
동선은 부드럽게 영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나왔다. 바로 잠에 드는 영준을 보며 동선은 한숨을 토해냈다.
“젠장.”
밥을 뒤적이면서 동선은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다.
“뭐하는 건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은 밥을 먹고 있었다. 혼자 살겠다고 밥을 먹고 있었다.
“정말 싫다.”
너무나도 괴로워싿. 그럼에도 울 수 없었다. 울었다는 티를 낼 수 없었다. 더 이상 그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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