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장
“사람은 더 붙여줄게.”
“안 그래도 괜찮아.”
“아니 할 거야.”
“너 정말.”
영준을 보는 은수의 얼굴은 꽤나 무거웠다. 오랜 시간 안 친구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뭐가?”
“너.”
“아. 그러게.”
영준은 어꺠를 으쓱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모든 것이 다 자신만만하던 순간에 만났던 거였다.
“이제 안 아파?”
“응.”
“다행이네.”
“그렇지?”
“당연한 거지.”
은수의 울음을 삼키는 것 같은 대답에 영준은 혀로 이를 훑었다. 자신이 도대체 뭐라고 왜 이렇게 모든 이들이 다 아파하고 슬퍼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감정 자체가 미운 것은 아니었으니까.
“약이 무지장 많다?”
“그래?”
“그래서. 네가 여전히 보이기는 해.”
“다행이다. 정말.”
영준의 말에 은수는 겨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준은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저었다.
“놀러가도 되는 거지?”
“얼마든지.”
“그럼 꼭 갈게.”
영준은 부러 더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살아있으면.”
“아. 너 정말.”
“왜?”
“미워.”
은수의 투정에 영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여전히 죽지 않을 거 같았고. 여전히 누군가의 곁에 있을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
“미안해.”
“왜?”
“아무 것도 도움이 되지 못해서.”
“네가 여기 맡아주는 거. 그게 의미가 있는 거야.”
영준의 대답에 은수는 겨우 대답을 하며 한숨을 토해냈다. 자신은 그저 이 카페를 지키는 게 전부였다.
“네가 여기에 있어주는 것. 그저 이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나도 고마워. 너무나도 다행인 거야.”
“그래?”
“응. 그래서 미안해.”
“뭐가?”
“내가 뭘 더 못 해줘서.”
“무슨?”
“돈도 못 주고.”
“됐어.”
은수는 단호히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영준에게 그런 것을 바란 적이 없으니까.
“전에도 말한 것처럼 그런 걸 원했다면 너에 대한 거 뉴스로 팔아서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거야.”
“그런가?”
“당연하지.”
“고맙네.”
영준은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여기는 못 와.”
“어?”
“지금이 마지막이야.”
“아.”
영준의 말에 은수는 다시 멍해졌다. 이제 가서 재단에 대한 것을 발표하면 바로 떠난다는 거였다.
“조금 갑작스럽네.”
“너무 늦은 거지.”
“그런가?”
“그럼.”
영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차라리 멀쩡할 때. 아직 건강할 때 했어야 하는 거였다.
“괜히 회사를 개혁하고 들쑤시고 싶었어. 내 이름을 알리고. 나도 뭔가를 한다고 증명을 하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그런 변죽만 올리는 거. 하지 않았어야 하는 거야. 그 시간에 그냥 조금이라도 더 그 녀석하고 시간을 보내는 거. 같이 있는 거. 그런 것을 하는 게 우선이었던 거야.”
“그래도 네가 그렇게 들쑤신 덕에 백동선 씨도 너에 대한 기억을 게속 할 수 있게 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나도 네 이름으로 된 재단을 보면서 정말로 좋은 친구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거고.”
“좋은 친구.”
은수의 말에 영준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은 은수에게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었다.
“나는 늘 너를 힘들게만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좋은 말을 해줘도. 그래도 괜찮은 거야?”
“그러게. 내가 이런 마을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 이미 해버린 거잖아.”
“그러네.”
은수의 대답에 영준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아무리 지치는 순간이라도 은수는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서은수. 너라는 사람이 내 삶에 있어서 좋은 친구라서 너무 고마웠어. 그래도 네가 있어줘서 다행이야.”
“그래.”
은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김영준. 너 정말 멋져.”
“당연하지.”
영준은 엄지를 들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왜 안 가시는 거죠?”
“너는 왜 안 가는 거냐?”
“뭐.”
서혁의 물음에 영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가야 할 자리가 아니었다.
“그 녀석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제가 가서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도 없으니까요.”
“형이다.”
“네?”
“그 녀석이 아니라.”
“아.”
서혁의 지적에 영우는 엷게 웃었다.
“한 번도 그러신 적이 없으면서.”
“그건 내 잘못이다.”
“그러네요.”
서혁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너도 그럴 거냐?”
“네?”
“나에게도 도와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고.”
“아.”
영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지금 서혁에게 무언가를 도와달라고 말을 할 상황이기는 한 걸까?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서혁은 팔걸이를 검지로 두드리며 한숨을 토해냈다.
“좋은 아버지는 아니로군.”
“그런 의미는 아니죠.”
“그런데 왜 아니라는 거냐?”
“그러게요.”
서혁은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우는 그런 그를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부탁을 드릴 수도 있죠.”
영우의 말에 서혁은 그제야 겨우 미소를 지었다.
“안 해도 된다니까?”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정이는 재단 발표까지는 자신이 관여를 해야 하는 일이 옳다고 하면서 다시 여기에 와서 일을 하는 중이었다.
“지금 이정이 씨가 여기에서 있는 거. 자기가 생각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일이 될 거야.”
“압니다.”
영준의 지적에 정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뭐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뭐라고요?”
“이제 신입인데. 위에서 시키는 거 다 하는 거. 이런 거 요즘에는 그다지 어울리는 일이 아닌 거 같아서요.”
“무슨.”
영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서혁도 없고 아무도 없는 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꽤나 중요한 자리라서 기자들도 모인 상태였다.
“그럼 나가실까요?”
“그러죠.”
기민의 말에 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해.”
“같이 가야지.”
“어?‘
“안 갈 거야?”
“음. 응.”
영준의 물음에 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는 자신이 가야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김영준이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네가 가지고 있는 의미. 그리고 네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내가 여기에 껴서 그 기억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
“망가뜨리기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그래? 네가 있어야 나도 할 수 있는 거야. 그걸 몰라?”
영준이 손을 내밀자 동선은 손을 잡아서 한 번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살짝 영준을 안고 손을 놓았다.
“그러지 마.”
“백동선.”
“사람들 기다려.”
“정말.”
영준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밝게 웃으며 가볍게 동선의 엉덩이를 때리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럼 그렇게 해야지.”
“잘 해.”
“물론.”
의사의 도움. 겨우 일어난 지금. 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사람들 아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저기.”
“응?”
“키스해줘.”
“뭐?”
기민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는 게 보였다. 동선은 미소를 지으면서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안 돼.”
“왜?”
“너 지금 메이크업도 했잖아.”
“그런데?”
“지워져.”
“치사해.”
“뭐가?”
“치사한 거야.”
“아니.”
동선은 고개를 저었다.
“얼른.”
“키스 안 해주면 안 나가.”
“뭐?”
“얼른 해주시죠.”
정말로 영준이 나가지 않을 거 같자 기민은 작게 덧붙였다. 동선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사랑해.”
영준이 먼저 동선의 목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부드럽게 입술을 맞췄다. 서로의 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떤 믿음. 서로에 대한 힘이 되는 것. 입술이 떨어지고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미 서로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음에도 다행이었다. 그저 다행이었다.
'★ 소설 완결 > 너는 없었다 [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마지막 장] (0) | 2019.01.23 |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77장] (0) | 2019.01.23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76장] (0) | 2019.01.18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75장] (0) | 2019.01.18 |
[퀴어 로맨스] 너는 없었다. [74장] (0) | 2019.01.16 |